[경제도 코로나 방역처럼] <2>노사정 대타협 물꼬 터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노동시장의 미래를 앞당겼다. 변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이제 미래 노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전통적 근로자상이 변하는데, 기존의 노동법과 제도로는 틀이 맞지 않는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자동차 보험이 사고가 났을 때 필요한 것처럼, 노동자들에겐 고용보험이 필요하다. 코로나 발 고용위기는 노동시장에 사고가 난 셈인데 취업자 중 절반이 고용보험이 없다. 앞으로 또 이런 위기가 닥친다면 현재의 고용보험 시스템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한다.”(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장)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는 고스란히 노동자의 삶을 덮친다. ‘일자리 사수’가 당면 과제로 꼽히는 가운데 고용안전망 틀을 새로 짜는 거시적인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일보는 4ㆍ15 총선을 전후해 참여정부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 등 노동분야 전문가 6명에게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정부가 집중해야 하는 고용ㆍ노동정책 방향과 과제들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현재의 고용안전망을 21세기 체제로 전환”(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하고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통한 이중구조를 해소”(김대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구조조정의 위기상황에서 “노ㆍ사ㆍ정 사회적 대화와 협력은 불가피”(권혁)하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대화 틀 놓고 힘겨루기 말라”
당장 노동취약계층 지원부터 고용안전망 재편까지 노ㆍ사ㆍ정이 머리를 맞대야 할 사안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대표적인 정부의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제1노총인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힘 한 번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더는 사회적 대화 틀을 두고 힘겨루기를 할 상황이 아니라고 조언했다. 권혁 교수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진영에서의 소모적 논쟁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라며 “묘안을 내기 위해서는 노사 협력이 필수적인 만큼 경사노위가 더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대환 명예교수는 “민주노총이 노정 직접교섭을 위한 다른 틀을 원하고 있기에 경사노위 참여를 하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정치적 요구는 3자주의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이 제1노총으로써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경사노위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지만, 위기상황인 만큼 우회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상적으로는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복귀하는 것이 맞지만, 위기 대응을 생각하면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는 다른 채널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코로나19 원포인트 노사정 비상협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경사노위에 참여하자는 대신 민주노총 주도의 별도 논의 틀을 구성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또 다른 대화 상대인 한국노총의 반발을 어떻게 잠재울지가 과제다. 최영기 전 원장은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이 ‘대화에 들어오지 않은 파트너 때문에 밖에서 이야기하란 말이냐’고 반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 여당의 총선 압승 국면에서 민주노총의 ‘큰 결심’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계택 센터장은 “현재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이 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기에 가장 긍정적인 분위기의 정권이 아닌가 싶다”라며 “여기서 얻지 못하면 어떤 정권에서도 얻지 못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금처럼 사사건건 정부에 반대하는 방식으로 나오면 해답이 없다”라며 “민주노총도 자신들의 하반기 노동정책안을 가지고 한국노총과 조율하고, 노사정 논의 테이블에 올려서 풀어야 할 순번을 정하는 방식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주도하는 노동시장 개혁 필요”
전문가들은 노ㆍ사ㆍ정 대화는 그간 난제로 꼽힌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서라도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기에 더해 그간 노동시장 개혁에 소극적이었던 정부가 키를 쥐고 논의를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영기 전 원장은 “최저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통해 저임금 노동계층의 지위를 올려서 양극화를 줄인다는 정부의 접근법에는 고임근로계층의 연대임금정책 같은 양보와 타협이 빠져있었다”라며 “가령 최저임금을 16.4% 올릴 때 양대 노총은 대기업 정규직 임금도 7~9% 올리자고 요구했다. 밑을 끌어올려서 양극화를 줄이고자 하면 고임근로자의 임금양보가 있어야 하는데, 모두 끌어올리면 그걸 감당할 경제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대환 명예교수는 “최근의 상황은 현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애써 외면했을 뿐만 아니라 구조적 경직성을 증대시켜 오히려 이중구조를 심화시키는 정책들을 써 온 탓이기도 하다”며 “매우 중층위적이고 당장 노사의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사안이 많기 때문에 정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매우 제한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론적으로는 노사정의 사회적 대타협이 답이지만 현 정부의 성격상 이를 이루어내기는 힘들다고 본다”라며 “총선으로 국정동력을 확보한 정부ㆍ여당이 노조로부터 주도권을 탈환하여, 설득과 압박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화와 더불어 사회안전망 확충을 추동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미래 노동 대비 고용보험 설계 달리해야”
신종 코로나 확산이 가져온 고용의 위기는 미래 노동구조에 맞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일깨웠다. 이장원 선임연구위원은 “플랫폼 노동은 정부가 이전엔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정책연구 수준에서 그쳤던 문제”라며 “위기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총선 결과에 반영된 민의는 이런 문제에 정부가 과감히 나서달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계택 센터장은 “우리사회 노동시장에 적합한 사회보험 요율이 어느 정도인지 다시 한번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며 “지금 코로나 위기상황에서는 사회보험 재정은 고사하고 일반 예산을 집어 넣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영기 전 원장은 “앞으로 디지털 플랫폼 경제가 일반화 된다는 전제로 보면 ‘200만 플랫폼 노동자 사각지대’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1,000만명의 고용형태가 플랫폼 노동자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고용보험 설계를 달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순 교수는 “고용안전망의 기본체계를 자영업자, 프리랜서를 포괄하는 확대된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신종 코로나가 끝나도 위기와 불확실성은 계속될 것이기에 대안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바로 확대되기는 어려운 문제이기에 대화를 통해 확실하게 준비해야 하는 이슈”라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세종=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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