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넨 참수(斬首)야.” “난 참수부터 시작해.” 김은숙 작가가 이번에는 ‘참수’를 유행시킬 요량일까. 17일 방영을 시작한 판타지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에서 주인공인 황제 이곤(이민호)은 ‘참수’를 입에 달고 산다. 누군가의 무엄함을 꾸짖거나 불쾌감을 드러낼 때 이 섬뜩한 느낌의 단어를 꺼낸다. 물론 농이 90%다. ‘더 킹’은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는 대한제국의 2019년과 현재 대통령제인 대한민국의 2019년을 오가며 스토리가 이어지는 평행 구조의 드라마다.
□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는 방영될 때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 독특한 스토리는 매번 이슈가 된다. 그 중심에는 유행어도 있다. ‘시크릿 가든’에선 “그게 최선입니까”(현빈), ‘도깨비’에서는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공유), ‘미스터 션샤인’은 19세기 조선의 말투와 표기법 자체가 화제를 모았다. 모두 캐릭터에 딱 맞아떨어지거나 반전 매력을 살리는 명대사들인데다, 반복 효과로 시청자 뇌리에 쉽게 각인시켰다.
□ ‘참수’는 4ㆍ15 총선 선거운동 기간에도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미래통합당이 공약으로 ‘유사시 북한 지도부 참수작전 수행을 위한 새 한미 연합 작전계획 수립’을 적시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북한의 도발 상황에 대비해 미국과 긴밀하고도 비밀리에 추진해야 할 성격의 보안 작전을 야당이 총선 공약으로 내건 거다. 이 때문에 냉전시대식 대결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참수작전의 본래 의미나 효과를 생각했다기보다 지지층 결집을 노린 정치 행위로 활용하려는 의도였을 테다. 통합당이 결국 민심의 심판을 받은 데엔 이 같은 과거 회귀 행태를 버리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말의 전쟁에나 등장할 법한 단어를 드라마에서 접하니 씁쓸하다. ‘참수’가 주인공의 순수한 권위의식을 표현할 최적의 어휘인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이 단어는 우리에게는 가슴을 후벼 파는 역사성을 지녔다. 2004년 중동 지역에서 일어난 한국인 피랍 사건 때문이다. 고인의 가족은 물론 이 사건을 기억하는 국민에게는 과장법의 단어만은 아니다. 드라마는 판타지로 대중을 꿈꾸게 하고, 정치는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게 지향점이다. 그 여정에서 말의 무게를 잊은 유희나 남발을 보고 싶지 않은 건 과욕일까.
김지은 논설위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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