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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명당 1명 이상 코로나 감염’... 방역모범 싱가포르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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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명당 1명 이상 코로나 감염’... 방역모범 싱가포르에 무슨 일이

입력
2020.04.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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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환자가 대거 발생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 스트레이츠타임스 캡처
코로나19 환자가 대거 발생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 스트레이츠타임스 캡처

싱가포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 6,500명을 넘어서며 ‘세계적인 방역 모범국가’에서 ‘동남아시아 최다 감염국가’의 오명을 얻게 됐다. 투명한 정보 제공과 합리적인 단계별 방역 대응으로 이달 초까지 코로나19 환자 수를 1,000명 아래로 관리하며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샀던 싱가포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20일 스트레이츠타임스 등에 따르면 전날 싱가포르의 코로나19 확진 환자는 596명 늘어 총 6,588명이 됐다. 그간 동남아 지역 확진자 규모 1, 2위던 인도네시아(6,575명)와 필리핀(6,259명)을 모두 뛰어넘었다. 서울보다 조금 넓은 도시국가 싱가포르(719㎢) 인구가 561만명(2017년 기준)인 걸 감안하면 1,000명당 1명 이상이 감염된 셈이다. 싱가포르의 감염자는 3,000명에서 두 배가 되는데 닷새밖에 걸리지 않았다. 18일엔 일일 최다인 924명이 추가됐다.

싱가포르 정부는 “일반적인 지역사회 감염은 많이 줄었으나 최근 확진 환자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들이며 이들이 전체 확진 환자의 60% 이상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리셴룽 총리는 “당분간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 감염 사례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특수한 상황의 감염 경로를 파악하고 있으니 관리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외국에서 돌아온 싱가포르 국민들이 2주 자가 격리를 위해 정부가 지정해 준 호텔에 투숙하고 있다. 스트레이츠타임스 캡처
외국에서 돌아온 싱가포르 국민들이 2주 자가 격리를 위해 정부가 지정해 준 호텔에 투숙하고 있다. 스트레이츠타임스 캡처

그러나 현지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초동 대처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애초 한 쇼핑몰에 갔다가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 외국인 노동자가 기숙사에 함께 사는 동료들을 다시 감염시키면서 기숙사 내 연쇄 감염으로 이어졌는데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과 위생 실태는 고려하지 않은 채 이들이 묵고 있던 기숙사에 집단 격리시키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

싱가포르에는 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등에서 온 20만명 이상의 외국인 노동자가 43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재 기숙사 18곳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해 8곳이 격리 지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10여명이 함께 묵는 좁은 방, 비누와 세제도 없어 샤워와 청소는 사치로 여겨지는 공동 시설이 오히려 집단 감염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한 외국인 노동자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방에 12명이 사는데 어떻게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하냐”고 되물은 뒤 “부엌은 물론 방에도 바퀴벌레가 많고, 화장실 소변기는 소변으로 넘친다”고 말했다.

실제 외부와 봉쇄된 격리 기숙사에선 매일 코로나19 환자가 추가되고 있다. 싱가포르 한 의사는 이번 사태를 대형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비극에 빗대며 “엄청난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엠네스티 싱가포르 지부는 “적절한 위생 시설과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한 공간을 마련하지 않고 수천 명을 극도로 밀집된 공간에 격리하는 것은 재앙을 가져오는 처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외국에서 돌아온 자국민들을 2주간 격리시키는 전용시설로 쓰이고 있는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샹그릴라 라사 센토사 리조트&스파' 전경. 리조트 홈페이지 캡처
외국에서 돌아온 자국민들을 2주간 격리시키는 전용시설로 쓰이고 있는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샹그릴라 라사 센토사 리조트&스파' 전경. 리조트 홈페이지 캡처

결국 ‘차별이 부른 비극’이라는 지적이 많다. 싱가포르 정부는 해외에서 돌아온 자국민에게는 룸 서비스와 바다 전망이 있는 5성급 호텔을 14일간 자가 격리 공간으로 제공했다. 반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많게는 2만명 가까이 비좁은 기숙사에 격리됐다.

싱가포르 정부는 뒤늦게 군부대, 전시장, 크루즈선 등을 외국인 노동자들의 분산 수용 시설로 지정하고 있다. 증상이 있거나 확진 판정을 받은 노동자는 기숙사 시설에 남겨 치료하되 건강한 노동자들은 정부가 지정한 공간에 따로 수용하는 방식이다. 외국인 노동자 감염 대응 태스크포스(TF)도 꾸렸다.

싱가포르 방역 요원이 공립학교 개학 이틀 뒤인 지난달 25일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나온 유치원에서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스트레이츠타임스 캡처
싱가포르 방역 요원이 공립학교 개학 이틀 뒤인 지난달 25일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나온 유치원에서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스트레이츠타임스 캡처

사실 방역 모범 싱가포르의 뼈아픈 판단 착오는 더 있다. 싱가포르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지난달 말까지 거의 석 달간 마스크는 병이 났을 때만 써서 감염 전파를 피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다 확진 환자가 1,000명을 넘어간 다음날인 이달 3일 리셴룽 총리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마스크 착용 권고’ 발표를 했다. 이후 열흘 남짓 만에 감염자 숫자가 3,000명을 훌쩍 넘어서자 결국 14일 마스크 착용 의무화 카드를 꺼냈다.

싱가포르 교육부는 지난달 23일 공립학교 개학을 강행했다가 이틀 뒤 유치원 등에서 교직원들의 집단 감염이 발생하며 여론이 악화하자 2주만에 온라인 재택수업으로 전환한 바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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