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5 총선에서 압승 성적표를 받아 든 거대 여당의 파상공세가 심상찮다. 검찰도 표적이다. 특히 ‘조국 수호대’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우희종 공동대표는 총선 바로 뒷날 “서초동에 모였던 촛불 시민은 힘 모아 여의도에서 이제 당신의 거취를 묻고 있다”며 사실상 윤 총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서초동에서 ‘윤석열 아웃’을 외치던 조국 수호대가 대거 여의도 입성에 성공하면서 윤 총장은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열린민주당의 최강욱 당선인이 윤 총장을 공수처 수사대상 1호로 꼽았던 점을 감안하면 조국 수호대의 압박이야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최 당선인은 급기야 “한 줌도 안되는 부패한 무리의 더러운 공작이 계속될 것”이라며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선전포고까지 했다. ‘검찰 구성원의 일부에 불과한 윤 총장과 패거리들’이라고 대상도 분명히 했다.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 임명 당시 “윤석열의 삶이 어디 한 자락 권력을 좇아 양심을 파는 것이더냐”라던 윤 총장에 대한 평가는 2년 만에 “저 사악한 것들”로 180도 바뀌었다. 정세 변화에 따라 피아구분을 달리하는 것이야 냉혹한 정치 생태계의 본질로 치부하더라도, 최 당선인이 내뱉는 말에서 풍기는 적의와 살기는 섬뜩하고 오싹하기 그지없다.
이쯤 되면 윤 총장이 맞대응을 할 법도 한데 의외로 차분하다. 펜으로 쓸 때 잉크도 별로 들지 않는 다섯 글자 ‘정치적 중립’이 유일하게 공개된 입장이다. 총선 당일 패딩 점퍼 차림으로 투표를 마친 뒤 대검 검사들과 마주 앉은 ‘점심 번개’ 자리에서다. 꼬리뼈 근처 종기 수술을 하는 바람에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윤 총장은 오랜만에 검사들을 만나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믿음을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밝혔다고 한다. 여당의 총선 압승이 확인된 뒤에도 “정치와 검찰은 무관하다”는 입장과 “나는 내 길을 간다”는 소신은 변하지 않았다는 게 총장 측근의 전언이다.
하지만 검찰 주변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검찰은 당선인 90명에 대한 선거법 위반 등 수사에 착수하고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수사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선거개입 사건의 경우,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기소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 여부까지 달린 수사라서 청와대가 여간 민감한 게 아니다. 여권 배후설이 파다한 라임자산운용 사건과 관련해서는 청와대 전 행정관도 전격 체포했다. 총선 이후 검찰 수사가 일제히 권력을 조준하는 듯하자 검찰 주변에서는 거대 여당의 총공세에 맞선 윤 총장의 저항이나 검찰과 권력의 일대 충돌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 총장과 검찰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다 보니 검찰 주변에서는 ‘윤 총장이 거대 여당의 총공세에 밀려 사표를 낼 것이다’ ‘공세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할 것이다’ 등의 선택적 시나리오까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윤 총장의 스타일로 미뤄볼 때 전자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총선 과정에서 황교안 오세훈 나경원 등 거물급이 모두 사라진 보수 진영의 차기 대권 레이스를 감안하더라도 윤 총장으로서는 후자가 명분과 실리 모두를 찾는 길일지 모르겠다.
윤 총장의 임기는 내년 7월까지 1년 넘게 남았다. 거대 여당 입장에서는 총구를 권력 주변으로 돌리는 총장을 몰아내고 싶겠지만, 2년 임기를 보장하지 않고 쫓아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윤 총장 또한 마냥 권력과 각을 세우는 게 능사는 아니다. 정치적 파장이 큰 수사에 나설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주변 정돈조차 안된 상태라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장모와 부인 감싸기 논란이나 언론과 유착했다는 측근에 대한 처리 방향을 통해 윤 총장의 행보를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정곤 사회부장 jk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