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강남 력삼동(역삼동) 가려면 려권(여권) 준비 해야갔네.”
4ㆍ15 총선이 ‘중장년ㆍ남성ㆍ기득권’ 중심 정치 질서에 도전장을 내민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로 얼룩졌다. ‘최초의 탈북민 출신 지역구 의원’이 된 미래통합당 태구민(태영호) 서울 강남갑 당선자를 향해 쏟아진 진보 성향 지지자들의 차별과 혐오 발언이 대표적이다. 여성 후보를 향한 폭력도 이어졌다. 소수자들의 목소리와 이익을 낼 수 있는 이들의 정치 참여에 아직까지 배타적인 우리 사회 단면이 투영된 것이다.
총선 이후 탈북민 출신의 태 당선자를 겨냥해 강남 지역을 조롱하는 것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일종의 유행이 됐을 정도다.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로 있다가 지난 2016년 망명한 태 당선자의 출신을 빗대 “앞으로 강남에 ‘인민이 편한세상’ ‘천리마 아파트’가 지어질 것”이라든가 “지하철역도 ‘력삼역(역삼역)’ ‘론현역(논현역)’으로 바꿔야 한다”는 글이 총선 직후부터 온라인 공간에서 퍼지고 있다. 태 당선자를 비난하는 여론의 저변에는 “강남 기득권이 현 정부 부동산 규제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를 대표로 선출해 조롱 받아 마땅하다”는 식의 논리가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태구민을 향한 친문의 혐오 캠페인”이라며 “견제할 세력도 없고 경고할 주체도 없다”고 비판했다.
총선 다음날인 16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서울 강남구 재건축 지역에 탈북자 새터민 아파트 의무비율로 법제화 시켜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해 12만명이 넘게 동의한 상태다. 표면적으로는 ‘강남 주민의 높은 정치 의식’을 치켜세우는 것처럼 읽힌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태 당선자와 그를 선출한 강남갑 주민을 향한 비아냥거리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 태 당선자 측은 “원색적 비난이나 네거티브에 하나하나 대응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여성 후보자에 대한 폭력도 재현됐다. 공식선거운동기간 막바지였던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갑에 출마한 신지예 무소속 후보의 선거벽보가 훼손된 채 발견돼 논란이 됐다. 신 후보는 입장문을 내고 “페미니즘을 외치는 여성의 목소리를 탄압하는 혐오 범죄”라고 개탄했다.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 알려진 신 후보는 이미 2018년 6ㆍ13 지방선거에서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당신의 페미니스트 국회의원’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서울 은평을에 나섰던 신민주 기본소득당 후보도 이번 선거운동과정에서 선거벽보가 훼손당하는 일을 겪었다.
유독 지역구 선거에 나선 소수자 후보에 대한 공격이 반복되는 것은 이들의 일반적 정치 입문 통로였던 비례대표 선거보다 노출 빈도가 잦다는 데 있다. 이에 더해 ‘중년ㆍ남성ㆍ기득권’이 장악한 지역구 선거에 영역을 넓히려는 소수자들에 대한 견제 심리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총선에서 드러난 이런 모습들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다문화나 소수자에 폐쇄적인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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