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개학 아닌 ‘엄마 개학’이 빚은 신풍속도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김모(45)씨는 최근 소음 문제로 윗집과 심하게 다퉜다. 온라인 개학으로 집에서 원격 수업을 듣는 아이가 윗집의 인테리어 공사 소음 때문에 통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해서였다. 관리사무소를 통해 공사 시간을 오후 시간대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하자 김씨는 윗집에 찾아가 항의했고 이내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김씨는 “윗집도 사정이 있겠지만 이런 시기엔 좀 배려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이 실시되면서 아이들의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부모들의 분투가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수업으로 인한 학력 저하 논란이 비등한 가운데, 소음 문제를 두고 아파트 등 공동주택 안에서 이웃과 갈등을 겪는 사례까지 잇따른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만들어낸 신풍속도다.
온라인 개학 이후 당장 공동주택에선 김씨 경우와 같은 소음 관련 분쟁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의 A아파트에선 아침마다 “아이들이 온라인으로 학교 수업을 듣고 있으니 가급적 생활 소음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이웃집 생활 소음이 아이 수업에 방해가 된다는 민원이 관리사무소에 쏟아지면서다. 초등 6학년 아이를 둔 권모(50)씨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종일 집에서 수업을 듣고 있으니 소음 문제에 예민해 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들도 나름 집에서 생활소음을 차단하는데 비상이다. 전업 주부인 김모(45)씨는 “중학생 아들이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 수업 끝날 때까지 빨래나 청소는 언감생심이고, TV도 안 본다”며 “집안 일을 저녁에 몰아 하다 보니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한 인터넷 카페엔 “생활 소음을 피하려고 아예 차로 데려가거나 아침마다 카페에 간다”는 글엔 동조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아이들 면학 분위기를 위해 아이 방을 새로 꾸미는 부모도 많다. 중학생 자녀를 둔 최모(45)씨는 최근 큰 마음 먹고 아이 방의 책상과 의자를 오래 앉아 있어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고가의 학생가구로 싹 바꿨다. 혹시라도 창으로 들어오는 볕이 방해가 될까 싶어 ‘암막 커튼’도 달았다. 최씨는 “옆에 노트북, 앞엔 대형 모니터를 두고 공부하는 아이를 보니 마치 미래를 바꿀 주역처럼 보여 혼자 웃었다”고 했다. 실제 요즘 온라인에선 학생용 가구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8일까지 책상·의자 등 오피스 가구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2.5%나 뛰었다.
각급 학교의 등교가 기약도 없이 미뤄지고 있는 가운데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면서 ‘엄마 개학’이란 푸념도 적잖다. 온라인 수업을 듣는 아이를 위해 엄마가 비상 대기조처럼 붙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 입장에서는 더욱 가혹하다. 아이의 온라인 수업을 도우려면 부모 중 한 명은 어쩔 수 없이 휴가라도 내야 하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직장인 이지현(46)씨는 “온라인 수업 듣다가 모르는 게 생기면 아이들이 바로 엄마부터 찾는데 하루에 백 번 정도는 찾는 것 같다”며 “세상에서 제일 극한 직업은 엄마라는 말에 새삼 공감한다”고 토로했다.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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