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180석 압승’을 만들었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대응, 일하는 국회에 대한 갈증, 개혁 요구.’ 더불어민주당 설훈(경기 부천을) 김종민(충남 논산ㆍ계룡ㆍ금산) 정춘숙(경기 용인병) 당선자가 공통적으로 꼽은 승인이다.
◇ 설훈 “개혁 제대로 하라는 민심 명령 덕분”
코로나19 국면에 적극 대응한 정부, 이를 향한 국내외 찬사가 주효했다. 어려운 국면이었는데 적극 대응해 평가가 바뀌었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 압승 때와 비슷한 구도가 됐다. 조용하고 신사적인 유세로 국민과 함께 모범적 선거를 치른 모습도 긍정 요소였다. 공천 과정도 대비됐다. 미래통합당은 공천 파동을 겪은 데 비해 민주당은 시스템 공천을 해냈다. 30년 정치 인생에서 이렇게 모두 납득하는 공천은 저도 처음 봤다. 공천이 큰 힘을 발휘했다.
무엇보다 개혁을 제대로, 더 해나가라는 민심의 명령이 여전했다. 국민은 촛불을 들어야 했던 상황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정치ㆍ검찰ㆍ언론 개혁 요구가 여전히 크다. 우리에겐 숙제와 같은 결과다. 특히 정치개혁에 있어선 야당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반대하고 발목 잡은 모습에 국민들이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차곡차곡 심었다. 중도층은 물론이고 보수층도 일부 돌아섰다. 차명진 통합당 후보가 ‘이미 결과는 나와 있었다. 내 탓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게 일면 일리가 있다.
이런 결과인 만큼 21대 국회를 여당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고 야당은 사사건건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여야가 함께 ‘정쟁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 코로나19가 만드는 경제 난국이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 IMF 사태보다 우리 경제에 더 깊은 상처를 낼 것이다. 여야가 협의정치를 당장 선언해야 한다. 반대를 하더라도 테이블 위에서 해야 한다.
민주당으로선 강화된 지역주의 극복이 숙제다. 김영춘, 김부겸의 낙선이 뼈아프다. 극복해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위성정당 논란도 극복해야 한다. 정당성이 정치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기본적으로 바르게 가야 국민께 인정받을 수 있다. 다시는 궁한 방향으로 가선 안 된다.
◇ 김종민 “일 안 하는, 일 못하는 정치 심판”
예상보다 더 큰 힘을 모아주셨다. 이번 선거는 일 안 하는 정치, 일 못하는 정치에 대한 심판이었다. 비단 야당 얘기가 아니다. 둘 다 심판하는데 야당을 더 강하게 심판했다는 게 더 정확하다. 민주당이 좋고 예뻐서가 아니라 ‘적대적 대결을 한 정치권 전체를 심판할 테니, 한쪽이 그래도 제대로 한 번 해보라’고 힘을 몰아주신 거라 본다. 일을 제대로 하면 보답하는 것이고 엉뚱한 데 힘을 쓰면 우리도 그대로 심판 받게 된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야당이 국민을 신경 쓰기보다 ‘반대를 위한 반대’에 눈이 먼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아, 이건 정말 아니다’, ‘정말 대한민국 미래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마지막 결심을 굳히게 한 장면 같다. 여야가 함께 협력하는 가운데 견제가 필요한 국면에서 야당이 기능했다면 이렇게까지 쏠린 결과는 아니지 않았겠나.
국민이 얼마나 현명한지, 한편으로는 무서운지 절감했다. 코로나19 대응을 비롯,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대한 엄청난 정보가 있었다. 반대와 비판 프레임이 상당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조용히 본질을 지켜 보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목소리 큰 사람들이 아무리 주장해도 국민들은 여기 흔들리지 않고 본질을 본다는 것을 확인한 선거였다. 국민 무서운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생각했다.
정치는 배고 민심은 바다다. 아무리 큰 배라도 민심이 출렁이면 뒤집힌다. 민주당이야말로 숫자에 착시를 일으키지 말고 항상 민심에 함께 가야 한다. 그 민심의 내용이 바로 ‘야당과 협력하라’는 것이다. 국민이 주신 수의 힘을 쓰는 것은 그 다음이다. 하다 하다 정 안 될 때, 다시 발목잡기가 재현될 때, 그 다음에나 ‘180석이라는 숫자’를 써야 양해 받는다. 설득하고 대화하는 걸 소홀히 하는 순간 배는 뒤집힌다.
◇ 정춘숙 “야당 발목잡기 정치 평가”
이 정도까지라곤 생각 못했다. 조심스럽게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당내에 크다. 코로나19 대응에 적극 나선 정부와 여당에 대한 긍정 평가, 대한민국 정치가 이제는 달라야 한다는 평가, 보수가 이제는 새로운 가치를 정립해야 한다는 평가가 종합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싶다.
코로나19 대응은 최근 들어 받은 세계적 평가가 컸다. 마스크 대란 등을 꿋꿋하게 대응해 나가고, 겸손하게 어려운 사정을 국민께 이야기한 게 컸다고 본다. 경제 위기가 심각하니 이런 상황을 잘 해결하며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라는 사인을 주신 것 같다.
여야 갈등이 국회가 기능을 못할 정도여선 안 된다는 마음에서도 정부 여당에 힘을 실어주신 게 아닌가 싶다. 통합당의 발목잡기 정치에 대한 평가였다. 회의 보이콧이 제가 기억하는 것만 스무 번이 넘는다. 합의서를 쓰고도 2시간 만에, 4시간 만에 뒤집는 그런 모습을 국민들이 모두 지켜본 것이다. 정치가 정말 달라져야 한다는 명령이다.
보수도 실종한 애국, 헌신 등의 가치를 회복하라는 메시지도 담겼다. 더 이상 수구세력이 되어버린 모습으로는 안 된다는 평가다.
중요한 것은 정말 접전지역이 많았다는 점이다. 접전은 그 자체로 ‘앞으로 잘하지 않으면 언제든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당장 제가 당선된 지역에서도 제가 16년 만에 접전을 통해 이겼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곳이 그만큼 많다. 정부나 당에서의 문제도 더 적극 바로잡아야 한다. 제게 그 역할을 기대한다는 분들도 많다.
겸손을 버리면 정치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두가 안다. 여성 공천 30%도 부끄럽게 지키지 못했다. 여성 의원이 몇 명 늘긴 했지만 큰 의미를 담기 어렵다. 많은 것이 부족하고, 많은 대목에서 아직 멀었다. 어깨가 무겁다.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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