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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희의 러시아 프리즘]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은 석유 감산

입력
2020.04.19 18: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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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왼쪽에서 3번째)가 10일 수도 리야드의 에너지부 청사에서 주요 20개국(G20) 에너지 장관들이 참여하는 화상 회의를 주재하며 감산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왼쪽에서 3번째)가 10일 수도 리야드의 에너지부 청사에서 주요 20개국(G20) 에너지 장관들이 참여하는 화상 회의를 주재하며 감산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OPEC+ 회의에서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추가 감산에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자 국제 유가는 폭락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개의치 않는 듯 오히려 증산을 선언해 유가 하락을 더욱 부채질했다. 하지만 유가 폭락이 세계경제 및 산유국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컸기 때문에, 산유국들은 지난 한달 간 긴밀한 협상과 대화를 이어갔다. 전 세계 산유량 톱3 국가인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 그리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전화 접촉을 하고 유가문제 조율을 진행했다.

마침내 4월12일 긴급 화상회의에서 OPEC+ 국가들은 5, 6월 두 달 간 하루 970만 배럴의 감산을 합의했다. 이후 7월부터 연말까지 770만배럴, 내년 1월부터 4월까지는 580만배럴 감산을 약속했다. 실로 사상 최대 규모의 감산 합의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세계적 석유 수요 감소에 상응하는가 하는 것이다. 대규모 감산 합의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가 상승한 것이 아니라 더 하락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조치가 국제유가를 떠받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시장은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러시아는 이번 감산 합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전반적 평가 기조는 ‘실패’쪽이다. 러시아가 3월 OPEC+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추가 감산안을 거부한 것으로부터 얻은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러시아는 당시 추가 감산은 없다고 선언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감산에 합의해야 했다. 3월 회의에서는 기존의 감산량 210만배럴에 추가 170만배럴이 제안되었는데, 이제 산유국들이 총 970만배럴을 감산해야 하니 러시아가 줄여야 할 몫은 크게 늘어났다.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 측이 원했던 감산량은 지난 1분기 러시아 산유량의 14%에 해당하는 160만배럴이었지만 이러한 러시아 측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 러시아는 5월부터 하루 250만배럴을 감산해야 하는데, 이것은 러시아 하루 산유량의 20%에 해당한다. 또한 3월 초 OPEC+ 회의에서 제안되었던 러시아 의무 감산량의 무려 4배에 달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세계 경제 침체라는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러시아의 OPEC 외교가 그리 성공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두 번째로, 러시아는 이번 감산 결정으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큰 피해를 보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똑같이 하루 250만배럴을 감산해야 하기 때문에, 양국의 희생 정도가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막은 좀 다르다. 감산 정책을 통한 유가 유지를 주도하던 사우디아라비아는 그 동안 자발적으로 할당량보다 더 큰 감산을 해왔기 때문에, 4월 이전까지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제 하루 산유량은 러시아보다 오히려 적었다. 그런데 3월 감산 합의 결렬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 970만배럴이던 산유량을 4월부터 1,300만배럴로 늘렸고 그 결과 새로운 감산 합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일일 산유량은 러시아의 산유량과 똑같이 1,100만배럴로 책정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평소보다 더 높은 산유량을 기준으로 감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실질 감산량은 이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 피해는 러시아보다 훨씬 적다.

세 번째로, 이번 OPEC+ 결정에 따라 러시아는 더 엄격한 의무 이행 검증을 받게 되었다. 러시아는 이라크와 더불어 OPEC+ 합의를 가장 잘 지키지 않는 국가 중 하나이다. 러시아는 2019년의 경우 오직 3개월만 허용된 산유량만큼만 생산을 했는데, 이것마저도 드루지바 송유관의 오염문제로 수출 지장을 받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따라서 보다 강화된 검증 시스템은 러시아로 하여금 감산 할당량을 지키도록 강요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는 비OPEC+ 산유국들과 관련해 자국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러시아는 미국 셰일오일업계의 생산량 및 시장점유율 증가에 대해 늘 불만이었고, 이 때문에 3월 OPEC+ 추가 감산 제안에 반대했었다. 따라서 이번 OPEC+ 회원국들의 감산 노력에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등의 다른 산유국들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끝내 10일 사우디아라비아 주재로 열린 G20 화상회의에서 G20에 속한 산유국들의 감산 합의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단지 국제 에너지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공조한다는 공허한 성명만이 나왔을 뿐이다. 이것은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임에 틀림없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미국 셰일오일업계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러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나 공히 3월의 증산 전쟁이 미국의 셰일오일업계를 겨냥한 것이라는 점을 단호히 부인하지만, 저유가가 미국 셰일오일업계에 가져올 충격에 대해 몰랐을 리 없다. 이제 러시아도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한 지 어언 30년. 그들도 알고 있다. 결국은 시장이 결정할 것이라는 것을.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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