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동남아시아 각국의 대응 방향과 속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의료 및 국가통제 체제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베트남과 태국은 유럽ㆍ미국처럼 조심스레 ‘출구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한 반면, 필리핀과 나머지 인도차이나 국가들은 여전한 확진세를 억누르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16일 VN익스프레스와 방콕포스트 등 동남아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베트남은 이날 하루 310명의 코로나19 의심 환자를 격리했다. 의심 환자가 매일 수천명씩 폭증하던 지난달 중순 이후 간만에 세자리 단위로 격리 수치를 끌어 내렸다. 이달 1일만해도 4,617명의 의심 환자를 격리했던 것과 비교하면 15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베트남은 양성 판정 역시 열흘 동안 한 자릿수를 유지, 이날 현재 268명의 확진자만 나온 상태다. 이들 중 171명은 이미 완치돼 퇴원했다.
확진세가 꺾였다고 판단한 베트남 정부는 출구전략 마련에 돌입했다. 전날 국가검역위원회는 전국 63개 지방을 △고위험(12) △위험(15) △저위험(36)으로 분류한 뒤 감염 가능성을 기준으로 각기 다른 격리 해제 정책을 적용키로 했다. 고위험과 위험 지역은 일단 일주일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기존과 같이 유지하고, 저위험 지역부터 부분적으로 이동 및 경제활동을 푸는 방식이다. 베트남 보건당국 관계자는 “이달 말부터 내달 초까지 노동절 등 베트남의 공식 연휴가 이어져 그 전까지는 지역 및 업종별로 순차적으로 격리 수준을 낮추는 방식을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국은 연휴 후에도 이런 감소세가 유지될 경우 내달 중순부터는 일상 생활이 가능한 수준까지 격리를 해제할 계획이다.
태국도 봉쇄 해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태국은 최근 일주일 사이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지난 달 말의 10% 수준인 30명 안팎으로 줄어드는 등 전파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또 2,643명의 전체 확진자 중 절반이 넘는 1,405명이 회복하는 등 기존 환자에 대한 대처 능력도 많이 향상됐다.
상황이 호전되자 태국 정부는 이달 말까지 예정된 야간 통행 금지령을 지역별로 완화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 수도 방콕과 인접한 논타부리주(州)는 전날부터 일부 상점의 영업을 허용했으며, 북동부 우돈타니시도 18일부터 식당 영업을 허용할 예정이다.
양국을 제외한 나머지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들과 필리핀은 좀처럼 코로나19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확진자 수 동남아 1위로 올라선 필리핀은 전날 기준 총 5,453명의 감염자와 34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매일 200명 이상의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사망자도 매일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등 감염 속도가 여전하다.
필리핀의 확산세는 턱없이 부족한 의료시설에 기인한다. 최근 웡 상엉 중국 필리핀 의료 지원팀장은 현지 6개 병원을 둘러본 뒤 “필리핀은 바이러스 근원을 차단할 수 없는 위험에 처했다”고 잘라 말했다. 의료시설이 절대 부족한 탓에 초기 확진자 대부분이 자택에 격리하면서 병을 키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정부는 뒤늦게 해결책 마련에 나섰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당국은 하루 2,100명 검사가 가능한 임시 병원을 수도 마닐라에 추가 준비하고, 대형 컨벤션 센터도 격리 시설로 전환하기로 결정했으나 이 정도로는 폭증하는 확진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인도차이나 저개발 국가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들 국가는 자국 최대 명절인 구정 설 연휴 동안 귀향민들의 이동을 금지시키는 등 ‘물리적 거리두기’ 대응만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날 현재 각국 정부가 밝힌 확진자 수는 캄보디아 122명, 미얀마 74명, 라오스 19명에 그친다. 그러나 이는 수만명으로 추산되는 자국 내 의심환자를 검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보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실제로 인접국 베트남은 이날까지 약 13만명을 검사했으나 캄보디아 등은 하루 최대 검사 능력이 400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금 검사도 이웃 베트남과 중국 등이 보내준 진단키트와 의약품 덕분에 가능했다고 한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은 갈수록 양극화하는 권역 내 코로나19 대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있다. 이와 관련, 아세안은 14일 열린 10개국 특별 화상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신탁기금을 재분배해 회원국을 돕기로 결의했다. 이어 코로나19 정보와 의료 조사를 공유할 구체적 방식에 대해서도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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