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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읽기] 개인 피해 넘어 국토 계획까지 마비… 기획부동산과 전쟁이 필요할 때

입력
2020.04.18 04:30
수정
2020.04.18 14:3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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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지 분할 방식 어려워지자 펀드형 등 수법 지능화

정상적 개발 방해하고 땅값 올려 지속가능 발전 저해

거래허가구역 등 신종수법 맞설 제도적 예방책 필요

지난해 5,000명 가까운 사람이 기획부동산에 의해 피해를 입은 성남시 상적동 임야. 경기도 제공
지난해 5,000명 가까운 사람이 기획부동산에 의해 피해를 입은 성남시 상적동 임야. 경기도 제공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거주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2> 도시발전 암적인 존재, 기획부동산

허위 개발정보를 미끼로 한 부동산 사기를 일컫는 이른바 ‘기획부동산’으로 인해 전 국토가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사기 수법이 갈수록 고도화돼 피해자가 예상보다 훨씬 많은 데다 국토에 미치는 폐해 또한 치명적이다. 작전세력들이 매수해 이용이 불가능해진 토지들이 급증하고 있어 국토와 도시계획기능을 마비시킬 우려까지 나올 정도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사기와 투기의 만남

기획부동산은 보통사람들의 투기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부동산 사기집단이다. 투기심리가 없다면 발 붙이기 어렵겠지만, 우리나라 부동산역사에서 투자와 투기의 경계를 나누기 쉽지 않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도시개발을 거치며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땅주인들이 양산됐고, 대대로 농사짓던 촌부가 보상비로 수십억을 받아 자산가가 되는 일들이 드물지 않았다. 강남개발이 그랬고, 신도시가 그랬다.

오늘날 기획부동산의 ‘원조’ 격인 토지매매사기는 1983년부터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당시 경제지 보도들을 보면 온천개발과 신시가지계획, 도로확장 등의 근거 없는 소문을 내면서 주로 부녀자들을 상대로 쓸모 없는 땅을 속여 팔았다. 제주도 별장자리 땅이라고 속아 평당 1,000원짜리 땅을 5,000원에 샀는데 실제 가보니 개간조차 할 수 없는 땅인 경우도 있었다. 일찌감치 전화로 땅을 사고 파는 언택트(untact) 마케팅이 사기에 동원된 것이다. 부동산 개발로 벼락부자가 됐다는 무용담을 익히 들어온 터라 상당수 사람들이 사기꾼들의 현란한 거짓말에 쉽게 속아 넘어갔다.

기획부동산이란 용어가 본격 등장한 것은 1999년부터였는데 이후 2005년께 가히 전성기를 누렸다.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는 국토균형발전의 일환으로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와 혁신도시를 전국에 걸쳐 추진했고, 이로 인해 전 국토는 개발 기대감으로 들썩였다. 기획부동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행정수도 후보지로 회자되던 천안, 아산 등이 기획부동산의 주 활동무대가 되었고,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기대어 전국 모든 대상지가 이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결국 참여정부는 2005년 2월 ‘부동산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6월에는 허위정보로 매매차익을 챙긴 기획부동산 업체 95개를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한다. 그러나 이미 피해자들이 대거 양산된 후라 사후약방문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기획부동산 바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일반 국민뿐 아니라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기획부동산의 올가미에 걸려드는 경우까지 등장했다. 그 절정은 2011년이었다. 1월에는 한 장관후보자의 땅투기 의혹이 드러났고, 2월에는 경기도 한 군수가 기획부동산업체에서 뇌물을 받고 일명 쪼개기(필지분할)를 도와준 혐의로 구속되었다. 3월에는 감사원장 후보자 부인이 기획부동산으로 보이는 업체로부터 필지 분할한 임야를 사들인 것이 인사청문회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저작권한국일보] 기획부동산 업체들의 일반적인 조직구성 - 김문중 기자
[저작권한국일보] 기획부동산 업체들의 일반적인 조직구성 - 김문중 기자

◇교묘해지는 수법, 심각해지는 폐해

문제는 기획부동산의 폐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수법이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기존의 필지분할방식을 벗어나 펀드형, 지분형, 도시형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제도개선으로 필지분할이 어려워지자 부동산펀드에 투자하라고 속인다거나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도시형 기획부동산이 늘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도시 외곽 임야를 대상으로 한 과거의 방식보다 부작용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개발가능성이 높은 도시용 토지를 미리 확보한 후 실수요자에게 높은 금액으로 되파는 식인데, 이는 도시의 정상적인 개발을 방해하고 지가를 높여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을 저해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택지개발지구의 정보를 미리 입수한 뒤 유령상가나 허위영농계획서 등을 제출하여 보상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획부동산의 행위는 단순한 사기수준을 넘어 국토정책에 심대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기획부동산의 폐해가 단순히 개인에 국한되지 않게 됐음을 뜻한다. 2011년 필지분할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이루어졌던 바둑판식 필지분할 후 매각된 토지들은 결과적으로 지역의 민원을 발생시켜 예정에 없던 개발압력을 발생시키기도 했다. 앞서 살펴보았던 기획부동산 사기사건 중에는 투자자들을 속여 토지를 판매한 다음 수익금의 일부로 로비를 벌여 도로의 신설이나 용도변경을 시도했던 건들도 다수 있다. 조금 과장하면 지역의 중장기적인 도시계획과는 무관하게 기획부동산업자가 도시계획 방향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개발호재가 많은 경기도 지역이 기획부동산 업자들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통상 기획부동산 거래로 의심하는 ‘법인에서 개인으로의 토지매매’가 집중적으로 늘고 있어서다. 전국적으로 2010년 8만건이던 것이 2019년 13만건으로 61%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경기도는 2만여건에서 6만여건으로 약 3배 증가했다. 많은 토지가 법인으로부터 개인에게 지분이나 소규모필지 형태로 매각된 것이다. 가장 극단적인 예는 성남시 금토동의 임야로 기획부동산 3개사가 사들인 후 무려 4,900여명의 개인에게 판매하여 800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건이다. 이 토지는 개발제한구역이면서 해발 500m가 넘는다. 청계산 국사봉과 이수봉의 동쪽사면으로 가장 낮은 곳도 해발 200m에 달하는 절대 개발이 불가한 토지이다.

올해 '기획부동산' 업체들이 활개를 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개발호재가 많은 경기 안성이 꼽힌다. 빨간 삼각형으로 표시된 지역은 법인이 개발 불능지를 취득한 뒤 개인에게 팔려는 움직임이 포착돼 기획부동산이란 의혹을 받는 곳들이다. 토지건물 정보플랫폼 밸류맵 제공.
올해 '기획부동산' 업체들이 활개를 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개발호재가 많은 경기 안성이 꼽힌다. 빨간 삼각형으로 표시된 지역은 법인이 개발 불능지를 취득한 뒤 개인에게 팔려는 움직임이 포착돼 기획부동산이란 의혹을 받는 곳들이다. 토지건물 정보플랫폼 밸류맵 제공.

◇정교한 예방책, 강력한 처벌 필요

기획부동산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사전예방이 쉽지 않고 처벌이 가볍다는 데 원인이 있다. 수십 억에서 수백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뒤 법인을 해산하고 도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망행위나 재산상 손해가 발생한 부동산 범죄는 ‘사기죄’가 성립되지만 기획부동산이 법인을 해산하면 금전적 피해보상은 요원하다. 게다가 다단계식 판매를 활용한 경우 직원들이 직접 관여하게 되므로 정작 주범은 책임을 전가하고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기도 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정교한 예방책이 절실하다.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토지분할규제를 정비해 쪼개기를 통한 기획부동산 피해는 크게 감소했지만, 지분투자나 펀드형 등 새로운 수법이 등장했다. 신종 기획부동산의 방식에 대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5년 이내 범위에서 일정규모 이상의 토지거래에 대해 미리 시장ㆍ군수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 토지거래허가구역의 골자이다. 신도시지정이나 투기우려가 있는 지역에 지정하여 실수요자 위주로 거래가 일어나도록 하는 조치이다. 기획부동산이 활동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광범위하게 지정하여 피해를 예방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일정 조건을 갖춘 토지에 대해 지분거래를 제한하는 방법도 있다. 법적ㆍ물리적으로 개발이 불가능한 토지에 대해서는 기업이 개인에게 일정 수(예컨대 3인) 이상으로는 지분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보유 후 일정기간 동안(3년)에는 양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필지분할에 대해 3개의 필지 이내로만 허용한다던지 토지취득 후 3년 이내에는 택지식 및 바둑판식으로 분할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제도라 할 수 있다.

부동산거래 신고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 하다. 최근 부동산거래신고기간이 60일에서 30일로 단축되었다. 이를 통해 상당부분 시차로 발생하는 부동산시장의 가격왜곡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획부동산의 경우 취득 후 30일이내에 45%정도를 지분매각의 형태로 팔아 넘긴다는 점을 고려하면 30일도 길다. ‘기획부동산관리지역’ 등을 신설하여 이 지역에서는 계약과 동시에 신고를 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다만, 잔금 등의 시기는 신고와 이원화하여 신고기간의 단축으로 정상적인 거래에서 잔금마련이 촉박해지는 부작용을 예방할 필요는 있다.

더불어 부동산투자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전환과 교육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사실 부동산투자는 누구에게나 매력적일 수 있으니 누구나 기획부동산의 덫에 걸릴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러한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국민들의 도시계획 기초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정보 서비스업체를 통해 개발 불능한 토지에 대해 검색을 할 때마다 알람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듯이 주요 행사나 기관에 ‘기획부동산 주의 교육’을 의무화할 수도 있다.

기획부동산에 대한 강력한 조치에 대해 새로운 규제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부동산의 가치는 상당부분 공공가치(public value)이다. 소유자가 스스로 만든 것보다는 대부분이 학교, 도로, 상하수도와 같은 공공서비스로 인해 발생한 가치이기에 그렇다. 그러므로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부동산가치를 왜곡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독식하는 것을 막는 것은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규제에도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가 있다. 정부는 주저하지 말고 기획부동산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강력한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할 때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ㆍ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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