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리스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상황에서도 결국 국제사회의 공동대응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 보건위기 국면에서도 자국 이기주의ㆍ고립주의로 일관해 유엔과 주요 20개국(G20) 등 국제 공조ㆍ협력 틀을 유명무실하게 만들더니 이번에는 전 세계 보건ㆍ위생분야 공인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의 돈줄까지 끊겠다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기본 의무 이행에 실패한 WHO에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자체적으로 WHO의 역할을 평가하는 2~3달 동안 자금 지원을 중단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는 특히 “WHO가 코로나19 사태 초반부터 중국을 편 들며 상황의 심각성을 은폐ㆍ축소해 전 세계적 확산을 초래했다”고 비난했다. WHO의 최대 기여국인 미국의 작년 분담금은 4억달러(약4,860억원)로 중국의 10배 수준이다.
실제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WHO는 중국 눈치보기, 뒤늦은 팬데믹 선언 등으로 국제사회의 빈축을 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WHO 때리기’는 자신을 향한 초기대응 부실 논란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많다. 미 CNN방송은 “주(州)지사, 민주당, 언론, 중국, 유럽에 이어 WHO를 콕 집어 본인의 상황 관리능력 부재에 대한 비판을 흐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이번 조치는 WHO의 실질적인 기능과 역할을 축소시킴으로써 현 상황에서 절실한 국제 공조ㆍ협력을 위태롭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미국의사협회(AMA)는 이날 성명에서 “팬데믹과 싸우는 일은 국제적 협력과 과학 및 자료에 대한 신뢰를 필요로 한다”면서 “WHO에 대한 자금 지원 삭감은 세계가 위태로운 가운데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위험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WHO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 세계의 노력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코로나19 사태만 놓고 봐도 미국의 ‘리더십 실종’ 사례는 수 차례 노정됐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달 26일 G20 특별 화상 정상회의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데 대해 “미국은 리더십을 재확보할 완벽한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조지 부시ㆍ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각각 2008년 금융위기와 2014년 에볼라 사태 당시 G20의 공동대응을 끌어낸 것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 노력을 미국 국경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볼라 사태 당시 유의미한 역할을 수행했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이번엔 존재감이 전혀 없다. 미국 내에서조차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바이러스’ 명칭 고집이 미중 간 힘겨루기를 낳고 있다”(뉴욕타임스)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이기주의가 군사적 경쟁ㆍ갈등을 넘어서는 인류 공동의 위협을 상정한 유엔 안보리의 ‘신(新)안보’ 대응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