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날이 밝았다. 제 21대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을 대표할 300명을 뽑는 날이다. 4년 간 ‘나’를 대신해 정부 예산을 심의ㆍ의결하고, 행정부를 견제하며, 법을 만들고 수정하는 막강한 권한이 300명에 주어진다. 민주선거는 유권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한 표씩을 준다. 국회를 바꾸고, 법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종래엔 역사를 바꿀 힘이 한 표를 쥔 손에서 나온다.
4·15 총선 투표는 15일 오전 6시부터 전국 1만 4,330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투표일까지의 여정엔 유난히 ‘초유의 일들’이 넘쳤다. 비례대표 정당을 둘러싼 꼼수 경쟁이 벌어졌고 공천 잡음과 막말 논란도 거듭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사방이 위축됐다. 그런데도 지난 10, 11일 사전투표에 1,174만 2,677명이 나섰다. 역대 최고 사전 투표율(26.69%)을 기록했다. 이들의 발길을 투표장으로 이끈 절박한 소망은 무엇일까.
본보는 이달 6~13일 온라인 설문조사로 유권자 100명에게 ‘이번 총선 투표장으로 향하는 마음’을 물었다. ‘내가 뽑은 후보가 21대 국회에서 하길 바라는 일’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경기 부양 △양극화 해소 △복지 확대 △인권 향상 △안전문제 해결 △정치 개혁 △지역 현안에 대한 다양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자신이 택한 후보와 정당이 “양극화를 해결하고 침체된 지역 경제를 살려 주기를” 바라고 “온 국민을 위한 민생 법안을 제대로 만들기를” 희망했다. 또 “소외 계층의 사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여성, 청년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를” 기대했다. 무엇보다 “편가르기와 갈등을 부추기지 않는 태도로 국가와 사회의 자원이 적재적소에 합리적으로 분배될 수 있도록 일하는 국회가 되기를” 당부했다.
이 어려운 과제들을 성의 있게 해결할 후보와 정당은 누구일까. 설문 응답자들은 “그 누군가를 부디 국회로 보내기 위해 투표장으로 향하겠다”며 이렇게 화답했다. 국회가 “늘 반목과 갈등뿐인 모습으로 비치지만, 그 가운데서도 열심히 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잘 압니다. 부디 처음 마음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랑 받는 국회가 되어 주세요. 저는 투표 꼭 할 겁니다.”
응답자들의 가장 많은 희망은 ‘일하는 국회로의 변모 등 정치 개혁과 국회의 태도 변화’(39명)에 집중됐다. “겸손한 태도와 소신 있는 의정활동을 할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상대 당을 존중하는 의원”을 국회로 보내기 위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투표장으로 향하겠다고 다짐했다.
‘침체된 지역 경제 살리기와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22명)을 희망한 답변이 그 뒤를 이었다. “경제 살리기에 공들여 주기를” “소외 계층의 사정에 더 귀를 기울이기를” “지역 이기주의에 매몰돼 쓸데없는 사업을 벌리기 보다 더 크고 넓은 시야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법안 발의에 힘 주기를” 바란다며, 그런 후보를 택하겠다는 답이 이어졌다.
‘내가 선택한 정당이 우선 해결했으면 하는 과제’로는 △정치 개혁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차별 철폐 △성평등 구현 △생활 안전 강화 △지역감정 해소 △동물권 문제 해결 △저출산 해결 △지역 균등 발전 등이 꼽혔다.
4년 전 20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투표 용지에 실어 보낸 바람들은 과연 얼마나 실현됐을까. ‘20대 국회가 해낸 일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에 대해 응답자들은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한 선거 연령 18세 하향 △위험의 외주화 방지 대책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김용균 법) 처리 △‘유치원 3법’(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 처리 △직장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ㆍ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처리 등을 꼽았다.
모두 특정 의원이나 정당이 집요한 의지로 성과를 끌어낸 현안들이다. ‘동물국회’와 ‘식물국회’ 오명을 함께 받은 20대 국회였지만, 유권자들은 그 와중에 누가 어떤 과업을 성취했는가를 오롯이 기억한 것이다. 다만 절반에 가까운 46명의 응답자는 “인상적인 일이 없다”고 답했다. 경상도 지역의 20대 응답자는 “인상적인 일이 이토록 없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거창해 보이는 이 과제들을 과연 ‘한 표’로 해결할 수 있을까. 한 표는 보기 보다 무겁다. 지난 20대 총선 개표 결과, 인천 부평갑 정유섭(34.2%ㆍ4만2,271표) 새누리당 후보는 26표차로 문병호(34.2%ㆍ4만 2,245표) 국민의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당락을 가를 ‘마지막 깃털’을 얹는 건 결국 한 표다.
20대 총선 투표율은 58.0%였다. 못 해서든 안 해서든 42.0%의 바람은 흩어졌다는 얘기다. 한 표에 온갖 희망을 꾹꾹 눌러 보내더라도 그 답장은 무척 느릴 것이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희미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바꿀 거의 유일한 수단은 오늘 손에 쥔 한 표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투표장으로 향한다. 희망의 씨앗을 국회 본회의장으로 밀어 넣기 위해. 내일을 더 밝히기 위해. 그렇게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해. 이제 투표에 나설 시간이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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