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예고 수당 없이 퇴직합의서 서명 요구
“사측 해고 이유가 타기업에 번질 우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영난에 처한 일본의 한 택시회사가 “휴업수당보다 실업급여를 받는 편이 낫다”는 이유로 직원 전원을 해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측은 직원 생계를 감안한 고육책이라는 입장이지만, 일방 통보에 일부 직원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더욱이 해고 과정에서 퇴직합의서에 서명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 사측이 해고예고 수당 지급을 피하려 편법을 동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도쿄 등에 7개 계열사를 보유한 로얄리무진은 지난 8일 택시운전사를 포함한 전 직원 600명을 해고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사측은 “정부의 긴급사태 선포에 따라 승객 감소 및 경영난 장기화가 예상된다”며 영업 중단을 전격 결정한 것이다. 이 회사 매출은 지난달에 전년 동기 대비 65~75% 수준으로 줄었고, 이달 들어서도 20% 수준으로 급락했다. 사측은 “고용을 유지하며 직원에게 저임금을 지급하기보다 정부 실업급여를 받도록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면서 “감염병 사태가 끝나면 재고용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에 일각에선 직원들의 생계를 고려한 결단이란 긍정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11일 계열사인 메구로자동차교통에서 개최된 설명회에서 노동조합은 사측이 해고가 아닌 퇴직을 요구한 점을 문제 삼았다. 현행법에 따르면 사측이 해고 30일 이전 관련 사실을 예고하지 않을 경우 직원들에게 해고예고 수당을 지불해야 한다. 반면 퇴직 시에는 수당을 줄 필요가 없다. 같은 날 로얄리무진의 긴자영업소에선 직원 10여명이 퇴직합의서 서명을 거부하며 해고예고 수당 등의 지급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거부했다. 갈등이 고조되자 “사측의 재고용 언급도 시기가 불분명하고 이행 보증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부스키 쇼이치(指宿昭一) 변호사는 13일 마이니치신문에 “해고예고 수당을 지불하지 않기 위해 퇴직 합의로 바꾼 탈법적인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직원들이 아닌 회사 자산을 지키기 위한 꼼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도 “사측의 해고 이유를 둘러싼 법적 다툼이 발생하면 무효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일본노동변호단 소속 미즈노 히데키(水野英樹) 변호사는 “직원이나 노조가 무효를 주장하지 않아 사측의 해고 이유가 통용되면 다른 기업들의 안일한 해고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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