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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죽어서도 살아 헤엄치는 멸치

입력
2020.04.1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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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C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흐드러지게 핀 꽃 아래서 고백을 받았다. 서울 중구의 모씨, 부산의 모씨, 강원도 어디의 누구,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각지에서 전화로 구애를 받고 있다. “사랑하는 유권자 여러분….” 내 말은 저리로 전달되지 않는 일방적인 것들이다. ‘이번엔 진짜인가?’ 하는 생각에 조금 들어보지만, 죄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다. 가차없이 끊는다. ‘날 언제 봤다고….’ 길게 듣고 있을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내가 사는 곳과도, 내가 하는 일과도, 내 인맥으로 가깝게 닿아 있는 사람들도 아니다. 하던 일을 중간에 끊은 그 전화에 성질을 내보지만 소용 없는 일이다. 이러 저리 돌아다니며 휴대전화 번호를 사방으로 뿌린 옛 시간에 대한 업보리라. 미안함 섞인 측은지심도 발동한다. ‘오죽 급했으면…’

사상 초유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라는 특수상황에서 15일 치러지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한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사전투표의 투표율이 치솟았다고는 하나 여느 때와 달리 이번 선거에선 이렇다 할 큰 이슈도 없고, 유권자들의 관심도 덜하다. 유권자들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 우리 동네 예비 일꾼 면면을 들여다 볼 기회가 이전 선거 때보다 적었고, 많은 이들이 역대급 길이의 투표용지를 받아 들고 기표소에서 장고를 거듭해야 할 것이다. 나도 그 흔하던 유세 차량, 그 위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는 우리 동네 후보 한번 보지 못하고 투표소로 가야 할 판이다.

‘잔인한 4월.’ 코로나19로 정상인 것을 찾아보기 힘든 현 시국과 맞물려 이 표현 하나가 여기 저기서 인용된다. 모르긴 몰라도 지난 세기를 대표하는 시 중의 하나인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온 것일 테다. 미국계 영국 시인이자 극작가, 문학 비평가로 이름을 떨쳤던 T. S. 엘리엇(1888~1965)에게 노벨 문학상(1948)을 안긴 작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est month)’로 시작한다. 엘리엇이 신문사 특파원으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던 1922년 세상에 나왔다. 1차 대전 직후라 그랬던지, 전쟁으로 피폐해진 인간성을 잘 표현했다고 평가 받는 작품이지만 절기가 비슷한 한국에 발붙이고 사는 이들에겐 ‘꽃 피는 계절’이라는 시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혼자인 이들을 더 외롭게 만들어 잔인했고, 이웃의 노란 먼지가 날아와 잔인한 계절이다.

10년이 다 돼 가는 일이다. “왜, 4월이 잔인한지 아는 사람?” 입사한 지 얼마 안된 견습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였다. 바짝 얼어서 그랬겠지만, 기대했던 답을 내놓은 이가 없자 선배랍시고 어쭙잖게 유세를 떤 적이 있다. 대충 이런 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의 조직은 타성에 젖어 있다. 더러는 권태에 빠져 있지만 그걸 즐긴다. 변화를 거부한다. 그런데 그 4월이 되면 태양과 비는 얼었던 대지를 녹이고 적신다. 더 웅크리고 있고 싶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만 4월이 오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야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나 잔인한 게 4월이다.” 그들이 이 조직에 찾아온 ‘4월’이 되기를 바랐다.

봄은 왔건만 봄 같지 않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올해만큼 들어 맞은 해가 또 있었을까.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도 시간이 지나면 진정될 것이고 그러면 세상과의 저녁 약속과 주말 나들이도, 아이들의 등굣길도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문제는 그 일상 위로 드리워질 먹구름과 한 여름에 몰아 닥칠 한파다. 일상으로 돌아와도 예전의 일상과는 같지 않을 시간, 차기 국회의원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멸치는 죽었지만 살아 있다. 죽어서도 된장국 속에서 헤엄치며 아이들의 뼈를 살 찌운다. 내일 투표는 세상의 변화에 귀를 막은 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살아서도 죽어 사는 ‘생중사’의 삶을 사는 이들을 거르는 작업이 돼야 한다. 얄팍한 ‘러브레터’에 넘어가면 곤란하다.

정민승 지역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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