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애니메이션 ‘트롤: 월드투어’(트롤2)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일 미국에서 선보였다. 극장과 주문형비디오(VOD) 동시 개봉이었다. 극장 개봉은 형식적이다. 자동차극장을 제외하고 미국 내 극장 대부분이 휴업 중이라서다.
‘트롤2’의 온-오프라인 동시 공개는 미국 영화계에서 큰 관심사다. 미국 주요 스튜디오는 극장 개봉 후 90일이 지나야 VOD 등 2차 시장에 영화를 선보이는 ‘홀드백(Hold Back)’을 엄격히 준수해왔기 때문이다. 빈 디젤 주연의 SF 액션 영화 ‘블러드샷’은 지난달 13일 미국에서 개봉하고 11일만인 24일 VOD로 출시된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트롤2’에 이어 월트 디즈니의 가족 영화 ‘아르테미스 파울’이 극장 개봉과 더불어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로 직행할 전망이다. 할리우드 영화 온-오프라인 동시 공개는 코로나19가 만들어낸 또 다른 ‘뉴노멀(New Normal)’이다. ‘트롤2‘는 20일 한국에서도 극장과 VOD로 동시 개봉한다.
한국에서 한국상업영화의 극장 개봉은 사실상 어려운 상태다. 2월말, 3월 개봉예정이었던 영화 ‘결백’ ‘침입자’ ‘콜’ 등은 극장 관객과 언제 만날지 아직 알 수 없다. 코로나19 공포 때문에 평일 하루 관객이 1만명선으로 급감한 상황이라 극장 개봉으로는 제작비조차 건지기 힘들다. 그렇다고 ‘트롤2’처럼 VOD시장을 바로 겨냥하기도 어렵다. ‘코로나 뉴노멀’이 미국과 달리 적용되는 셈이다.
미국과 한국 영화계는 산업 생태계도, 코로나19로 처한 상황도 다르다. 미국은 극장에서 수익을 낼 수 없으면 과감하게 2차 시장으로 넘어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다. ‘트롤2’의 경우 배급사 유니버설의 모회사가 미국 최대 케이블채널인 컴캐스트로 2,000만 가구가 가입해 있다. 컴캐스트는 미국 밖 3,000만 가구가 가입한 위성채널 스카이를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컴캐스트와 스카이 가입 가구를 대상으로 판촉 활동을 하면 극장 흥행 못지 않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집에 머무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도 ‘트롤2’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11일 미국 연예전문 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VOD 이용건수가 1,000만건 정도 되면 ‘트롤2’의 매출이 ‘트롤1’의 극장 수익 1억9,000만달러에 근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트롤2’의 제작비는 1억달러로 추정된다.
한국 영화는 극장 개봉을 통한 마케팅 활동 없이는 VOD시장에서 큰 성과를 내기 어렵다. 한 멀티플렉스체인 관계자는 “국내는 일단 극장 상영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VOD 이용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극장과 VOD 동시 개봉도 쉽지 않다. 국내 1, 2위 멀티플렉스 체인인 CGV와 롯데시네마는 개봉 후 4~5주를 홀드백 기간으로 두고 있다. ‘트롤2’는 메가박스에서만 개봉 예정이다. 주요 멀티플렉스 체인에게 미운 털이 박히면서까지 온-오프라인 동시 공개를 강행해도 실익은 거의 없다.
봄 개봉 예정작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 공개가 보류된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냥의 시간’은 극장 개봉 없이 지난 10일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국에서 동시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해외 세일즈 대행사 콘텐츠판다가 낸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인용하면서 공개가 전면 보류됐다. 콘텐츠판다는 ‘사냥의 시간’을 30개국에 수출한 상황에서 넷플릭스 공개는 부당하다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한 영화사 대표는 “봄 개봉 예정이었던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 공개가 코로나 시대 새 모델이 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보류되면서 한국 영화는 이렇다 할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 하는 상황이 됐다”고 주장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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