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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Wide] 불평등과 좌절이 만든 샌더스 열풍…끝내 주류의 벽을 못 넘다

입력
2020.04.14 11:00
수정
2020.04.14 17:3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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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샌더스의 도전과 좌절, 무엇을 남겼나>

※Deep&Wide는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역구인 버몬트주 벌링턴에서 지난 8일(현지시각)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경선 포기를 공식 발표하고 있다. 샌더스 후보 선대본부 제공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역구인 버몬트주 벌링턴에서 지난 8일(현지시각)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경선 포기를 공식 발표하고 있다. 샌더스 후보 선대본부 제공

지난 8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사퇴했다. 작년 2월 대권도전을 선언한 이후 14개월, 그리고 지난 2016년 대선 이래 4년11개월 동안 이어져온 백악관을 향한 꿈도 접게 됐다. 만 78세의 고령을 감안하면, 그의 대장정도 이것으로 끝인 듯싶다. 그렇다면, 미국은 ‘아웃사이더’ 샌더스에 왜 그토록 열광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민주당 경선 문턱을 넘지 못했을까? 그는 미국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앞으로 제2의 샌더스가 나온다면 성공할 수 있을까?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를 내세운 샌더스는 매력적인 슬로건과 유토피아적 개혁정책으로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16년 23개 주에서 승리하고 46%의 대의원을 확보하면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턱밑까지 추격했고, 이번에는 슈퍼화요일 전까지 1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했다. 1인당 평균 20달러 안팎의 소액기부가 그의 정치자금 절반이상을 차지했을 만큼, 일반 대중들의 지지는 뜨거웠다. 그의 공약은 대부분 풀뿌리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경쟁자였던 바이든 후보는 그를 두고 “단순한 선거캠페인을 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운동을 만들어냈다”고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민주당의 보수엘리트화와 샌더스의 출현

샌더스 열풍의 가장 큰 동력에 대해 미국의 많은 정치학자와 언론들은 1980년대 이후 민주당의 체질변화를 꼽는다. 전통적으로 노동자와 중산층의 정당을 표방하던 민주당은 이제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와 소수인종의 연합체로 변했다. ‘신민주당원(New Democrats)’으로 지칭되는 이들은 좌우를 초월한 행보를 보였고 중도를 공략하는 집권전략을 짰다. 노동조합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소위 ‘신경제’에 부합하는 정책도 지지했다.

최근 민주당에서 가장 성공한 리더라면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을 꼽을 수 있는데, 둘 다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변호사 출신이다. 이들 민주당 신주류는 대부분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으며, 다만 재력 아닌 학력으로 그 지위를 획득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문지식을 갖고 있어 사회문제에 대한 처방을 내릴 ‘자격’이 있다고 평가 받는다. ‘훌륭한 인재는 결국 성공하기 마련’이란 믿음이 강해, 실업 인종 등 많은 사회문제를 교육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이들은 ‘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나의 부를 소유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부의 불평등이 대부분 능력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믿고 있어, 경제정책이나 노동정책에 관한 한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며 결정적 이해관계가 걸리면 오히려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다만, 시민들의 자유나 성적 관습의 문제에 대해선 매우 진보적 입장을 가진다.

민주당의 이러한 변화는 외연확장을 통해 1990년대 이후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만 빼곤 대선에서 줄곧 공화당보다 표를 더 많이 얻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대해선 손을 놓았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노조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행했고, 1994년 범죄방지법과 1996년 복지개혁법을 통해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2008년 경제공황 이후 오바마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아, 경제의 구조적 변화보다 구제금융을 통한 기업 살리기에 집중했다.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성과가 있었지만, 오바마케어를 추진하면서 보수의 요구를 너무 많이 들어줬다. 그 결과 상위 10%의 부는 증가했지만 평균의 미국인들은 실질임금의 하락, 의료비의 증가, 그리고 주택과 학자금 대출이라는 빚더미를 떠안았다. 노동자와 중산층을 옹호하던 정당이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에 미국인들은 더 이상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민주당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요구했다. 샌더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소위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통해 사회복지혜택을 축소하고 부유층의 세금인상을 포기한 것에 격분하며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지난 30년동안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버린 민주당에게 버림받은 울분을 어루만져 줄 대선 후보가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시점이었는데, 그가 바로 샌더스였던 것이다.

지난 3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자신의 후보자들 앞에 연설을 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지난 3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자신의 후보자들 앞에 연설을 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끝내 민주당 주류가 되지 못한 샌더스

하지만, 샌더스와 그로 대표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s)’들은 민주당이라는 큰 우산 아래 모여있는 다양한 집단과 이해관계를 모두 다 온전히 대변하지 못했다. 특히 흑인 유권자들은 기업규제나 부자증세 같은 같은 정책보다는 자신들에게 직접적 혜택이 주어지는 사회보장정책과 도시정책에 더 관심이 많았다. 또 도시외곽지역에 거주하는 고학력 백인 중심의 민주당원들은 총기규제 문제에 대해 연방정부가 보다 적극적이길 기대하는데, 샌더스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좌클릭’을 통해 그 동안 소외된 이들을 끌어안는데 집중하느라, 현재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는 집단과 그들의 이해관계를 소외시켜버리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또, 유토피아적인 개혁정책들이 샌더스 지지자들에게는 ‘사이다’였지만, 공약의 실현을 중시하는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뜬구름 잡는 망상’으로 여겨졌다. 타협과 실익을 원하는 민주당원 입장에서 샌더스의 지나친 원칙주의 이미지는 그들의 스타일과 어울릴 수 없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2016년 힐러리 클린턴보다 자신을 더 지지해줬던 중서부 백인 노동자계층이 더 이상 그에게 열광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은 공화당 트럼프대통령을 선호했고, 민주당에 남은 이들은 펜실베니아 출신의 바이든 후보를 더 지지했다. 그 와중에 경선 초반 확실한 승기를 잡지 못하고 부티지지, 클로버샤, 워런 후보에게 빈틈을 보이면서 민주당 주류 엘리트의 반격을 허용했고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의 대승을 통해 컴백한 바이든을 중심으로 중도 후보들은 재빠르게 힘을 모았다. 이들에겐 2016년 공화당 주류 엘리트들이 트럼프의 선전에 대해 너무 느긋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타산지석이었다. 샌더스는 결국 백기를 들 수 밖에 없었다.

제2의 샌더스 가능성은

비록 두 번이나 실패했지만 그의 도전은 많은 유산을 남겼다. 가장 중요한 건 민주당 정책을 보다 진보적으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2016년 클린턴 후보와 2020년 바이든 후보의 공약을 샌더스의 정책 제안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기업과 부유층 중심의 Super-PAC(정치자금후원단체)에 의존해 선거운동을 한 2016년 클린턴에 비해, 바이든은 Super-PAC 규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샌더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진전이었을 것이다. 2010년 오바마케어 통과 무렵만 해도 너무 진보적이어서 거부됐던 ‘공적보험’ 옵션이 샌더스의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 공약 덕에 지금은 민주당의 가장 온건한 안이 되었다.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하는 안도 2020년에는 모든 민주당 후보들의 공통 공약이 되었다. 샌더스의 ‘그린뉴딜’은 바이든의 환경정책에 많은 부분 반영되었다. 진보적 이상과 현실적 타협이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샌더스의 상상력과 이상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2016년과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들간의 정책적 차이/2020-04-14(한국일보)
2016년과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들간의 정책적 차이/2020-04-14(한국일보)

아울러 샌더스 진영의 자원봉사자 중 40%는 처음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청년층이었는데, 이들에겐 캠페인 자체가 풀뿌리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장이었다. 이들이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 계층임을 감안하면, 향후 민주당의 대변화에 큰 자양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이들은 실질적 경쟁이 있는 당내 경선과정을 통해 이상과 실력을 겸비한 정치신인이 유입돼 결국 미국 정치문화도 바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샌더스 지지자의 특징 중 하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만족도가 낮고 정치에 대한 효능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웃사이더가 등장해 자신들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주길 원했다. 이번엔 실패했지만 앞으로 제2의 샌더스가 등장하면 또 다시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이러한 열망을 정당을 통해 어떻게 발전적으로 흡수하느냐가 관건인데, 이것이야말로 미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이다. 2020년 대선은 민주당과 바이든 후보가 샌더스 지지자와 그들의 열망을 어떻게 포용하는지에 따라 승패가 좌우될 것이다.

박홍민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박홍민교수는 미국 밀워키 소재 위스콘신주립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정치과정 및 선거에 해박하며, 현재 한국일보 월요일자에 3주에 한번씩 <미 대선 따라잡기>코너를 고정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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