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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2.0] 고요하지만 안전한 택시 “청각장애인 기사님이 운행 중입니다”

입력
2020.04.21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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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2.0] 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고요한 택시’ 앱을 개발한 송민표 대표. 왕태석 선임기자
[사회적기업2.0] 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고요한 택시’ 앱을 개발한 송민표 대표. 왕태석 선임기자

“전국에는 26명의 청각장애인 택시기사님들이 있습니다. 우연히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그 어떤 택시보다 안전하니까요.”

청각장애인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는 무언가 특별하다. 오른쪽 뒷자리에 들어서자마자 앞 좌석 정면에 부착된 태블릿컴퓨터(PC)와 마주한다. 당황할 필요는 없다. ‘안녕하십니까 청각장애인 기사님이 운행하는 택시입니다’라는 문구가 반겨준다. 모니터에 키보드나 음성, 자필로 목적지만 입력하면 된다.

이 태블릿PC 속 주인공은 ‘고요한 택시’ 응용 소프트웨어(앱)이다. 기사님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서비스는 지난 2018년 사회적기업 ‘코액터스’가 개발했다. 송민표(27) 코액터스 대표는 “최신 버전은 승객이 목적지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차량 내비게이션에 연동된다”며 “예전처럼 기사님이 따로 목적지를 입력하지 않아도 되니 무척 편리해졌다”고 말했다.

송 대표가 청각장애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모교인 동국대 창업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부터다. 사회문제를 어떻게 하면 사업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고, 장애인들의 일자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연히 차량 공유서비스 ‘우버’를 접했던 게 계기였다. 우버에 속한 기사들 중 6,000여명 정도가 청각장애인이었다. 우버에선 청각장애인이라도 면허와 차량만 소지하면 운전이 가능했다. 송 대표는 유튜브에서 우버의 청각장애인 기사들이 승객과 필담으로 소통하는 것을 보곤 무릎을 쳤다.

“우리나라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트에 써서 소통하는 게 아니라 정보기술(IT)을 개발해 해결하면 어떨까 했죠. 그렇게 되면 승객들이 불편해하지 않고, 청각장애인들의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으니까요.”

현행법상으로도 청각장애인이 택시기사가 되는 건 문제될 게 없다. 2종 보통 면허 이상을 소지하고 1년 이상 경력만 있으면 택시운전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다. 송 대표는 “싱가포르의 우버로 통하는 ‘그랩’도 청각장애인 기사가 300여명에 이른다”며 “서울과 크기가 비슷한 나라인데 청각장애인 기사는 더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기업2.0] ‘고요한 택시’ 앱을 개발한 송민표 대표가 앱 이용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사회적기업2.0] ‘고요한 택시’ 앱을 개발한 송민표 대표가 앱 이용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송 대표는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택했다. 택시기사로 취업을 원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택시 면허 취득을 비롯해 일반 택시회사 취업 연계와 관리까지 험난한 여정을 거쳤다. 청각장애인들을 위해선 교육이 필요했고,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직장도 마련돼야 했다. 송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전국의 택시회사를 돌며 청각장애인 기사들과 고요한 택시에 대해 소개했다.

그 결과 현재는 서울과 경기, 대전, 대구, 경주의 택시회사 10여곳과 계약을 맺고 26명의 청각장애인 기사들을 연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고요한 택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1월부터 한국장애인공단 서울맞춤훈련센터에서 택시운전면허를 취득한 청각장애인들을 5~6주 과정으로 서비스 교육 등을 실시했는데, 최근 코로나19로 면허시험뿐만 아니라 교육 일정까지 연기됐다. 송 대표는 “수업반을 열 때마다 꾸준히 5~10명의 지원자들이 자리를 지켰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수업을 진행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또한 고요한 택시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자리 역시 무산되거나 연기됐다. 고요한 택시는 SK텔레콤과 함께 세계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인 ‘모바일월드콩크레스(MWC)’에도 동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MWC도 33년 만에 취소되면서 꿈의 무대는 잠정 연기됐다.

올해 10월 한국 스타트업(신생기업) 최초로 선정돼 참석할 예정이었던 ‘두바이 엑스포 2020’도 1년 연기될 것으로 보이면서 송 대표의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그는 “‘엑스포 라이브’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혁신 스타트업으로 선정돼 10만달러(약 1억2,000만원)를 지원받고, 전 세계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전시할 기회를 잡았는데 무척 아쉽다”고 했다.

최근 들어선 코로나19로 상황이 좋지 않다며 청각장애인 기사들에게 연락도 온다고. 특히 대구 경북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힘든 상황이다 보니 송 대표의 걱정은 깊었다. 송 대표는 이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택시회사와 문제가 발생했을 시 소통 창구의 역할도 해주고 있다.

코로나19로 계획했던 일들에 차질이 생겼지만 청각장애인 기사들의 일자리 창출에는 시동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올해 청각장애 택시기사 100명을 더 발굴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꿈이라고 귀띔했다. “국내에서 고요한 택시로 기반을 더 닦은 후, 해외 진출의 기회도 잡고 싶어요.” 국내에서 잉태한 그의 소망은 어느 새 세계시장으로 향해 갔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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