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 일상이 은총임을 깨달았다.”
“두려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감싸 안자.”
장기화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속에 부활절을 맞은 기독교계는 이번 고통을 계기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자는 메시지를 내놨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협조 요청에 따라 상당수 천주교 성당과 개신교회가 현장 집회를 자제하면서 ‘사진 참석’이나 ‘승차 예배’ 같은 이색 풍경도 펼쳐졌다.
13일 종교계에 따르면 부활절인 전날 한국 천주교회는 전국 16개 교구 중 제주교구를 제외한 15개 교구에서 부활절 미사를 온라인으로 봉헌했다.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생중계된 서울 명동성당 미사에서 “신자와 함께하는 미사 중단이 길어지면서 영적인 고통이 커갔지만, 그 고통 안에는 축복도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며 “서로를 향한 사랑과 존경이 깊어지고 일상이 은총임을 깨달아 우리 신앙 공동체는 한층 더 성숙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명동성당 미사에는 염 추기경과 일부 사제, 수녀만 참여했다.
천주교 교구 중 유일하게 미사를 재개한 제주교구는 제주시 중앙성당 제주교구청에서 부활절 기념 미사를 지냈다.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은 앞뒤 지그재그 형태로 2m 가까이 거리를 두고 장의자에 앉았다.
개신교계에서도 대세는 온라인이었다. 개신교 연합 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같은 날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에서 주요 교단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부활절 연합 예배를 진행했다. 당초 신도들과 함께하는 대규모 연합 예배와 도심 행진을 계획했던 한교총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행사 대부분을 취소했다.
이 단체는 ‘2020 한국교회 부활절 선언문’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부활의 노래가 이 땅에 가득해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며 “한국교회는 지역사회 속에서 코로나19로 인해 두려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감싸 안으며, 이웃과 함께 부활의 생명과 소망을 나누는 일에 앞장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초유의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교회당 예배에 참여하지 못한 신도들이 마음만이라도 함께하도록 신도 한 명 한 명의 사진을 좌석에 부착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소망교회도 마찬가지로 신도들이 미리 보낸 사진을 자리에 붙인 채 예배를 진행했다.
‘승차 예배’도 눈길을 끌었다. 서울 온누리교회는 서울 서초구 야외 주차장을 빌려 차에 탄 신도들과 함께 예배를 올리고 부활절을 기념했다. 주차 차량 200대에 각각 탑승한 신도들은 임시 허가된 교회 라디오 채널에 주파수를 맞춘 채 예배에 집중했다. 일명 ‘드라이브 인 워십’이다. 충남 천안시 백석대교회도 같은 방식으로 부활절 예배를 열었다.
경기 안산시 꿈의교회는 ‘드라이브 스루’와 ‘워킹 스루’ 방식으로 계란과 소독 물티슈, 말씀 카드 등을 담은 ‘해피 이스터 박스’(Happy Easter Box)를 지나가는 신도들이 받아가게 하기도 했다.
반면 다시 문을 연 교회도 적지 않았다. 문을 닫은 적이 없는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는 부활절에도 현장 예배를 강행했다. 이 교회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전광훈 목사가 운영하는 교회다. 다만 교회당 안팎에서 거리를 두고 앉은 신도 대부분이 마스크를 쓴 상태였다. 중랑구 금란교회와 중구 영락교회 등도 약 7주 만에 중단해 온 현장 예배를 재개했다.
서울시는 시내 교회 6,400여곳 중 2,100여곳(32.8%)이 부활절 현장 예배를 진행한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 교인 수 1,000명 이상인 교회 412곳을 대상으로 부활절 예배 형태를 조사한 결과 현장 예배로 복귀한 곳이 246곳(59.7%)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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