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유가 극복을 목표로 의기투합한 산유국들의 ‘감산’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겉으론 비중이 작은 멕시코의 퇴짜가 합의 지연의 원인 같지만, 산유국마다 각기 다른 속내가 사태 해결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당초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인 ‘OPEC+’ 23개국은 9일(현지시간) 화상회의를 통해 5,6월 하루 1,000만배럴 감산에 잠정 합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자19) 사태 확산에도 제 살길에 골몰했던 사우디ㆍ러시아도 동의했다. 1,000만배럴은 전 세계 일일 원유 수요의 10%에 해당하는 물량. 물론 이 정도도 코로나19가 촉발한 수요 감소량에 비하면 시장이 기대하는 감산 수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돌연 멕시코가 딴죽을 걸었다. 하루 40만배럴 감산도 힘들다며 “10만배럴로 줄여 달라”고 떼를 썼다.
이 때문인지 이튿날 주요 20개국(G20) 에너지장관 회의에서도 감산 협상은 쳇바퀴를 돌았다. 회원국 대표들은 이날 필요한 조치를 모두 취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명문화한 감산 수치는 공동성명에 담지 못했다.
멕시코의 느닷없는 합의 거부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정치적ㆍ경제적 셈법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는 국영 석유업체 페멕스 회생을 추진하면서 기존 일일 170만배럴 생산량을 2024년까지 250만배럴로 증산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여기에 멕시코는 유가가 하락해도 ‘헤지(위험 회피)’ 수단을 이미 마련해 굳이 감산에 적극적일 필요가 없다. 블룸버그통신은 11일 “멕시코가 지난 20년 동안 원유 관련 ‘풋옵션(특정 가격에 상품을 판매할 권리)’을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유가가 더 떨어지더라도 미리 정해 놓은 가격에 원유를 판매할 수 있어 금전적 손실을 떠안지 않는다는 의미다.
멕시코의 버티기는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불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리가 멕시코 대신 25만배럴을 추가 감산하겠다”고 제안했다. 유가 폭락이 지속되면 미국 셰일원유의 채산성이 낮아져 11월 대선을 앞두고 표심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각국은 딴 주머니를 차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러시아는 이날 “감산 합의를 문서로 공식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식 합의가 없을 경우 경쟁자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차후 약속을 깨고 자국의 이익을 꾀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취지로 읽힌다. OPEC+ 비회원국인 노르웨이 역시 합의 이행을 전제로 “원유 감산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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