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완치 가까운 순서로…승강기도 상ㆍ하행 분리 운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머물고 있는 생활치료센터서 실시된 특별사전투표는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 의료진과 행정지원인력, 환자들이 동선은 물론 시간대까지 달리하며 투표하는 등 물샐 틈 없는 ‘방역 투표’가 이뤄졌다.
10일 오전 8시 코로나19 경증 환자 생활치료센터로 지정된 경주 농협경주교육원 특별사전투표소. 투표 시작과 함께 건물 앞으로 금세 긴 줄이 생겼다. 투표자 수가 많아서 길었다기보다는 코로나19 투표소 행동수칙으로 제시된 ‘앞 사람과의 간격 1m 유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확진자들을 위한 특별한 사전투표소였던 만큼 대기 투표자들 간격은 2m.
선착순 원칙도 여기서는 통하지 않았다. 의료진이 먼저 나섰고, 이어 행정지원 인력이 투표했다. 발열체크와 손 소독 후 지급받은 비닐장갑은 투표용지를 함에 넣은 뒤에야 벗을 수 있었다. 김준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관은 “환자들이 먼저 투표할 경우 각종 기자재를 여러 번 소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환자들은 맨 마지막으로 순서를 정했다”고 말했다. 환자 중에서도 퇴소 날짜가 더 많이 남은 이들은 순번이 뒤로 밀렸다.
특별사전투표소는 농협 경주교육원을 비롯해 서울, 경기, 대구, 경북지역 8개 생활치료센터에 설치됐다. 각 시ㆍ도 선관위가 아닌 중앙선관위에서 나와 직접 선거를 관리했다.
농협 경주교육원은 코로나19 환자 가운데 경증 확진자들이 머물고 있는 곳. 지난달 3일 개소 당시 230명까지 수용했으나 지금은 47명으로 줄었다. 이곳에서는 의료진 20여명을 비롯해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국방부, 대구시, 경찰, 소방 등 70여명의 인력이 나와 있다.
중앙선관위 직원들은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투표함과 기표소, 컴퓨터 등을 몇 차례나 닦으며 위생 상태를 점검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선관위 직원 외 간호사 2명이 투표소 사무원으로 차출됐다. 또 투표소 참관인 2명도 정당이나 후보자 측이 아닌 농협 경주교육원 관계자들에게 맡겨졌다. 이들 7명은 환자들의 투표가 시작되자 모두 방호복으로 무장했다.
확진자들은 휴양관 4~6층 객실에서 대기하다 간호사 호출에 따라 한 명씩 투표소로 내려왔다. 퇴소 예정자에 이어 1차 음성 판정을 받은 환자 등 완치에 가까운 이들 순서로 내려와 투표를 했는데, 선관위는 이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승강기 2대를 각각 상ㆍ하행으로 나눠 운용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날 투표에는 확진자 47명 가운데 거소투표 참가자와 미성년자, 투표불참 의사를 밝힌 26명을 제외한 21명이 선거권을 행사했다. 선관위는 이날 오후 6시 투표가 종료된 뒤 컴퓨터 등 장비 외에 이곳에서 사용한 기자재와 비닐장갑 등을 한 곳에 모아 폐기 처분하는 것으로 투표를 마무리 했다.
코로나19 환자에 이어 자가격리자인 유권자들은 오는 15일 총선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정부는 자가 격리자와 일반인의 동선, 시간대를 분리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며 구체적인 방침은 오는 12일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경주=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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