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 두기’가 길어지면서 고립감이나 우울감을 느끼다 보면 문득 오래된 친구가 떠오를 때가 있다. 오랜만에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기도 하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은 그리움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러다 현실 속 바쁜 일상에 부딪히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영국의 작가인 찰스 케일럽 콜턴(Charles Caleb Colton)은 “참된 우정은 건강과 같다”고 뼈아픈 충고를 했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듯이 평소에는 친구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생을 거의 유배지에서 보냈던 윤선도는 조선시대 때 이미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신 분이다. 그의 대표작인 오우가(五友歌)에서 수(水)의 부단(不斷)함, 석(石)의 불변(不變)함, 송(松)의 불굴(不屈)함, 죽(竹)의 불욕(不欲) 그리고 월(月)의 불언(不言)을 다섯 친구에 비유하며 그 덕목들을 칭송하였다.
본의 아니게 유배 생활을 하게 된 요즘이 그동안 내 건강을 지켜주었고 앞으로도 평생을 함께 할 친구를 모든 분들께 소개할 좋은 기회인 것 같다. 밥의 부단(不斷)함, 땀의 불변(不變)함, 책의 불굴(不屈)함, 말의 불욕(不欲) 그리고 잠의 불언(不言)이 내 친구들의 덕목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찾는 친구는 밥이다. 아침밥(breakfast) 먹자고 일찍 일어나느니 차라리 10분이라도 더 자는 편을 택하겠노라는 사람들도 많지만 ‘생체리듬의 과학’을 저술한 사친 판다(Sachin Panda)는 ‘아침에 무언가라도 위장에 넣는다면 뇌가 하루를 시작하는 자극이 된다’고 하였다. 밥은 내 존재의 이유이고 살아 있는 한 만남을 중단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친구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루를 바쁘게 지내다 보면 피로감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이럴 때 잠깐이라도 걷기나 계단 오르기를 시도해 본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하며, 내가 흘리는 땀은 그런 노력의 변함없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다만 운동하면서 흘리는 땀은 지방감소의 효과가 있지만 사우나에서 배출하는 땀은 수분만 빠져나갈 뿐이다.
퇴근 시간이 되면 더욱 더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평소라면 약속을 잡고 술이라도 한잔하러 가겠지만 사회적 접촉을 피하기 위해 전철에 몸을 싣고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평소에 범접하기가 어려운 책에 손을 뻗쳐 본다. 무심코 넘기던 책의 한 구절이 눈에서 가슴까지 닿을 수 있다면 다행이련만 달리는 기차 위에서 집중은 어렵다고 하워드 진(Howard Zinn)이 비스무리하게 이야기했다. 어쨌든 책은 만만하고 쉽게 굴복당하는 친구는 아닌 듯....
저녁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출근했거나 등교했던 가족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평상시라면 서로 얼굴을 볼 기회도 별로 없겠지만 집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곧 ‘가족 간의 거리 좁히기’로 이어지게 된다. 다만 대화를 한다는 명목 하에 자신의 생각을 지나치게 강요하지 말아야 하며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말을 건넬 때 편안한 저녁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어느덧 자야 할 시간이다. 수면은 단순히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뇌가 쉬는 것이며 술을 마시고 잠을 청하는 것은 머리를 얻어맞고 기절한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꿈을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 라고 했다. 우리는 잠을 자면서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지만 나 자신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고통스럽거나 힘든 일상을 보내야 하는 국민들이 여전히 많지만 이럴 때일수록 건강을 지켜 주는 다섯 친구들과 친해지길 기대해 본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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