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도네시아 르바란 명절 당시 귀성 행렬. 우리나라 설 풍경과 흡사하다.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인도네시아 최대 명절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결국 대폭 단축된다.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의 명절 귀성은 금지됐다.

10일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전날 오후 내각 회의에서 올해 ‘르바란(이드 알 피트르)’ 명절 휴일을 5월 24, 25일만 인정한다고 밝혔다. 당초 5월 24~31일 여드레이던 휴일을 4분의 1로 줄인 셈이다. 대신 이번에 쉬지 못하는 평일(26~29) 휴일은 12월 28~31일에 쉬는 걸로 정했다.

무슬림의 5대 의무인 라마단 한 달 금식 뒤 찾아오는 르바란은 2억7,000만 인구의 87%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의 최대 명절이다. 우리나라 설에 비견할 만하다. 민족 대이동이 벌어지는데 지난해에는 2,300만명이 고향으로 떠났다. 매년 수도 자카르타와 인근 생활권 도시에선 인구 3,000만명의 절반이 빠져나간다. 이를 ‘무딕(고향 방문)’이라고 부른다. 동서 길이가 5,000㎞가 넘고 1만7,000여개의 섬을 거느린 나라라 무딕을 위해 공식 휴일 이틀에 추가로 평일을 붙여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쉬게 해주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올해는 르바란 공식 휴일 뒤에 붙는 추가 휴일을 불허함으로써 사실상 무딕이 어려워졌다. 5월 21일 예수승천휴일과 23일 토요일 사이에 있는 22일을 추가 르바란 휴일로 지정해 최대 닷새(5월 21~25)를 쉴 수 있지만 선뜻 고향으로 가기엔 물리적으로 부담스럽다.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에 따라 예전처럼 만원 버스나 만원 열차를 운행할 수 없는 상황도 무딕 감소 요인이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르바란 명절 때 한 오토바이에 올라탄 가족이 고향으로 향하고 있다.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올해 무딕은 코로나19 확산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많았다. 금지 여론도 거셌다. 그럼에도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은 적어도 시민들에겐 “무딕 금지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무딕 금지를 발표하면 벌어질 부작용을 우려해 정무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명절 휴일 단축은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일종의 묘책이다.

조코위 대통령이 머뭇거리는 사이 인도네시아 이슬람 최고의결기구인 울라마협의회(MUI)는 “이번 무딕은 하람(금기사항)”이라고 공표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귀향하는 건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이니 종교적ㆍ윤리적ㆍ도덕적으로 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MUI 전 의장이 조코위 대통령의 대선 동반자 마룹 아민 현 부통령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겉으로는 대통령과 종교계가 반대 의견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양쪽이 같다는 얘기다.

실제 조코위 대통령은 이날 르바란 단축 결정을 하면서 모든 국가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에게 무딕을 엄격히 금지한다는 지시를 내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민들의 무딕에 대해선 ‘금지’ 대신 ‘협의’라는 단어를 썼다. ‘무딕 금지’ 메시지는 종교계가 대신 하게 하고 자신은 무딕이 사실상 어렵도록,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무딕을 포기하도록 여건과 분위기를 깔고 있는 것이다.

자카르타는 이날부터 2주간 ‘대규모 사회제한조치(PSBB)’가 시행된다. △보건, 식품, 금융, 호텔, 건축 등을 제외한 업종 재택근무 △재택수업 △외출 시 반드시 마스크 착용 △배달 및 주문은 가능하나 식당 안에서 식사 금지 △5명 이상 단체 행동 금지 △결혼식 등 단체 행사 금지 △대중교통 운행 제한 △자가용은 최대 정원의 절반만 탑승 △온라인 오토바이택시(고젝 그랩)는 물건만 운송 등이다. 전반적으로 기존 대책을 강화하거나 연장한 수준이다. 위반 시엔 최대 1년 이하 징역형이나 1억루피아(약 77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인도네시아의 코로나19 환자는 전날 기준 3,000명을 넘어섰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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