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추적단 불꽃’과 ‘프로젝트 리셋’ 
 불꽃,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처음 세상에 알려 
 리셋, 온라인에서 자발적으로 모여 실태 모니터링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는 분노로 행동한 것” 
‘추적단 불꽃’(왼쪽)과 ‘프로젝트 리셋’을 각각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이들 모두 익명으로 활동하는 여성들이다. 불꽃은 기자 지망생 2인으로 사건을 최초로 추적 보도했고, 리셋은 온라인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여성들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의 ‘태초’에 여성들이 있었다. ‘추적단 불꽃’과 ‘프로젝트 리셋(ReSET)’. 이들은 현직 기자도, 시민단체 활동가도 아니다. 불꽃은 기자를 준비하는, 리셋은 온라인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여성들이다. 불꽃이 불을 붙이고 리셋이 확산에 힘을 보탰지만, 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분노가 이들을 행동하게 만들었을 뿐. 이름 같은 신상이 알려지는 것도 이들은 원치 않는다. 불꽃은 그저 불꽃으로, 리셋은 리셋으로 행동한다.

불꽃을 전화로, 리셋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불꽃은 지난해 9월 기사공모전에 텔레그램 성 착취 실태를 취재한 기사를 출품해 ‘최우수상 없는 우수상’을 수상했다. 9개월이나 ‘n번방’에 잠입해 사건을 추적하며 간접 피해를 당했지만,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한 건 ‘왜 언론이 보도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었다. 이 사건은 이들이 기자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리셋은 인터뷰에 앞서 “이번 사건의 정체성을 제대로 담는 용어를 써달라”는 부탁부터 했다. “이번 사건을 ‘n번방 사건’ 혹은 ‘집단 성 착취 영상물 유포 사건’으로 지칭하는 건 의도와는 다르게 자극적인 명칭이 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거기다 “영상물이 아닌 종류의 디지털 성범죄, 유포가 아닌 방식의 성범죄, n번방이 아닌 다른 채널의 성범죄나 피해자들을 지울 수 있어 불충분한 명칭”이라는 것이다. 언론이 해야 할 정명(正名)의 문제를 이들이 더 깊게 고민하고 있었다.

불꽃, 리셋과 나눈 인터뷰를 차례로 전한다. 먼저 불꽃과의 일문일답.

 ◇불꽃 “해결의 불씨로 활활 타오르란 의미” 
지난달 25일 시민들이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피의자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엄중 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먼저 축하해요.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일생을 평화ㆍ인권운동가로 살아온 고(故) 김복동 할머니와 공동 수상이라 더 뜻 깊네요. 

“맞아요. 3월 31일에 이메일로 소식을 전달 받고 무척 얼떨떨했어요. ‘우리가 받아도 되는 상일까’ 싶어서요.”

 -고 김복동 할머님은 일본군에 성 착취 피해를 당한 운동가이고 불꽃은 오늘날의 디지털 성 착취 실태를 추적해 처음 알린 이들이란 의미도 있고요.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영광스럽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추적단 불꽃’이라고 지은 이유가 뭔가요. 

“공모전에 응모할 때 지은 팀명이에요. 기사가 나가면 신상이 공개돼 안전에 위협을 받을 수 있어서 ‘불꽃’이라는 명칭으로 냈죠. ‘텔레그램 성 범죄 사건에 불을 붙이는 불씨가 되자, 한번 확 타버리고 꺼지는 게 아니라 계속 활활 타오르게 하는 불꽃이 되자’는 뜻을 담았어요.”

 -아이템을 이 사건으로 정한 계기가 있나요? 

“처음 생각한 취재 아이템은 불법촬영물이었어요. 그런데 사이트를 모니터링 하다가 ‘와치맨’(n번방 운영자로 드러난 전모, 재판 중)의 구글 블로그를 보게 됐어요. 텔레그램에서 이뤄지는 성 착취물 유통을 알게 됐고 이건 취재 아이템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공조 수사를 부탁해왔죠. 그때부터 모니터링하면서 단서가 될만한 자료나 피해자 신상이 뿌려지는 화면을 채증(증거수집)해서 경찰에 보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취재하고 느낀 걸 위주로 기사를 썼죠.”

 ◇‘왜 언론은 보도하지 않을까’ 실망감에 ‘현타’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이 알려진 이후 각계에선 엄정 처벌과 입법 촉구, 재발 방지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가해자 엄중 처벌과 교육계의 성인지 감수성 제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9월초 공모전 주최자인 뉴스통신진흥회(연합뉴스의 대주주이자 감독기구) 홈페이지에 수상작이 게재가 됐죠? 그 뒤로 좀 파장이 있었나요. 

“한동안은 어떤 매체에서도 보도가 없어서 좀 이상했어요. 그러다가 ‘한겨레’에서 저희 기사를 보고 연락을 줬고, 11월 말에 심층 기사가 나갔어요. ‘국민일보’는 올해 초에 집중 보도를 했죠. 과거에 인턴기자를 했는데 그때 알게 된 선배 기자가 ‘이건 대대적으로 다룰 만한 사안이다’ 해서 취재가 시작됐죠.”

 -공모전 준비하는 동안에도 보도한 매체는 없었죠? 

“네, 공모전 응모 가능한 아이템 기준 중 하나가 ‘기성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거나 소홀히 다룬 사안’이거든요. 그런데 취재를 하다 보니 너무 실태가 심각해서 공모전에 내기 전에 다른 매체에서 기사가 나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당선작으로 발표되고 나서도 한동안 조용해서 방송사 다큐 프로그램 여러 곳에 제보를 하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피해자들을 도왔죠. ‘지인능욕방’ 같은 경우는 피해자의 신상을 알 수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연락을 드려서 ‘사진이 이렇게 이용되고 있다’면서 신고 방법을 알려드리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비공개로 돌리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해드렸죠.”

 -추적하면서 간접 피해를 당했으니 심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을 텐데요. 

“가장 힘들었던 건 요즘 말로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와서였죠. ‘왜 언론은 보도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예요. 코로나19 기사는 하루에 셀 수 없이 쏟아지는데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은 기사가 없는 거예요.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언론이 보도해야 하는데 왜 안 쓸까 싶었어요. 이건 인격 살인 사건인데 말이죠.”

 -검경, 법원, 정치권을 보면서도 느낀 게 많았을 것 같아요. 

“저희가 피해자 10여명과 연락이 닿아서 도움도 드리고 얘기도 나눴는데,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경찰서에 찾아가서 신고를 해도 바로 수사해주는 경찰이 없더라고. 증거까지 갖고 가서 제출했는데 텔레그램이라 못 잡는다는 식의 답변만 했대요. 국회는 이른바 ‘n번방방지법’을 국민청원으로 올렸는데 알고 보니 폐기시켰고요. 처음엔 ‘n번방방지법이 통과됐다’는 기사가 뜨길래 기대를 하면서 클릭했는데 너무 화가 났어요. 여러 디지털 성범죄 중 하나인 ‘딥페이크(사진 합성)’ 처벌 규정 하나 만든 걸 ‘n번방방지법’이라고 하다니요. 사건 내용도 모르고 문제의식도 없는 사람들이 무슨 법을 만든다고 국회에 앉아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도 그렇게 화가 나고 무력함을 느꼈는데 피해자들은 얼마나 허탈했을지 저희가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기자는 사건 해결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 
심상정 정의당 심상정 대표 겸 4ㆍ15총선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이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당원들과 함께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의 처벌법 처리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들의 상태는 어떤가요. 

“‘n번방’ ‘박사방’ 피해자들은 직접 만난 적은 없고 ‘지인능욕방’ 피해자들은 여러 번 만났어요. 피해자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자책을 한다는 거예요. 자신이 자책할 일이 아닌데 말이죠.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들 탓을 하는 문화가 사회에 만연한 결과 아닐까요. 오히려 피해자들이 위축되고 괴로워하는 거죠.”

 -피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느꼈나요. 

“피해자들이 가장 바라는 건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런 성 착취물이나 사진들은 온라인에서 신속하게 삭제되지 않거든요.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빠른 삭제가 필요해요. 또 대부분 피해자들이 심리치료나 범죄 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요. 그런 지원제도를 언론이 많이 소개하면 좋겠어요. 처벌과 관련해서도, 성 착취물을 돈을 받고 팔든 그렇지 않든 유포했다면 모두 가중 처벌해야 해요. ‘나 이런 사진이나 영상 몇 십 개 갖고 있다’면서 일종의 홍보만 하더라도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 역시 가해 행위이니까요.”

 -불꽃도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 텐데 괜찮나요. 

“최근에 그래서 저희도 심리상담을 받고 있어요. 한참 취재할 때는 영상을 한번 접하면 짧게는 이틀, 길게는 일주일 정도 잔상이 남아서 많이 괴로웠거든요. 그런데 이 사건이 공론화하면서 언론 인터뷰를 하다 보니 사건 내용을 구체적으로 묻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니 당시를 떠올려야 하고 또 입으로 말하다 보니 다시 괴롭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라도 한동안은 인터뷰를 중단하자는 결단을 했죠.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시작했는데 요즘은 사건보다 저희에게 집중하는 시선이 많아져서 압박감도 커졌고요. 감사하게도 ‘국민일보’에서 심리치료 지원을 해주고 있어요.”

 -왜 기자가 되고 싶은가요. 

“이 취재를 하면서 더욱 확신한 게 있어요. 기자는 사건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최초로 사건의 실태를 알려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해결의 첫 걸음을 떼는 이들이라는 걸요. 가해자들의 감시자, 피해자들의 변호자, 사건의 최전선에 있는 해결자로 기자의 직무를 넓혀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래서 이 일을 꼭 해야겠구나 다시 한번 마음 먹었죠.”

 ◇리셋 “여성 안전을 다시 세우기 위해” 
‘프로젝트 리셋’의 활동가들이 지난달 29일 한국일보 영상채널 '프란'(PRAN)팀과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한설이 PD

다음은 ‘리셋’과 나눈 일문일답.

 -리셋은 어떤 조직인가요. 

“리셋의 활동가들은 디지털 성범죄에 경각심을 느낀 익명의 여성들이며, 24시간 동안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는 피해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리셋 자체로는 다시(Re) 세운다(SET)는 뜻을 가지며, 강간 문화로 인해 잃어버린 디지털 공간의 여성 안전을 다시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그간 리셋은 어떤 활동을 해왔나요. 

“활동 초기 리셋은 ‘모니터링과 신고’에 집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상이 특정되거나 리셋이 접촉할 수 있게 된 피해자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피해자지원센터를 알려드리는 등의 피해자 대응도 했고요.”

 -우리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요. 

“그들이 살아남은 자들이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범죄 이후의 회복과 치료 등을 위해서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이를 제도 곳곳에 반영해야 해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몇몇 언론들처럼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면피적인 이유 뒤에 숨어 쓸데없이 자극적인 내용을 강조하거나 흥미거리로 소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해자에게 마이크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죠. 

“범죄자인 가해자들에게 ‘악마’ 등의 수식어까지 붙이며 서사를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활동을 하며 본 디지털 성범죄자들의 특성을 요약하자면 패배자입니다. 현실 세계에서 이룬 것이 없으니 ‘박사’ 혹은 ‘갓갓’과 같이 거대한 명칭을 붙여 부족한 자의식을 보상받으려 하고, 그 밑의 하급 범죄자들은 그런 자를 추앙하거나 자신과 분리하려는 태도를 보이죠. 몇 백, 몇 천명이라는 수적 우세와 익명성만을 믿고 실존하는 여성 위에 군림할 수 있을 거라는 집단적 과대망상에 빠져 디지털 공간에서 날뛰는 사람들입니다. 강간 문화와 여성혐오라는 근원이 뻔히 존재함에도 가해자들을 조명하며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라도 발언권을 주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피해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서울시에 거주하는 여성 3,678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피해 후 신고 등의 대처를 했다는 응답률은 7.4%에 그칩니다. 특히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걱정되어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피해자가 30.6%에 다다릅니다. 피해자가 감내해야 할 사회적 위험이 여전히 크다는 걸 알 수 있죠. 신고 과정에서 주변에 피해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행되는 2차 가해로부터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수사 과정에서도 디지털 성범죄를 담당하는 여성 경찰 인력을 대폭 충원해야 해요. 사회 인식 개선을 위해 디지털 성범죄 2차 가해 방지 교육을 사회 각 구성원에 맞춰 실시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국민청원 폐기시킨 국회 보며 가장 실망” 
조성실 정의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왼쪽 세 번째)을 비롯한 정의당 청년선거본부 구성원들이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텔레그램 N번방 방지 및 처벌법’ 제정을 위한 원포인트 국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n번방 집단 성범죄는 기사만 봐도 끝까지 읽기 힘들 정도로 극악한 수준이에요. 실제 그 성범죄를 추적한 리셋 활동가들 역시 간접 피해를 당했을 텐데요, 거기서 오는 심리적인 고통이나 충격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가끔 심리적인 고통과 리셋이 받은 충격 등에 대해 질문을 받습니다. 구체적인 가해 사실 혹은 리셋의 마음을 전하지 않더라도 ‘보는 것만으로 힘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정도로 알려진다면 충분히 분노와 이슈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리셋 활동가들은 텔레그램 내 성 착취 문제 해결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팀인 만큼, 활동가들의 심적인 어려움보다는 활동하며 느낀 제도적 한계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올해 초 디지털성범죄방지법(‘n번방방지법’)이 국회입법청원 1호를 달성했음에도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딥페이크’ 관련 법안만 통과됐을 때 실망감이 가장 컸습니다. 며칠이 지나 공개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에서 국회의원들이 한 발언을 보고 큰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현재 ‘주식회사 화난사람들’이 리셋과 함께 ‘박사’ 조주빈의 엄벌을 위한 탄원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https://www.angrypeople.co.kr/progress/detail/47)

 -리셋 활동가들의 심리 치유도 필요할 수 있는데요. 

“현재까지 어떤 지원 혹은 심리 상담 등을 받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차후 모니터링 팀을 중심으로 하여 개별적으로 상담을 받아봐야겠다는 이야기는 종종 나오고 있습니다.”

 -리셋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 범죄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접한 뒤 불법 채널 탐색을 진행해보니 수십 개의 텔레그램 채널 링크를 손쉽게 찾아낼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이를 정리해 신고를 독려했으나 정리본이 텔레그램 내 가해자들에게 유출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한 일회성 신고로는 텔레그램 채널 제재 등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조직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죠. 리셋이 리셋이 되기 전에는 모니터링과 ‘신고총공’을 하던 작은 모임으로 시작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신고 등의 방법으로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조금씩 노력하던 사람들이 리셋이 결성된 이후 도움이 되고자 합류를 요청했고 현재의 리셋이 완성됐습니다.”

 ◇‘이대로는 안 돼’ 분노, 세상 바꿀 수 있어 
대학생 여성주의 연합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이버성범죄 방지법을 즉각 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뉴스1
 -리셋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요.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는 말씀을 많이 주십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결심이나 자질이 있어야만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리셋 활동의 원동력은 ‘우리가 행동함으로써 바꿀 미래에 대한 기대’입니다. 승리, 정준영, 손정우, 빨간방, 웹하드카르텔, 소라넷, 그리고 빨간 마후라까지 디지털 성범죄는 국회와 수사기관, 언론,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강간 문화를 자양분 삼아 자라왔습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리셋에 합류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은 시민, 특히 여성(리셋, 불꽃) 시민이 나서서 여론을 움직였고 한겨레와 국민일보가 보도를 시작하면서 여론이 증폭돼 검경, 법원, 정치권까지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리셋 역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소회가 있을 것 같아요. 

“우선 리셋 이전에 계셨던 불꽃 등을 비롯해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힘 써 주신 많은 분들, 국회입법청원에 동의해주신 10만명의 여성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난 12월 리셋이 조직될 때와 비교할 수도 없게 커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관심을 보면,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는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현재 조주빈을 비롯한 악명 높은 범죄자 몇몇이 잡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신상도 모르고, 그간의 선고를 볼 때 제대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2차 가해를 합니다. 제2의 ‘박사’와 ‘갓갓’은 지금도 텔레그램과 각종 SNS 플랫폼을 오가며 활보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는 디지털 성범죄 및 범죄자들과의 싸움에서 10%도 이기지 못했어요.

리셋이 걱정하는 것은 조주빈이 잡혔단 이유로 관심이 줄어들고, 보도할 자극적인 가해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언론의 보도가 적어지는 일입니다. 나아가 총선이 끝났다는 이유로 국회가 등을 돌리는 일도 전혀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따라서 끝까지, 디지털 성범죄자들을 모두 처벌하고 강간문화가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올 때까지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관심 놓지 말아야”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의 뿌리는 깊다. 23년 전 이른바 '빨간 마후라 사건'부터 최근까지 주요 사건의 가해자들을 ‘악의 연대기’로 묶어 만든 이미지. 한국일보 ‘뷰엔’
 -리셋이 지원이나 후원을 받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활동에 드는 비용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리셋은 후원과 모금에 회의적입니다. 디지털 성범죄 근절에 필요한 금전적 지원은 국가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해자들에게서 징벌적 손해배상 혹은 부당이득 몰수를 해서 통해 충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후원과 모금의 경우 대부분 디지털 성범죄 주 피해자군인 여성들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리셋의 활동 보다 후원이 더 필요한 곳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니 만약 후원 의사가 있으시다면 투명하게 운영되는 많은 여성단체들에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리셋은 온라인 기반 활동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활동에 드는 비용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며, 현재까지 활동에 드는 비용은 사비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검경에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인터뷰에서 잘 보았습니다. 언론에도 마찬가지로 전할 말이 있을 것 같아요. 

“그 동안 텔레그램 성 착취를 보도한 언론을 보며 실망과 우려가 많았습니다. 방송 내용 자체를 훈장처럼 여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언론의 역할과 책임감을 조금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흥미 위주의 경쟁적 취재를 지양하였으면 합니다. 가해자의 개인 사정이나 가해 사실의 자극적인 면을 상세하게 보도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에 대한 어떤 대안도 될 수 없으며 가해자들을 자극할 뿐입니다. 모방범죄에 대한 가능성과 범죄자를 미화할 수 있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피해자 보도를 할 때도 공익의 목적을 생각해 2차 가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피해자 중심의 태도가 필수적입니다. 언론 역시 화제성 몰이에만 급급한 피상적인 보도가 아닌 디지털 성범죄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여론 형성에 힘써주시길 기대합니다.”

김지은 논설위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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