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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집밥 전성시대의 착잡함

입력
2020.04.10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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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식당가가 한창 사람으로 붐빌 저녁 퇴근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한호 기자
서울 서대문구 식당가가 한창 사람으로 붐빌 저녁 퇴근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한호 기자

코로나 사태가 현재진행형이지만, 그 이후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 집과 주식 사들일 타이밍을 재는 인간들도 있지만, 다수는 미래 패러다임의 변화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변할까. 변한다면 어떻게 변할까. 미래학자들의 몫이었던,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를 사람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미래는 본디 비정형의 불안한 대상인데, 코로나라는 변수는 그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세계관에 긍정적인 인식도 생겨나고 있다. 이를테면, 공공적 준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이 그 일례다. 공공병원과 질병 대응 시스템, 당장 쓸모 있어 보이지 않는 일에도 세금을 써야 한다는 인식이 분명해졌다고나 할까.

또 하나는 소비문화의 밑바닥을 뜻하지 않게 역설적으로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비가 줄어드니 공장 가동이 줄고, 덕분에 환경이 좋아졌다는 것은 지구인의 소비 행태에 대한 자연의 본보기라고 해도 될 듯하다. 나중에 상황이 나아지더라도 환경 파괴를 줄여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자연의 경고다. 오버투어리즘이 화제가 된 몇 달 전의 뉴스가 무색하게 여행이 셧다운되면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여행을 소비하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환경친화적이고, 관광지에서 사는 현지인의 삶을 보호하는 여행은 무엇인지 고민해볼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 대가치고는 너무도 뼈아픈 상황이라는 것이 괴롭기는 하지만.

한 가지 흥미로우면서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집에서 밥 해먹는 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폭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택근무, 온라인수업 등 집에 머무는 절대시간이 늘면서 가족식사가 가장 큰 화두로 등장했다. 온라인 마켓에서 재료를 사든, 장을 보든 어쨌든 밥을 차리는 수고를 우리가 정확히 목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아빠들의 요리 참여가 늘었는데, 대참사(?)라고 부르는 요리 실패담이 온라인에 많이 올라온다. 다른 이가 해줄 때 무심히 먹었던 요리가 고단하고 벅찬 노동이라는 현실을 체험하게 된 셈이다. 출산함으로써 엄마의 마음을 안다고들 하는 감정과 유사하다. 심지어 자동으로 밥을 해줄 것 같은 전기밥솥조차도, 쌀을 불리거나 물 조절의 요령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사람들도 있다. 라면 정도야, 했던 것도 다채로운 공력이 있어야 맛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고 털어놓는다(도대체, 라면과 수프는 같이 넣는 게 맞아? 아니면 따로 넣어야 해?). 스위치만 누르면 된다던 에어프라이어도 요령부득이어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그럴듯한 요리가 나온다는 점도 이제야 깨달은 이가 부지기수다. 된장찌개는 어느 타이밍에 두부를 넣어야 하는지, 콩나물은 당최 어떻게 삶아야 비린내가 안 나는지 알던 이가 얼마나 있던가. 가는 국수를 삶았는데 두툼한 우동이 되었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만은 들리지 않는다. 그 대참사의 식탁을 놓고, 가족들은 눈을 끔뻑이며 ‘그래도 모처럼 아빠가 해준 음식인데’ 하며 맛있게 먹어주는 시늉을 하는 건 우리가 참화 속에서 얻은 가족의 연대감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본디 산다는 것의 진면목은 괴롭고 힘들 때 알게 되는 법인가.

사실, 이런 글을 쓰면서 나 같은 식당업자들은 눈앞에 벌어지는 위기에 대해 얘기해야 맞을 것 같다. 여러분, 제발 좀 나와서 식사도 하고 술도 좀 드세요, 라고 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물리적 거리 두기는 피해 갈 수 없는 현 시기의 숙명이니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뉴욕이나 파리처럼 모든 식당이 강제로 문을 닫아야 하는 행정 명령을 받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만, 식당 같은 자영업이 얼마나 버틸지 모른다. 그리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암울한 예측이 있을 뿐. 오늘도 동료들의 카톡이 운다. “대출 심사에서 잘렸어.”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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