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차트 장르 다양화의 ‘동인’(動因)은 시스템일까, 히트곡일까.
대개 100위까지의 노래와 순위가 공개되는 종합 음원 차트를 다양한 장르로 구성하는 건 가요계의 오랜 숙제였다. 계절과 트렌드에 따라, 또는 누군가의 팬덤이나 프로모션에 의해 발라드·힙합·댄스 등 특정 장르의 노래가 음원 차트 상위권을 휩쓸 때면 장르 다양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곤 한다. 종합 음원 차트가 최대한 많은 대중의 취향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음원 차트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확인할 수 있다. TV조선 ‘미스터트롯’의 높은 인기가 몰고 온 트로트 열풍, JTBC ‘이태원 클라쓰’와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 인기 드라마 OST 파워, 지코와 엠씨더맥스 등 정통 음원 강자의 활약, 방탄소년단과 엑소 수호 등 아이돌들의 롱런 흥행 등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이 같은 트렌드를 하나로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시나 ‘히트곡의 탄생’이다. 음원 차트 운영 시스템의 뒷받침도 중요하지만, 대중의 사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와 앨범이 히트할 때만이 음원 차트의 특정 장르 쏠림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단 얘기다.
그동안 가요계는 음원 차트의 장르 다양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왔다. 대부분의 음원 공개 시간을 자정에서 오후 6시로 바꾼 2017년 2월 실시간 차트 개편의 목적 중 하나는 새벽 차트 ‘줄세우기’(차트 최상위권이 한 앨범의 수록곡으로 채워지는 것) 방지였다. 2018년 7월에는 차트 ‘프리징’(오전 1시부터 7시까지 실시간 차트를 운영하지 않는 것) 제도 개편을 단행하며 음원 사재기를 근절하고자 했다. 최근에는 음원 플랫폼 플로가 실시간 차트를 폐지하고 24시간 누적 기준 차트에 AI 및 머신러닝 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차트를 선보였다.
그럼에도 줄세우기 논란과 사재기 의혹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스템 변화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시스템의 손질도 별 영양가가 없다는 중간 진단이 내려진 가운데, 음원 차트 장르 다양화의 진정한 해답은 히트곡의 탄생 유무에 있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되는 사례가 얼마전부터 속속 나오고 있다
간결한 곡 진행과 SNS 챌린지가 차트 정상 독주를 이끈 지코의 ‘아무노래’, ‘미스터트롯’의 화제성이 한몫한 임영웅의 ‘이제 나만 믿어요’, 오랜 시간 검증된 감성과 고정팬들의 끈끈한 지지로 1위 수성이 계속되고 있는 엠씨더맥스의 ‘처음처럼’, 지구촌 어디에서나 통하는 퍼포먼스와 메시지를 앞세운 방탄소년단 ‘온’ 등은 히트곡이란 공통 키워드만 있을 뿐이다. 힙합 트로트 발라드 댄스 등 장르는 제각각이고, 성공 요인 또한 같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음원 차트의 장르 다양화가 이뤄지기 위해선 시스템을 손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다양한 장르의 히트곡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계속 나와줘야 가능하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기본적인 결론으로 귀결된다.
가수들도 연차와 상관 없이 히트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신승훈은 최근 30주년 스페셜 앨범 발매를 기념한 자리에서 “요즘 사람들이 모여서 드라마나 영화 얘기는 하는데 노래 얘기는 별로 안 하는 것 같다. 각자 좋아하는 노래를 혼자 듣기만 하지 말고 공유하면 더 많은 히트곡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수찬은 ‘미스터트롯’ 종영 관련 인터뷰를 진행하며 “트로트가 트렌드를 넘어 주류 장르가 되기 위해선 결국 좋은 노래가 중요하다. 히트곡은 젊은 분들에게 공감을, 기성 세대에게 역사와 전통을 전할 수 있는 곡”이라고 전했다.
최대한 많은 대중의 취향을 고려하는 종합 음원 차트는 히트곡이 더 많아지고, 더 다양해지면서 조금씩 실현됐다. 장르 다양화를 숙제가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도 히트곡의 탄생과 발 맞춘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히트곡을 통해 음원 차트가 지속적으로 다양성을 갖출 때 시스템 개편 등의 노력도 빛을 볼 수 있다.
이호연 기자 hostor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