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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로 천냥 빚? 선거 뒤흔든 ‘나쁜 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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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로 천냥 빚? 선거 뒤흔든 ‘나쁜 말’의 역사

입력
2020.04.08 14:01
수정
2020.04.0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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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스터디]정동영 등 선거 판세 뒤흔든 말실수 사례

통합당 ‘막말’ 김대호ㆍ차명진 서둘러 제명조치

김대호(왼쪽) 미래통합당 관악구갑 후보가 6일 서울 영등포구 중앙당사에서 열린 서울 현장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뉴스1
김대호(왼쪽) 미래통합당 관악구갑 후보가 6일 서울 영등포구 중앙당사에서 열린 서울 현장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뉴스1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죠. 천냥을 현재 시세로 따지면 약 6,880만원이라는 기획재정부의 계산도 있었는데요. 특히 선거과정에서 정치인의 말 한마디는 어쩌면 천 냥보다 비싼 값을 치러야 할 수도 있습니다. 자칫 잘못했다간 자신뿐 아니라 선거판 전체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4ㆍ15 총선을 앞두고 각 당에서는 혹시나 모를 실언을 단속하려 분주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이 이어지고 있어요. 당장 미래통합당은 8일 ‘부적절한 발언’을 이유로 차명진(경기 부천병), 김대호(서울 관악갑) 후보에 대한 제명 조치를 결정했어요. 이 경우 두 후보는 무소속 출마는 물론이고 통합당이 해당 지역구에 다른 후보를 내는 것도 공직선거법상 불가능합니다.

과연 선거에서 말의 위력이 얼마나 강하기에 정당이 지역구를 포기하면서까지 수습에 나서게 된 걸까요. 과거 선거를 뒤흔든 정치인의 말을 살펴봤습니다.

‘세대 비하’는 선거의 아킬레스건

“30대 중반부터 40대의 문제 인식은 논리가 아니다. 거대한 무지와 착각.”

통합당으로부터 제명된 김대호 후보가 6일 내놓은 발언입니다. 김 후보는 다음날에도 총선 후보 방송토론회에서 “나이가 들면 다 장애인이 된다”고 말해 또다시 구설에 올랐죠. 차명진 후보는 최근 OBS주최 토론회에서 “혹시 ○○○사건을 아느냐”며 “세월호 자원봉사자와 세월호 유가족이 텐트 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문란한 행위를 했다는 기사를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합당은 서둘러 그에 대한 조치에 나섰습니다. 정당이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발언 논란’을 이유로 후보를 제명한 것은 초유의 일입니다. 지역구를 포기하고라도 해당 논란이 더 이상 번지지 않고 매듭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죠.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 2004년 4월 당사에서 ‘노인 폄하’ 발언으로 인한 당 지지율 하락의 책임을 지고 선대위원장직 전격사퇴를 발표한 뒤 단식농성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 2004년 4월 당사에서 ‘노인 폄하’ 발언으로 인한 당 지지율 하락의 책임을 지고 선대위원장직 전격사퇴를 발표한 뒤 단식농성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김 후보의 실언을 두고 2004년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정 의장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60~70대 이상은 투표하지 않아도 괜찮다. 집에서 쉬시라’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았다가 거센 비판에 휩싸였어요.

정 의장은 결국 총선을 사흘 앞두고 당 지지율 하락에 책임을 지고 선거대책위원장 및 비례대표 후보직을 사퇴해야 했습니다. 결국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었지만, 한나라당이 차떼기 불법 대선자금 수수사건에 휩싸이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휘몰아친 것치고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었다는 평가입니다.

옛날 문제 발언이 뒤늦게 발목 잡기도

2012년 총선 출마 당시 과거의 여성비하 막말 파문으로 사퇴 논란에 휩싸였던 김용민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2년 총선 출마 당시 과거의 여성비하 막말 파문으로 사퇴 논란에 휩싸였던 김용민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진행자 출신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가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막말을 쏟아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을 두고 “성폭행해서 죽이자”는 발언을 했던 것이 불거진 겁니다. 정치권 안팎에서 사퇴 요구가 빗발쳤지만 한명숙 대표는 “사퇴를 권고했으나 김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심판 받겠다는 입장”이라고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죠. 그 결과 김 후보는 낙마했고, 민주통합당 역시 총선에서 패배했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4ㆍ15 총선서는 과거 막말로 물의를 빚은 정치인들은 대부분 공천 과정에서부터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대구의 정태옥 통합당 의원은 2018년 6ㆍ13 지방선거에서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 발언을 내놓았다가 탈락했어요. 정 의원을 공천할 경우 수도권 표심에 악영향이 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합니다. 정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를 했습니다. 반면 역시 막말 논란으로 공천에서 배제됐던 같은 당 민경욱 의원은 최고위원회의 번복으로 기사회생하기도 했죠.

자전거를 탄 시민이 7일 인천 부평구 굴포천에서 부평구을 21대 총선 후보자의 벽보를 보고 있다. 뉴시스
자전거를 탄 시민이 7일 인천 부평구 굴포천에서 부평구을 21대 총선 후보자의 벽보를 보고 있다. 뉴시스

이제 4ㆍ15 총선이 본격 카운트다운에 돌입했습니다. 이번 선거는 단일화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데다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후보들의 완주 의지가 강한 만큼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작은 ‘불씨’ 하나가 크게 번질 수 있겠죠. 앞으로는 정치권에서 약이 되는 말은 늘어나고 칼이 되는 말은 줄어들기를 기대해봅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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