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264개 시민단체 대표들이 3일 정부의 언론탄압을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미얀마 타임스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혼란에 빠진 미얀마와 필리핀에서 언론탄압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양국 정부는 ‘가짜 뉴스’ 척결을 명목으로 내세우지만 감염병 국면을 악용해 권위주의 정부의 언론 장악력을 높이려는 속내가 다분하다는 분석이다.

7일 미얀마타임스와 필리핀스타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미얀마의 언론탄압은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하던 지난달 말부터 시작됐다. 미얀마 정부는 “코로나19 관련 오보를 퍼뜨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면서 통신법 77조를 근거로 207개 웹사이트를 폐쇄했으며, 국방부도 10여 곳의 뉴스 서비스를 차단했다. ‘국가 긴급 상황 시 언론 보도를 통제할 수 있다’고 규정한 법령을 코로나19 사태에 적극 대입한 것이다. 이에 미얀마 언론은 “어떤 부분이 오보인지 명확히 밝히라”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공익적 필요성이 있다”는 답변만 내놨을 뿐, 여전히 조치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언로가 계속 막히자 26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연합체는 3일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를 이용해 뉴스 웹사이트를 대거 차단하는 등 언론 자유를 심대하게 침해하고 있다”며 “정부 비판 보도를 통제하는 명령을 즉시 해제하라”고 촉구했다. 미국 등 18개국 주미얀마 대사들도 “인터넷을 통한 언론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은 미얀마에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힘을 실었다. 가급적 체류 국가의 국내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외교가의 불문율을 깨고 지원사격을 해야 할 정도로 탄압 수위가 높다는 얘기다.

시민단체와 국제언론기구 등은 이번 조치가 올해 11월 예정된 미얀마 국회의원 선거와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대처 방식과 방역 결과가 총선에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정부가 언론을 장악해 군부가 주도하는 집권세력에 유리한 선거 판을 짜려 한다는 비판이다. 시민단체 ‘미얀마 표현의 자유’ 관계자는 “정부가 정권에 비판적인 뉴스를 차단하면서 (선거를 앞두고) 언론사의 자체 검열을 증가시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필리핀 대학 편집자협회 회원들이 3일 언론 자유를 보장하라는 취지의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필리핀스타 캡처

필리핀의 언론탄압도 진행형이다. 수도 마닐라의 한 대학신문사 편집장은 최근 코로나19 봉쇄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소환돼 정부로부터 형사처벌 가능성을 통보 받았다. 경찰 역시 비판 보도를 반복할 경우 체포를 예고하는 등 정부와 보조를 맞췄다. 앞서 세부의 한 대학신문 기자도 비슷한 이유로 당국에 불려가 공개 사과 요구를 받았다. 필리핀 대학 신문들은 언론법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안이 별도로 명시될 만큼 중요한 권력 감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국제인권기구 휴먼 라이츠 워치(HRW)는 “지난달 23일 통과된 필리핀 비상사태법 내 언론통제 조항이 지나치게 광범위해 악용 소지가 높다”면서 “필리핀 정부는 언론 장악을 위한 정보 차단 노력 대신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얀마와 필리핀에서는 전날 기준 각각 21명, 3,660명의 코로나19 누적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현지에선 실제 감염이 정부 발표보다 최대 10배 가량 많을 것으로 추산한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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