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전 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계획을 꺼낸 건 바로 전날 국민 1인당 50만원씩 주자는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의 제안에 화들짝 놀랐기 때문이었다. 지난주 재정건전성을 감안해 소득하위 70%에게만 지급하겠다던 여당도, 이를 ‘묻지마 돈풀기’라고 비판했던 야당도 선거일이 다가오자 “모두에게 주자”고 한목소리를 냈다. 흡사 ‘입찰 전쟁’이라도 벌어진 듯하다.
□ 거대 양당의 재난지원금 지급 경쟁은 기초(노령)연금 문제로 양당이 경쟁하던 2012년 대선을 연상시킨다. 당시까지 기초연금은 소득하위 노인 70%에게 10만원가량 지급되고 있었는데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소득하위 80%에게 20만원 지급을 약속하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모든 노인에게 20만원 지급 공약으로 공세를 차단했다. 지금은 소득하위 70% 노인은 25만원, 소득하위 40%는 30만원의 기초연금을 받는다.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인은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복지를 표와 교환할 준비가 돼 있다는 지적이 실감난다.
□ 진보 정당과 보수 정당의 복지 정책이 비슷하게 수렴되는 현상은 선례가 있다. 2차 대전 직후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이 ‘베버리지 보고서’가 설계한 복지국가 건설에 합의하면서다. 베버리지 보고서를 급진적이라고 외면했던 보수당이 이를 수용한 건 전쟁 기간 국민들 사이에 싹튼 연대의식, 복지사회에 대한 욕구를 깨닫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1945년 선거에서 참패했기 때문이다. 1979년 ‘영국병’ 치유를 내건 대처가 등장할 때까지 양당은 30년 가까이 엇비슷한 사회복지정책을 내놓았는데, 언론은 이를 ‘버츠켈리즘(Butskellismㆍ보수당 재무장관 버틀러와 노동당 재무장관 게이츠켈의 이름을 합성)’이라고 불렀다.
□ 지역구 대표를 뽑는 총선에선 복지 문제가 의제화하기가 쉽지 않지만, 전국이 단일 선거구인 대선에서는 국민적 관심사인 복지정책이 쟁점이 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총선 의제가 된 재난지원금 논쟁은 2년 뒤 대선에서 벌어질 복지 경쟁의 예고판 같다. 이미 논의가 무르익은 기본소득은 물론, 한국형 실업부조, 공공의료체계, 상병수당 등 주요 복지 의제들이 ‘선거’라는 링 위의 승부처에서 국민들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건 한국판 버츠켈리즘의 시대일까, 아니면 이념에 따른 정책의 양극화 시대일까.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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