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법원에 근무하는 A판사는 아내를 폭행하고 사건 관계 변호사들과 잦은 골프 모임을 가진 사실이 드러나 지난해 말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최근 A판사가 골프 접대까지 받았다는 제보를 받고 A판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징계가 풀린 뒤 다른 지방법원으로 전보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A판사가 맡은 재판은 소송가액 3,000만원 이하 분쟁을 다루는 소액심판사건으로 대부분 사회ㆍ경제적 약자가 소송 당사자다. 법원 입장에서는 부적절한 처신으로 징계를 받은 문제적 판사에게 중요도가 떨어지는 사건을 맡긴 셈이다.
물론 징계를 받은 법관을 모두 재판에서 배제할 수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 형을 선고 받지 않고서는 파면할 수 없다는 신분보장 규정 또한 분명하다. A판사는 아내 폭행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을 뿐이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한 고위 법관이 소액사건 등을 맡는 소규모 법원으로 복귀한 것도 이런 현실을 감안한 인사 조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징계를 받은 문제적 판사들에게 서민과 마주하는 사건을 맡기는 게 과연 온당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법원으로서는 소액사건의 구조가 단순하다는 이유를 들 수도 있겠으나, 변호사 선임은 꿈도 못 꾸는 서민들에게는 삶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재판이 될 수도 있다. A판사는 심지어 소송 대리인들과 상습적으로 골프 모임을 하는 등 절차적 정의에 대한 인식조차 결여돼 있다. 장삼이사들이 과연 이런 판사의 재판을 공정하다고 믿을 수 있을까.
더욱이 사법부 수뇌부가 ‘사법신뢰를 소액사건에서부터 회복하자’고 강조했던 점에 비춰보면 더욱 씁쓸한 재판부 운영이 아닐 수 없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지난해 1월 취임사에서 “(무너진) 사법 정의와 사법 신뢰는 소액사건 심판 법정에서부터 세워져야 한다”며 “작은 법원을 찾아와 호소하는 서민들로부터 가장 먼저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처장은 “법원의 시각과 관점이 아닌 국민의 시각과 눈높이에서 생각할 때”라고도 했다. 과연 법원의 메시지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누구의 관점에서 판사 사무분담을 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손현성 사회부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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