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철 칼럼] ‘찍어줄 후보 없는 총선’의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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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칼럼] ‘찍어줄 후보 없는 총선’의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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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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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한 것 없는 문재인 정권 지지 난망

혁신적 비전 못 낸 보수도 대안 안돼

힘겨워도 나라의 미래 걸고 투표해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지난 2일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중앙선대위 합동 출정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처음 투표권을 행사하는 18세 청년들에게 이번 총선은 자신들이 나라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설레는 즉위식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라일락 향기 같은 그들의 신선한 기운이 투표장에 감돌 걸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화려한 무지갯빛 광휘 뒤에 숨겨진 현실 정치의 초라한 진실을 대충 눈치챈 기성세대엔 별로 그렇지 못하다. 투표는 신성한 권리이긴커녕, 탐탁잖은 처삼촌 벌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올해 총선은 특히 더 그렇다. 왠지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에 투표에 나서자니 닳고닳은 신파극에 또 속아넘어가는 처지가 되는 게 한심한 것이다.

이번 총선은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바람을 타고 2017년 5월 집권했다. 오는 15일은 국정 운영 3년을 경과하는 시점이다. 그간 국정을 잘했으면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에 힘을 실어주는 게 맞다. 하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50%를 넘나드는 최근 여론조사상의 국정 지지도에도 불구, 내겐 현 정권에 좋은 점수를 줘야 할 근거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촛불혁명’ 계승을 자처하는 현 정권의 기치는 정의와 공정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정권은 그런 나라를 일구지 못했다. 대기업 갑질을 줄이는 등 공정거래 부문의 일부 성과는 괜찮았다. 하지만 고질화한 정파적 행태 끝에 터진 ‘조국 사태’와, ‘내로남불’식으로 조국을 옹호한 정권 핵심의 패착이 정의와 공정을 향한 국민 여망을 좌절시켰다.

경제정책도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게 뭔지를 확실히 보여 줬다. 현장도 모르는 ‘선무당’들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기존 경제질서를 뒤흔들었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헷갈렸다. 파이를 키울 생각은 없고, 나눠 먹을 생각만 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희한한 경제정책이 강행됐다. 결국 성장은 둔화하고, 소득은 줄었으며, 일자리 상황까지 최악으로 치닫게 됐다. 역시 낙제점을 면치 못할 수준이다.

한반도 평화정책도 미흡하다. 남북 정상의 ‘도보다리 산책’이나 북미 정상의 ‘판문점 조우’ 등 이벤트만 화려했지 내실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와 화염’을 언급했던 2017년 가을에 비해 한반도 위기가 완화한 건 인정한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통해서 북미 대화가 진전된 것도 아니고,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결국 잘 봐줘야 B~C 학점에 불과하다.

현 정권이 국정을 잘 못했다면 야당이 대안이 돼야 한다. 하지만 야권을 둘러봐도 찍을 당이나 후보가 눈에 띄지 않긴 마찬가지다. 미래통합당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정파가 새 출발을 위해 결집한 결과다. 하지만 숱한 이합집산을 거쳤어도 국민은 보수개혁의 기미를 거의 느낄 수 없다. 유승민의 불출마 선언은 주목할 만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황교안 대표가 청바지를 입는다고 혁신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다.

새로운 원칙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통합 보수’의 공천 혁신 실패는 당연했다. 박근혜 탄핵 후 잠수 탔던 구태 인물들이 순식간에 다시 등장해 ‘문재인 정권 심판’을 떠드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부랴부랴 경제민주화 주창자인 김종인씨를 선대위원장으로 모시긴 했으나, 나라의 번영과 민생의 안정을 도모할 실력 있는 새 인물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총선이 코앞인 지금, 진보 여당은 ‘지금까진 별로였지만, 개혁과제를 완수하도록 힘을 달라’고 한다. 보수 야당도 ‘아직 미흡하지만 보수 혁신을 완성해 나라를 정상화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식이다. 하지만 지난 3년간 국민의 기대와 여망을 철저히 배신해온 정권과 여야 정치권의 호소는 몰염치하다. 이런 ‘3류 정치’를 채찍질해 나라의 미래와 국운을 일으켜 세울 막중한 책임이 또다시 투표에 맡겨졌다는 사실이, 유권자들은 힘겹고 괴로운 것이다.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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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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