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근처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 방을 빼려고 주인한테 물어봤는데 새 입주자를 구하기 전까지 보증금을 줄 수 없다고 하네요.”
서울 관악구 대학동에서 자취하는 대학생 김모(21)씨는 1년 넘게 거주 중인 약 26㎡(8평) 크기 원룸에 새로 들어올 학생을 찾지 못해 애가 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라인 강의가 무기한 연장돼 사실상 1학기 내내 학교에 갈 필요가 없어 원룸을 내놓았지만 거래 자체가 끊겼기 때문이다. 본가인 강원 강릉시로 내려 가지도 못하고 월세 포함 매달 100만원의 생활비만 날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로 중학생 과외마저 끊겨 생활비 전액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다. 김씨는 “원룸 계약기간이 아직도 6개월이나 남았다”며 “주인이 월세를 45만원으로 줄여준다고 해도 여전히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신종 코로나 사태에 서울의 주요 대학들이 사실상 올해 1학기 강의 전체를 비대면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지방에서 올라온 자취생들이 월세에 ‘발목’을 잡혔다. 어쩔 수 없이 서울에 머물거나, 방을 아예 비워놓고도 매달 30만~50만원의 월세만 꼬박꼬박 토해내고 있다.
7일 기준 서울의 대학들 중 이화여대 건국대 숭실대 등은 1학기 전체 온라인 강의 방침을 확정했다. 서울대 성균관대 한양대 한국외대를 비롯한 대부분 대학들도 온라인 강의 종료 시점을 무기한 연장했다. 그러자 현장 수업이 필수인 실험 및 실습 강의를 받는 공대나 의대생들을 제외하고 지방 학생들은 코로나에 비교적 안전한 귀향을 택하고 있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학생들로 인해 대학가에선 때아닌 공동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 관악구와 광진구, 성동구의 공인중개업체 10곳을 확인한 결과 최근 월세 원룸 입주자를 구해달라는 요청이 지난 1월보다 2배 가까이 급증했다. 공인중개사 최재훈(55)씨는 “학생의 방을 빼달라는 임대인들의 전화가 하루에 한 통은 꼭 온다”며 “개강에 맞춰 입주하려다 코로나가 터지자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설명했다.
월세 계약기간이 남은 학생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신종 코로나로 부동산 거래가 멈춰 방을 빼는 것 자체가 어렵다. 대학동에서 10년간 부동산중개업을 했다는 박모(60)씨는 “대구 신천지 사태가 벌어진 2월 이후 거래는 0건”이라며 “학생들뿐 아니라 우리조차 월세 내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임대인 이모(51)씨는 “방 6개 중 3개가 공실”이라며 “코로나 전보다 월세를 10만원 인하했지만 수요가 없으니 거래가 전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간혹 수요가 있어도 외부인으로 인한 감염 공포에 거래가 쉽지 않다. 공인중개사 임재숙(62)씨는 “지난달 대구에서 올라온 대학생이 방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건물주가 ‘다른 입주자들이 불안해 해서 안 된다’고 거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에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끊기며 지방에서 온 학생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대학생 최모(23)씨는 “보조 강사로 일하던 미대 입시학원이 휴업이라 어쩔 수 없이 부모님에게 빌려서 월세를 내고 있다”고 했다.
온라인 개강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속출하자 전국 26개 대학 총학생회가 연합해 만든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회원들은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재난 시국선언을 열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오프라인 개강이 연기되며 불필요한 월세를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라며 “수업권 침해, 주거불안 등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부와 대학, 학생이 모인 3차 협의회를 만들자”고 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