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천주교 전주교구 임실성당 지정환(1931.12.5~2019.4.13) 주임신부가 고국 벨기에의 부모에게 2,000달러를 얻어 세운 게 2017년 복원된 임실N치즈 낙농특구 테마관광지의 72㎡ 규모 치즈공장과 숙성용 토굴이다. 당시 1달러 환율은, 한국은행에 따르면 약 270원. 소비자물가지수를 기초로 2019년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약 30.875배로 8,336원가량 된다. 그러니 2,000달러면 1,667만원 정도로 계산되지만, 그 금액의 실질적 가치는 지금과 판이했다. 1967년은 “말죽거리에 땅을 사면 돈을 번다”는 소문과 함께 논밭 값이 날뛰던 소위 ‘말죽거리 잔혹사’가 시작된 해이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부동산 투기 억제책인 ‘특별조치법(1967.11.29)’이 발표된 해였다.
협동조합 형태의 임실치즈 전문기업 임실치즈축산업협동조합 최근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조합은 지난해 경제사업(신용사업 제외)으로만 약 327억원억 매출 목표를 세웠고, 9월 말 현재 70.8%를 달성했다. 0.765㎢ 규모의 낙농특구와 100여 가구의 축산가구, 관련 산업 종사자들이 누려온 경제적 효과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 것이다. 적어도 ‘말죽거리’ 부동산 투자자가 이룬 것보다는 경제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값진 성과였다.
디디에 엇세르스테번스(Didier t’Serstevens)라는 이름으로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그는 뢰번 가톨릭대를 거쳐 1958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영국 런던대에서 1년간 한국어를 익혀 1959년 12월 전주교구 신부로 입국했다. 당시 부주교 김이환 신부가 그에게 ‘지정환(池正換)’이란 한국 이름을 주었는데, 지는 ‘디’의 음차이고 정환은 ‘정의로 세상을 밝히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지 신부는 주민들과 함께 오늘의 임실 치즈의 기틀을 닦은 뒤 모든 사업권과 소유권을 주민들에게 넘김으로써, 이름처럼 시혜적 경제 정의를 실천했다. 19일간의 고문과 추방 위기를 감당해가며 지학순 주교 구명운동 등 유신 체제 반대시위에 동참, 정치ㆍ사회 정의 구현에도 힘썼다. 1984년 전주교구의 장애인 사목신부로 부임한 뒤엔 중증 장애인 재활 공동체 ‘무지개 가족’을 일구었고, 2002년 호암상 상금에 치즈 홍보 모델료를 보태 2007년 무지개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성자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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