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연구팀 “염소 등 인가 내려와 먹이 찾기 빈도 증가”
감염병 공포는 인간 세상을 바꿔 놨다. 바이러스가 두려워 사람들은 자가 격리, 이동 제한, 모임 금지 등 정부의 통제정책에 기꺼이 순응했다. 그러자 ‘자유’의 혜택은 동물들에게 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구촌 30억명의 발이 묶이면서 야생동물이 ‘사람 없는 세상’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 BBC방송은 2일 뱅거대 연구팀의 분석을 인용,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사람들이 집에 머물게 되자 인가 주변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의 행동 양식이 변하고 있다고”고 전했다. 동물들이 인적 드문 도시와 마을을 활보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연구팀은 영국에서 지난달 23일부터 자택 대피령 시행된 뒤 야생동물들의 행동 변화 패턴에 주목했다. 이들 역시 이동 제한의 적용을 받은 탓에 야외 연구가 어려워 기존에 설치된 위성항법장치(GPS) 태그와 카메라를 활용해 원격으로 동물들을 관찰했다.
마을과 도시를 처음 차지한 주인공은 여우처럼 사람과 가까이 살던 동물이었다. 이후 이동 제한이 길어지면서 인가에서 멀리 떨어져 서식하던 동물까지 인간 거주지로 내려왔다. 연구팀을 이끈 그레임 섀넌 박사는 “사람이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동물들이 손쉽게 먹이를 얻기 위해 인가를 기웃거렸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31일 영국 웨일스 북부의 랜디드노 도심에서는 근처 고원에서 사는 야생 염소 무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염소 떼는 아무런 제지 없이 텅 빈 거리를 누비고 정원에 있는 풀을 양껏 뜯어 먹었다. 앞서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도 야생 퓨마가 행인 한 명 없는 도심을 어슬렁거리는 장면이 포착됐다.
연구팀은 동물들의 이런 행태를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사고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당시 사고로 체르노빌은 지역 주민 170만명은 물론, 자연까지 모두 방사능에 오염돼 삶의 터전이 철저히 파괴됐다. 더 이상 생명의 기운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동물들은 달랐다. 미국 조지아대와 영국 포츠머스대 공동 연구진은 사고 후 10년간 사슴과 멧돼지 개체 수가 꾸준히 증가해 지금은 사고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는 연구 결과를 2016년에 발표했다. 동물의 환경 적응력이 인간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얘기다.
섀넌 박사는 “모든 게 사라진 체르노빌과 동일한 형편은 아니지만 야생동물이 바뀐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불과 2주 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고 진단했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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