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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연대

입력
2020.04.06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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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잠깐 영화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걸작 예술영화들을 되돌려보면서 감독들을 우상으로 여기던 제가 수준 낮은 전쟁영화나 재난영화에 열광하게 된 것에 아내는 좀 어이없어 합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이 주는 묘한 안도감이 있습니다. 엉망이 된 세상에서 온몸을 던져 동료 혹은 가족을 구하는 영웅. 그리고 결국 찾아오는 평화. 이런 익숙한 서사의 영화를 반쯤 누워서 보고 있으면 현실이 더없이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최근 저는 이런 영화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현실이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전쟁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군인이 아니라 의료진이 최전방에 서 있다는 점은 다르지만, 이 작은 적의 공격으로 인한 손실은 웬만한 전쟁보다 더 큽니다. 로마제국도 멈추지 못했던 종교집회가 멈추었고, 6ㆍ25전쟁 중 천막 밑에서도 열렸던 학교는 문을 굳게 닫았습니다. 전 세계 사망자가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이를 것이라는 음울한 전망이 나옵니다. 백신이 나오는 내년까지 전쟁이 계속된다면 경제적 충격도 엄청날 것입니다. 최근 두 주 동안 미국의 실업이 천만 명을 넘었다는 뉴스는 초현실적입니다. 재난영화라면, 이런 상황을 한번에 반전시키는 영웅이 등장합니다. 제약회사가 효과 좋은 치료제를 발견하거나, 어떤 연구진이 백신의 출시를 앞당길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비결을 찾아낸 과학자가 나올 차례입니다. 그런 기대로 최신 논문들을 뒤적여보지만 현실은 영화처럼 되지 않나 봅니다.

조시 모리슨이라는 젊은 미국인 변호사가 있습니다. 그는 신장 기증을 기다리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신장을 낯선 이에게 기증한 다음, ‘웨이트리스트 제로’라는 사이트를 만들어서 장기 기증과 이식을 활성화하는 운동을 벌여왔습니다. 그가 며칠 전 “코로나바이러스 휴먼챌린지 실험”이라는 일에 참여할 자원자를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먼저 서명한 것은 물론입니다. 이 일은 일주일 전, 미국과 영국의 저명한 의학 및 윤리학 교수들이 발표한 논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개발은 적어도 18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 과정을 10개월 이상 단축시킬 대안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백신의 임상실험 마지막 단계(3상)에서는 건강한 많은 이들에게 백신을 주사한 다음, 1년 이상 지켜보면서 이들이 백신을 맞지 않은 이들에 비해 감염 확률이 낮은지 확인합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바이러스와 접촉하기를 기다리는 방식의 실험입니다. 그런데 만약 백신을 맞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각각 바이러스를 일부러 주입한다면 어떨까요? 결과를 오래 기다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주입 받은 이들은 입원, 심지어는 사망의 위험에 노출됩니다. 논문의 저자들은 이런 “휴먼 챌린지” 방식이 만약 젊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시도된다면 반드시 비윤리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조시 모리슨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자원자를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문으로는 자원자가 이미 필요 인원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 ‘휴먼챌린지’ 방식이 적용된다면 백신은 연내에 접종가능해지고, 수십만의 생명을 구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영화와 같은 영웅은 없지만, 대신 현실에는 보통 사람들의 강한 연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구의 병원들에 간식을 보낸 수많은 이들, 독거노인과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배달해주는 자원봉사자들, 자신의 산소호흡기를 젊은이에게 양보한 유럽의 노인환자들. 수백만년 동안 우리 인류라는 종이 살아남은 비결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힘으로 결국 승리할 것이고, 반드시 평화로운 해피엔딩을 함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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