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사회학의 도전’ 번역한 조효제 교수
인권문제는 현상 못지 않게 구조의 문제를 함께 봐야
80년대 ‘자유권’ 역할처럼 현재 인권 기관차는 페미니즘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인권 문제는 나무만 아니라 숲도 봐야 한다”며 “당장의 가해자 처벌보다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조언했다. 정준희 인턴기자

“기후 위기를 환경 문제로만 보니까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인권도 기후와 무관하지 않아요. 기후 위기가 곧 인권 위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인권 문제와 환경, 생태 문제가 연결된 적은 드물다. 인권이라면 인간 권리의 덩치를 키워야 한다고만 여겼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인권학자 조효제(59) 성공회대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눈앞의 차별에 민감한 것만으론 부족하다”며 “지금 필요한 건 위태로운 인간 실존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골칫거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도 기후 위기 때문이다. “29개국 48개 연구소의 바이러스 전문가들이 속한 ‘전지구적 바이러스 네트워크’(GVN)라는 연구단체의 지난해 연례 총회 때 이미 ‘기후 위기가 진행되는 한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과 재등장이 반복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어요. 역병이 자주 출현하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 생명권과 건강권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코로나19는 전화위복의 가능성도 보여줬다. 중국 등에서 산업 활동이 멈추고 화석 연료 사용이 줄자 미세먼지, 매연, 온실가스도 함께 감소했다. 동시에 코로나 피해 구제와 경기 방어를 위해 미국, 유럽의 각국 정부들은 천문학적 자금을 동원하고 있다. 정치적 의지에 따라서는 기후 위기 극복 노력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가 ‘시야 확대’를 강조하는 건 이 때문이다.

다른 사례도 마찬가지다.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도 사건 자체만 봐선 안 된다. “권리는 역사적, 사회적 경험의 산물입니다. 노동권만 해도 18세기 산업혁명 전엔 개념도 없었지만, 지금은 핵심적 권리가 됐습니다. 권리 조건을 살펴야 해법의 단초도 보입니다.” n번방 사건만 해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이버 공간이나 부풀어오른 소셜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조건부터 차근차근 살펴봐야 한다는 게 조 교수 분석이다.

본보와 인터뷰 중인 인권학자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 정준희 인턴기자

인권 문제를 보는 시각이 그렇기에 조 교수는 ‘차별금지법’ 제정과 구조적 접근을 함께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도 필요하겠지만 한계가 뚜렷한 대증 요법이라 본다. 인권 문제를 법에 가두는 건 적절한 태도가 아니다. 법을 넘어 그런 권리 요구를 낳은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 개입해야 한다. 조 교수는 “겉으로 드러나는 혐오ㆍ차별 현상을 막는 것 못지 않게 그 현상이 나타나게 하는 신자유주의 각자도생 사회 같은 구조의 문제를 함께 봐야 근본적 처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인권 발전사를 열차에 빗댔다. 시대별로 선도적인 인권 담론이 나오고, 이 담론이 일종의 ‘기관차’ 역할을 맡아 다른 인권들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예컨대 1987년 민주화 운동 때에는 자유권이 기관차였다.

지금 인권 열차의 선두에는 페미니즘이 있다. 이런 역사적 시각은 ‘남녀 간 젠더 갈등’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조 교수는 “당장 눈앞 문제에 매몰되면 대립이 첨예할 수밖에 없다”며 “여성은 현재 페미니즘 운동을 가능하게 한 자유권 토대를, 남성은 오랜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구조적 차별을 이해하려 할 때 대결 양상이 완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기득권화한 옛 운동권 ‘586’ 세대와 ‘젊은 진보’가 벌이는 갈등도 그렇다. “진보 정체성을 지닌 이들일수록 역사적 감수성은 필수입니다. 옛 진보가 자신의 불온했던 과거를 돌아보면 새 진보가 좀 오버하는 부분을 수용할 수 있고, 새 진보는 약간 답답하더라도 자신들의 불온함이 옛 진보 덕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양측 간 화해가 가능해요.”

조 교수가 최근 ‘인권사회학의 도전’(교양인)을 번역해낸 것 역시 도처에 인권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인권 개념이 규범론에만 매몰되는 걸 막기 위함이다. “인권 측면에서 완벽한 세상이라는 건 없습니다. 불편을 해소하고 권리로 제도화하면, 다시 새로운 불편이 등장하게 마련이죠. 이 과정이 거듭된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 그게 인권학과 인권 운동의 숙명이에요.”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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