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양극화, 불편한 민낯] <2>재택 근무는 꿈도 못꿔요
사무-생산·유통·판매 ‘직종간 희비’
직원 만족감 커 적극 도입 움직임
택배 등 재택근무 어려운 직종은
“코로나로 업무 되레 가중” 박탈감
LG화학 직원들이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근무지가 아닌 장소에서 사무실에서처럼 일을 보고 있다. LG화학 제공

석유화학 기업에 다니는 김모(36) 과장은 2일로 재택근무 34일째다. 이날도 평소 출근 시간보다 1시간 늦은 오전 7시에 기상해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서울 도봉구 집에서 사무실이 있는 서울 중구까지 1시간 이상 소요되는 출근 시간에서 해방된 덕분이다. 김 과장이 업무용 노트북 앞에 앉은 시간은 사무실에서와 같은 오전 8시30분. 지문ㆍ안면 인식 등 본인 인증만 거치면 노트북을 통해 사무실 PC 기능을 대부분 사용할 수 있다. 이날은 5명의 팀원들과 20여분간 회의도 가졌다.

같은 날 아침 박모(32)씨는 서울 중구에 있는 인쇄소로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에 탔다. 경기 고양시 집에서 직장까진 1시간30분가량 걸린다. 박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극심해진 2월부터 KF94 마스크 착용을 잊지 않는다. 주말마다 약국 앞에 줄을 서서 어렵게 구입한다. 박씨는 “다음달 출산이라 코로나19가 너무 신경 쓰이지만, 현장에서 기계를 다뤄야 해 재택근무를 할 수 없다”며 “매출 급감으로 눈치가 보여 연월차를 쓸 수도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의 주요 방역책으로 부상한 재택근무에서도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감염 우려 없이 집에서 업무를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만, 회사 규모나 직종에 따라 재택근무 적용 여부가 뚜렷이 갈린다. 특히 중소기업, 생산직, 판매직 등 상대적으로 처우가 열악한 직장인들이 재택근무 대상에서 주로 제외되고 있어 ‘부익부 빈익빈’ 논란을 낳고 있다.

◇중소기업까지 퍼진 재택근무

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유연근무제 지원절차 간소화가 시행된 2월25일부터 이달 1일까지 유연근무제를 채택하며 지원을 신청한 기업은 2,228곳(2만6,717명)이다. 연초부터 지원 간수화 시행 이전까지 신청건수(243곳, 1,710명)과 비교하면 9배가량 급증했다. 특히 전체 신청건수의 58.5%는 재택근무 채택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1997년 유연근무제 도입 이래 제도 활성화 차원에서 중견ㆍ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간접노무비를 지원해왔는데 그간 저조하던 도입률이 ‘코로나발 재택근무’ 확산으로 대폭 높아진 것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보다 작은 기업도 유연근무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는 셈이다.

이참에 재택근무 체제를 상시화하려는 기업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정부의 재택ㆍ원격 인프라 구축 지원 사업에 지원해 심사를 마친 사업장만 지난달 말 현재 26개소에 달한다. 이는 중견ㆍ중소기업이 원격근무 인프라 구축에 투입한 비용의 50%(2,000만원 이내)까지 정부가 지원해주는 정책으로, 그간 수혜 기업은 2018년 11곳, 지난해 28곳에 그쳤다.

◇재택근무 전환 직원은 ‘만족감’

재택근무에 들어간 직장인들은 갑작스러운 근무방식 전환에 따른 혼선이 해소되면서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은 “성과 측정방법 등 개선할 부분은 많지만, 우려했던 것보다 부작용이 크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며 “이번 기회에 재택근무를 포함한 유연근무제를 적극 활용하고자 대대적인 시스템 점검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재택근무 만족도를 높이는 주요인 중 하나는 통신 기술 발전이다. 메신저 기반의 협업 툴인 MS ‘팀즈’, 네이버 ‘라인웍스’, SK텔레콤 ‘가상 PC(가상 데스크톱 인프라ㆍVDI)’ 등의 기술을 활용하면 사내 공용PC 연결은 물론이고 원격회의나 대규모 채팅을 통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더 이상 대면 소통을 고집하며 사무실에 직원들을 묶어둘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재택근무를 포함한 비대면 접촉 근무가 장기적으로는 보편적 근무 형태가 될 것이라는 공통된 의견을 내놓는다. 실제 카카오, 네이버 등 국내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정식 근무 형태로 인정하고 있다.

최근 재택근무를 종료한 SK LG 포스코 현대차 등 주요 기업들도 스마트워크 등 새로운 근무체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유연한 시간제를 원칙으로 근무 장소 및 시간 재설계에 들어간 것으로 이를 위해 화상회의나 원격근무가 가능한 보안 시스템 도입, 문서 없는 보고, 회의시간 30분 이내 단축, 업무 진행상황 상시 공유 등을 도입하고 있다. 한달 넘게 직접 재택근무를 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근무환경에 대한 지속적 연구와 데이터 축적을 통해 체계적인 워크 시스템으로 정착시키자”고 주문할 만큼 적극적이다.

사무직이 재택근무에 들어간 현대자동차에서도 생산직은 공장으로 출근해 차량을 조립했다. 현대차 제공
◇생산ㆍ유통ㆍ판매직은 ‘박탈감’

반면 재택근무와 거리가 먼 직장인들도 많다. 회사 경영진이 도입에 소극적인 경우도 있지만, 현장에서 직접 상품을 제조해야 하는 등 업종 특성 때문에 재택근무 도입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업체도 많다. 대기업 안에서도 이 때문에 사무직과 생산직의 희비가 엇갈린다.

사람인이 이달 초 기업 1,089곳을 대상으로 업종별 재택근무 여부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무직 비중이 높은 금융ㆍ보험(73.3%) 정보통신(58.8%) 석유ㆍ화학(55.6%) 전기ㆍ전자(50.0%) 업종에선 재택근무가 활발히 이뤄진 반면, 기계ㆍ철강(14.3%) 건설(20.8%) 제조(29.7%) 등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을 보였다. 직원 50여명을 둔 자동차부품 생산업체 관계자는 “생산라인에서 특정 장비를 통해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어서 재택근무는 어렵다”고 말했다.

유통업계는 대면 접촉이 잦은 업무 특성 때문에 재택근무 도입이 쉽지 않다. 택배기사나 판매직은 특히 근무방식 전환과 거리가 먼 직종이다. 택배기사 정모씨는 “코로나19로 물량이 늘면서 업무가 가중돼 사람들과 면대면 빈도가 전보다 늘고 있다”며 “재택근무는커녕 ‘나인투식스(오전 9시~오후 6시 근무)’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있어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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