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당신들이 아플 때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나 같은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그만 좀 하세요” 얼마 전 영국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호소였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48시간 교대근무를 하고 퇴근 후 마트에 들렀는데 사재기 때문에 먹을 것을 구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먹어야 산다.’ 이보다 명확하게 음식의 가치를 말해 주는 문장도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많은 나라에서 사재기가 벌어졌는데 그 1차 대상은 먹거리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재기는 없고, 오히려 자원봉사자가 자가격리자를 위해 음식 상자를 조용히 배달해 주는 모습이 외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음식 박스의 내용물을 보니 과거보다 가공식품이 정말 다양했다. 그리고 이제는 쌀 대신 즉석밥을 제공하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워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집에서 충분히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상황에서 쌀 대신 즉석밥을 주면 아깝다고 했을 터이다. 어느새 포장된 물이나 밥을 사 먹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사실 과거에 연료를 구하는 것은 음식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생존에 중요한 요소였다. 익혀 먹는 것이 날로 먹는 것보다 세균과 바이러스로부터 훨씬 안전하고 소화 흡수도 훨씬 잘 돼서, 요리의 발명이야 말로 인간이 인간다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로 꼽는 학자도 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비교적 땔감을 구하기 쉬웠지만 너른 평야지대의 중국인에겐 땔감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식재료를 칼로 잘게 자르고 기름을 이용하여 적은 연료로 빨리 익히는 요리법이 발달했다.

비상시에는 간편한 가공식품이 안전하며 오래 보관 가능하고, 최소한의 에너지와 노력으로 먹을 수 있어서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코로나19가 가공식품의 또 다른 면을 보게 해 주고,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절박하게 느끼게 한다. 요즘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이 많은데 회사에는 손해지만 직장인에게는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고 혼잡함도 피할 수 있게 해 주니 나름 혜택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적 피로도나 소외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직장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사회적 거리 두기로 소외감을 느낀다는데, 두 달 전 설날에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명절 때면 지나친(?) 사회적 밀착으로 인한 ‘명절증후군’이 논란이었다. 많은 식구가 모인다는 것, 그만큼 많은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 등이 특히 여성들에게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 그런데 과거에는 평소의 음식 준비도 지금의 명절 음식 준비만큼 힘들었다. 80년대 이전에는 대부분 재래식 부엌이라 음식을 만들려면 연기를 참으며 나무로 불을 때야 했다. 부엌의 높이도 낮아 항상 허리를 굽혀 일해야 했고, 상수도의 보급도 안 된 곳이 많아 물도 길어다 사용해야 했다. 심지어 쌀은 아무리 잘 씻는다 해도 곧잘 밥에서 돌이 씹히곤 했다. 그러니 과거에는 일상이 명절만큼 피곤한 나날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번거롭게 음식 준비할 필요가 없이 알약 하나로 식사가 해결되는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코로나19는 명절증후군마저 행복한 투정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우리의 삶과 생각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유일한 예방책이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과 사람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이라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한다. 최근에는 그래도 혼밥이 어색하지 않지만 우리는 전통적으로 혼자 밥 먹는 것을 꺼려 왔다. “밥 한 끼 하자”는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의 쉽고 편안한 표현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친한 친구나 친척과도 밥 한 끼 하자고 말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사회적 거리 두기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준다며 ‘물리적 거리 두기’라고 말하자고 한다.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여러 방법으로 사회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물리적 거리 두기’가 더 맞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별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멀어지면 물리적으로도 저절로 멀어지지만,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만 유지하면 된다고 하면 우리는 금방 붙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사건을 일으킨 코로나19 바이러스는 0.07~0.09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의 아주 작은 것이다. 작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실제 얼마만큼 작은 것인지 체감하기 힘든데, 우리 몸은 30조개의 세포로 되어 있는데 크기가 20㎛ 정도다. 길이가 250배이니 부피로는 1500만배다. 바이러스는 1500만개를 합해야 겨우 우리 세포 하나를 채울 정도로 작은 것이다. 그 작은 것이 전 세계에 감당하기 힘든 타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모두가 집에서 갇혀 지내야 하는 록다운 상태가 아니다. 전 세계로부터 가장 훌륭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찬사를 받고 있다. 중간 성적이 좋았지만 최종 성적이 나쁘면 별 의미가 없다. 긴장이 풀리면 한순간에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고, 긴장이 과도하면 일상이 무너진다. 우리나라가 방역과 일상이라는 완전히 상반된 목표를 끝까지 조화시킨 최초의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ㆍ식품공학자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