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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피해자 특정 안돼” 아이디·닉네임 대상 악플엔 줄줄이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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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피해자 특정 안돼” 아이디·닉네임 대상 악플엔 줄줄이 무죄

입력
2020.04.03 07: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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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 없는 ‘악플 바이러스’] <3> 악순환 고리 끊는 대응책은 

 

 명예훼손·모욕죄 성립 힘들어 

 웹툰 캐릭터 악플도 처벌 안돼 

 ‘전원 형사처벌’ 목소리 커지지만 

 “실질적 피해자 구제가 우선” 중론 

온라인 악성 댓글(악플)을 게시하는 악플러에겐 주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나 형법상 모욕죄가 적용된다. 하지만 이들 법 조항은 사람의 외부적 명예나 사회적 평가를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어, 피해자의 신원이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디나 닉네임만을 상대로 한 악플은 대부분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온라인 악성 댓글(악플)을 게시하는 악플러에겐 주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나 형법상 모욕죄가 적용된다. 하지만 이들 법 조항은 사람의 외부적 명예나 사회적 평가를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어, 피해자의 신원이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디나 닉네임만을 상대로 한 악플은 대부분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온라인에서 아이디(ID) 또는 닉네임을 대상으로 악성 댓글(악플)을 퍼붓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해당 악플러(악성 게시글 또는 댓글을 단 사람)를 처벌해 달라는 요구도 증가하는 추세지만 실제 형사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드물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와 형법상 모욕죄는 피해자 신원이 어느 정도 특정돼야만 성립하는 탓이다. 바꿔 말하면, 현행법상 아이디나 닉네임 자체는 법의 보호를 받는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2014년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인 ‘뽐뿌’를 방문했다가 피해자가 닉네임으로 작성한 글에 댓글을 남겼다. A씨는 “벌레 잡으러 왔습니다”라는 댓글을 6차례 달아 모욕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무죄가 선고됐다. “해당 사이트는 회원수가 200만명에 이르고, 별명만으로도 글을 작성하고 댓글을 달 수 있어 익명성이 강한데다, 피해자의 신상정보도 없다”는 게 법원이 밝힌 무죄 이유다.

웹툰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모욕한 경우는 어떨까. 이 역시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인천지법은 2016년 생활 웹툰에 악플을 달았다가 법정에 선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웹툰에 등장하는 인물이 실존 인물의 성격과 외모, 행동을 토대로 표현됐다고 해도, 웹툰을 보는 사람 입장에선 그 내용이 사실과는 차이가 있고 등장인물이 실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악플러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오면 피해자 입장을 반영해 상급 법원에 항소할 때도 있지만, 역시 유죄를 받기는 쉽지 않다. C씨는 2015년 애완동물 분양 관련 네이버 카페에서 피해자 아이디를 언급하면서 욕설을 적었다. C씨는 이어 “주어가 없어 고소는 안 될 거에요. 열심히 신고해 보세요”라면서 조롱했지만, 수원지법 1심 재판부는 C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피해자 인적 사항을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C씨가 피해자 아이디를 사용하는 사람을 특정해 모욕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1심 판결에 불복했지만, 2심 재판부 역시 같은 결론을 내렸다.

무죄가 선고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형법에 실체적인 사람의 명예만을 보호하도록 규정돼 있는 영향이 크지만, 최근엔 법원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해 현실적인 고민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일부 판결문엔 “아이디만 이용한 악성 댓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다”(의정부지법, 2015년 6월 선고)” “사이버 공간의 아이디와 그 배후에 있는 실체적인 사람에 대한 밀착도는 좁아지고 있다”(수원지법 성남지원, 2016년 5월 선고) 등의 내용이 언급돼 있다.

하지만 현실과 법원 판단의 괴리를 없애려는 대안으로 ‘아이디나 닉네임을 공격한 사람에 대한 전원 형사 처벌’이 거론되는 것에는 반대 목소리가 높다. 모욕죄와 명예훼손 사건을 많이 다뤄 온 이은의 변호사는 “수사 자원이 한정된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을 우선적으로 구제하는데 수사력이 집중돼야 한다”며 “아이디나 닉네임까지 꼭 법의 보호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아이디나 닉네임에 대한 공격이라도 피해자가 특정될 경우엔 형사 처벌을 받았다. 2017년 1월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게임 채팅방에서 피해자 아이디를 지칭하며 욕설을 한 게임 이용자에 대해 모욕죄를 인정,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채팅방에 접속해 있던 다른 사람들이 피해자와 함께 게임하며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고, 서로의 이름과 나이, 연락처 등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실명이 적시되진 않았어도 게임 이용자들이 피해자 아이디를 사용하는 실제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던 만큼 피해자가 특정됐다고 본 것이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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