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ㆍ재벌 스캔들… 사회적 이슈엔 어김없이 ‘벌떼 악플러’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ㆍ재벌 스캔들… 사회적 이슈엔 어김없이 ‘벌떼 악플러’

입력
2020.04.01 07:00
0 0

 [백신 없는 악플 바이러스] <1>혐오와 욕설 판치는 난장판 

 “홍어들” 비슷한 악플에도 재판부마다 들쭉날쭉 형량 논란 

온라인 악성 댓글(악플)은 피해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은 물론, 때로는 생명을 빼앗기도 하는 ‘인터넷 흉기’나 다름없다. 류효진 기자

“범행 대상이 대중의 시선을 일정 범위 내에서 감내해야 하는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아니고, 세월호 사고에서 살아남아 죽은 친구들의 삶의 몫까지 감당하고 살아 나가는 어린 학생들이다.”

2015년 5월 말 수원지법 안산지원이 선고한 악성 댓글(악플) 사건 1심 판결문 가운데 ‘양형 이유’ 항목에 기재된 첫 문구다. 그보다 1년여 전인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살아 남은 안산 단원고 학생 21명을 모욕한 혐의로 기소된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 회원 2명을 재판부가 엄히 꾸짖은 것이다. 모욕 사건은 벌금형 선고가 대부분이지만, 이들에겐 이례적으로 징역 4월의 실형이 각각 선고됐다.

두 사람의 구체적 범죄 사실을 보면 조롱으로 가득했다. “2015년 1월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구입한 단원고 교복을 입은 한 명이 어묵을 먹으며 일베 회원 인증 손짓을 하고, 다른 한 명은 이를 촬영해 ‘친구 먹었다’는 제목으로 해당 사진을 일베 사이트에 게시했다.” 당시 일베에선 ‘어묵’은 세월호 희생자를 비하해서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결국 이들은 숨진 학생과 생존 학생 모두를 한꺼번에 조롱한 셈이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마치 사망한 학생들의 희생으로 살아간다는 취지의 글과 사진”이라며 “아직 어린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이 상당할 것으로 보이는데도, 피고인들은 진지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고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악성 게시글의 소재가 무엇이었는지, 해당 사안의 사회적 중요도는 어느 정도였는지,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은 어땠는지 등의 전후 맥락을 두루 고려했다는 얘기다. 수학 여행을 떠난 고교생 250명을 비롯, 무려 304명의 희생자를 낳아 온 나라를 슬픔에 젖게 만든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한 판결이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은 이슈엔 악성 댓글 게시자, 이른바 ‘악플러’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마치 공격 대상으로 삼을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는 듯이 하이에나 무리처럼 몰려든다. 그들은 별다른 근거도 없이 허위 사실을 끄적거리거나, 혐오와 비방으로 점철된 막말을 쏟아낸다. 피해자 측은 완전히 발가벗겨진 채 무방비로 악플 공세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한국일보가 분석한 최근 5년간의 악플 사건 판결문 1,401건 가운데 단일 이슈로 가장 많았던 사건도 다름아닌 세월호 사고였다. 총 26건의 판결문이 발견됐는데, 이 중 19건은 세월호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명예 훼손 또는 모욕 사건이었다. 하지만 ‘부실 구조’ 비판을 받았던 해경 대원들을 635회에 걸쳐 허위 사실로 비방한 사건(징역 1년 6월), ‘세월호 음모론’을 제기하며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사례(벌금 150만원) 등도 있었다. 악플은 결코 좌우 이념적 시각에서 바라볼 문제가 아님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2015년 1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혼외자가 있다”는 발표도 엄청난 악플을 불러모은 경우다. 최 회장은 물론, 그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김희영 티앤씨 재단 이사장은 “내연녀 생활비를 왜 회사에서 지급하나” “학력을 위장해 재벌 회장을 속여 유혹한 꽃뱀” 등의 허위 비난 댓글에 시달렸는데, 이 사건 관련 판결문도 12건이나 됐다. 공소기각으로 마무리된 사건을 제외하면 악플을 달았던 사람들은 벌금 70만~300만원이 각각 선고됐다. 두 사람을 소개한 인물로 지목된 외신 기자가 피해자였던 사건에선 가해자로 드러난 60대 주부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기도 했다.

특이한 대목은 대형 이슈 관련 사건에선 비슷한 취지의 악성 게시글 또는 댓글이 여기저기에 달리는 법인데, 재판부마다 형량이 천차만별이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대구지법은 세월호 유족에 대해 “대단한 벼슬인지 알고 개소리 지껄이는 쓰레기” “홍어(호남 출신을 비하하는 일베식 표현) XX” 등의 문구로 게시글을 올린 A씨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반면 수원지법에선 네이버에 “홍어들 또 ○○하네… (전)라도는 정말 싫다”라는 댓글을 올린 B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비교적 긴 분량을 올렸던 악플러의 형량이 오히려 짤막한 댓글 한마디를 올린 사람보다 낮았던 것이다. 같은 시기, 창원지법 진주지원은 “가족들은 평생 만져보기 힘든 거액을 챙기고… (중략) 결국은 돈이다”라는 댓글로 세월호 유족을 모욕한 C씨에게 두 사례보다 훨씬 액수가 큰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회적 관심 사안에 악플이 쏟아지는 이유를 두고 전문가들은 사회심리적 스트레스를 잘못된 방식으로 배설하고 전가하려는 현상으로 분석했다. 이진로 영산대 자유전공학부(신문방송학 전공) 교수는 “혐오의 표현은 사회의 인식 수준이 미성숙 상태일 때, 분쟁의 원인을 특정 집단에 돌려버리면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