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부터 재난 현장까지… 일부 국민들 도착한 다음 “돈 없다” 생떼쓰기도
“우리도 한국 가고 싶습니다. 데려가 주세요.”
전쟁이나 기아 정치적 박해 등으로 갈 곳 잃은 난민들 얘기가 아닙니다. 해외 곳곳의 교민, 유학생, 관광객, 봉사활동가, 기업가 등 현지에 발이 묶인 사람들의 아우성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한국 정부를 향한 SOS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전세기를 투입해서 한국으로 데려가 달라는 건데요. 실제로 우리 정부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가 코로나19로 봉쇄되자 세 차례 전세기를 투입해 교민을 송환한 데 이어 이란, 페루에 잇따라 전세기를 파견했어요. 1일 아침에는 유럽에서 코로나19 상황이 가장 심각한 이탈리아에 머물고 있는 국민을 태우고 전세기가 도착할 예정입니다.
전세기 투입은 코로나19라는 이례적 상황 때문인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 있는 사례는 아니에요. 과거에도 재해, 재난 등 위급 상황에서 국민 안전을 위해 몇 차례 전세기를 파견했습니다. 사실 국민 보호는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죠. 헌법 제 2조에는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돼있어요. 국가가 전세기를 해외에 파견해 국민을 송환하는 건 의무를 이행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네요.
30년 전, 걸프전의 포화 속으로… 전세기 투입의 시작
전세기 파견의 시작은 30년 전 걸프전 때로 거슬러 올라가요. 초창기에는 주로 전쟁터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국민들을 구해 오는 것이 전세기의 역할이었습니다.
1990년 8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걸프전 때 현지에 전세기를 파견했습니다. 중동의 정세가 한치 앞을 알 수 없을 만큼 불안해 지자 정부는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했던 그 해 8월엔 요르단으로, 걸프전이 시작된 이듬해인 1991년 1월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항공 전세기를 보내 이라크 교민 90명과 사우디아라비아 교민 등 400명을 귀국시켰어요. 1998년 인도네시아에서 화교를 학살하는 등의 폭동이 일어났을 때는 정부가 같은 해 5월 대한항공 전세기를 동원해 교민들을 안전하게 한국으로 데려오기도 했어요.
민족 분쟁으로 대규모 유혈 사태가 일어났던 키르기스스탄에도 전세기가 급파된 적 있어요. 다만, 국내 송환을 위한 전세기는 아니었죠. 당시 정부는 남부 오쉬시에서 민족 간 분쟁이 빚어지자 이곳에 거주하던 전체 교민 85명중 74명을 전세기에 태워 수도 비슈케크로 옮겼어요. 그 과정은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고 해요. 교민들이 오쉬공항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을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정부와 현지 대사관은 키르기스스탄 정부에 무장경호를 요청했고 현지 당국의 지원 덕에 교민들은 조마조마해 하며 공항에 갔습니다.
전세기는 탔는데, 돈을 안 냈다고요?
전세기 비용은 누가 내냐고요? 코로나19 전후로는 당연히 탑승객이 내는 걸로 알고 있지만, 정부는 비용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적도 있어요. 정부는 리비아에서 분쟁이 계속 일어나 2011년과 2014년 두 번이나 전세기를 보냈어요. 2011년에는 이집트항공과 대한항공이 투입돼 모두 700명의 근로자들을 한국으로 무사히 데려왔는데요. ‘늑장대응’이란 지적이 일었다고 해요.
그 이유가 다름아닌 비용 처리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리비아에서 반정부 시위 사태가 내전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미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자국민들을 피신시켰는데 우리나라는 비용 부담을 놓고 관련 부처 사이에 이견을 조율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는 겁니다. 당시엔 정부에 전세기 관련 예산이 없어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담당 국장이 개인 자격으로 보증을 선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지급 보증액만 해도 5억6,000만원에 달해 하마터면 집 한 채를 고스란히 날릴 뻔 했다고 하죠.
진통 끝에 현지에 전세기를 파견해 한국인들을 무사히 데려오긴 했는데, 갈등은 끊이지 않았어요. 외교부가 임차 비용을 승객 수대로 나눠 1인당 750달러(약 91만원)가량을 탑승객들에게 부담하게 했는데 몇 개월이 지나도 10명 중 2명 정도가 “돈 없다”며 항공료를 내지 않겠다고 한 거죠. 전세기 탑승객 중 일부가 비용 부담에 불만을 드러내면서 한동안 개인이 돈을 내는 게 맞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어요. 1억 5,000만원에 달하는 미납액. 보증을 섰던 국토부 국장이 떠안을 뻔 했었다는 데요. 몇 달이 지나 이 문제는 해결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돈을 탑승객들이 냈는지, 누가 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어요.
지진에 화산까지…국민들이 있는데 비행기가 없다면 어디든 간다
자연재해 때문에 전세기를 동원한 적도 있어요. 바로 2015년 4월 네팔에서 규모 7.8의 대지진 발생했을 때였습니다. 네팔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학생들이 지진으로 인해 현지에서 발이 묶이자 정부가 전세기를 띄웠던 건데요. 사실 당시에는 여진이 계속되는 등 위급한 상황이지만 정부 차원에서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었어요. 현지와 연락이 원활하지 않았던 데다, 네팔을 취항하는 국적기가 주 1,2회밖에 운항하지 않아 전세기를 띄우는 데 며칠이나 걸렸다고 해요.
코로나19 사태 이전 가장 최근에 전세기를 투입했던 건 유명 휴양지, 발리였습니다. 2017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섬 북동쪽 아궁(Agung)산 화산이 분출하면서, 발리 공항이 폐쇄됐었죠. 귀국 예정이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갑작스런 공항 폐쇄로 때 아닌 공항 노숙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아시아나 전세기를 발리 인근 도시인 수라바야 공항에 투입했습니다. 발이 묶였던 한국인 여행객 266명은 12월 1일 아시아나 전세기를 타고 귀국했습니다. 이날 귀국한 이들은 발리에서 300㎞ 떨어진 수라바야 공항까지 버스로 15시간 넘게 이동하는 ‘겹 고생’ 끝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어요.
탈북자 송환에 범죄자 송환까지
위급 상황이 아닌 다른 용도로 전세기가 활용된 적도 있어요. 노무현 정부 때 탈북자 460여명이 베트남에 머물고 있어 2004년 7월 27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전세기 2편을 보냈다고 해요. 탈북자들이 종종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에 머물렀는데, 탈북자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미처 이송되지 못한 탈북자들을 한꺼번에 이송하기 위해 전세기를 동원했어요. 이번 일로 북한과 잠시 관계가 껄끄러워졌다고 하죠. 당시 북한은 베트남을 맹비난했고, 우리나라를 향해서도 “남조선 당국의 반민족적 납치 테러 범죄”라고 비판했어요.
해외로 도피한 범죄 피의자 송환을 위해 전세기를 띄운 적도 있어요. 2017년 12월의 일인데요, 필리핀 현지에서 붙잡힌 범죄 피의자 47명을 송환하기 위해 한국 경찰 120명에 필리핀 현지 경찰과 이민청 수사관 등 모두 170명 넘게 투입됐다고 해요. 경찰이 전세기를 동원해 해외 도피 사범을 단체로 송환한 건 그것이 첫 사례였다고 합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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