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공개한 외교문서 통해 홍보 방안 등 확인 
1986년 신상옥 최은희 북한탈출을 다룬기사를 시민들이 보고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8년 1월과 7월 홍콩에서 납북됐다가 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통해 탈출한 영화배우 최은희, 영화감독 신상옥 부부. 이들은 결국 한국 귀국이 아니라 미국 망명을 택했다. 국내로 들어와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을 수 있고 북한으로부터 해코지를 당할 것도 염려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두 사람의 한국 송환을 추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들의 한국행과 미국행 선택에 따른 홍보 논지까지 각각 마련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86년 5월 14일 미 국무부가 두 사람의 미국 입국 및 무기한 체류 허가를 발표하기까지 한국 정부의 대응 방안과 한미 간 대책 논의 등이 담긴 외교문서가 31일 공개됐다. 86년 3월 작성된 ‘미국 국내법에 따른 신ㆍ최 사건 처리 방안’ 문서에는 “두 사람이 북한에 의해 납치됐다는 것이 한국의 공식입장이므로 자국민 보호와 국적에 의한 인적관할권 행사에 따라 이들의 한국 송환을 조속 추진해야 할 것”이라는 대책이 적혀 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미국이 두 부부를 북한으로 추방하지는 않을 것으로 확신했다. 다만 이들이 한국으로의 송환을 거부할 경우, 미국이 한국과의 관계에 비춰 난처한 입장에 처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두 사람이 한국 정부에 의한 탄압을 우려했다는 인식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이들이 난민으로서 망명 자격을 부여 받으면 “현재의 한미관계 등에 비추어 양국 간에 불필요한 정치 문제로 발전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각 상황에 따른 홍보 논지를 마련해 둔 점도 눈길을 끈다. 한국으로 즉시 귀국한다면 ‘국내 영주 귀국은 본인들의 자유의사에 의한 것이며 미국에 대한 보호 요청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납북 후 북한에서 행한 이적행위는 북괴 강압에 의한 불가항력에 기인된 것이라고 인정하는 정부 당국의 관용과 배려를 두 사람이 충분히 인식하고 국내 영주귀국을 결심한 것’ 등으로 이들의 한국 귀국이 당연한 것임을 알리는 차원이었다.

정부는 공항에서 성명 발표, 문화예술인 주체의 귀국환영회 참여, 국내 합동기자회견, 대북 심리전 매체활동과 같은 구체적인 홍보 시행 방법까지 미리 마련해뒀다.

미국으로 바로 건너가 머문다면 ‘미국에서의 거주를 희망한다는 자유의사를 최대한 존중한 것’이며, ‘미국에서 안정을 취한 후 두 사람은 빠른 시일 내 귀국할 것을 결심’했다는 식으로도 홍보 방안을 마련했다. 두 사람이 ‘납북 체험을 세계에 밝히기를 희망하고 국제무대에서 객관적으로 증언하기 위한 활동무대를 미국으로 택한 것’이라는 설명으로 한국 정부가 이적활동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잠시 귀국했다가 미국으로 망명할 경우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가 인도적 입장에서 국내 정착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가 취할 입장이었다.

같은 해 4월 초까지만 해도 정부는 두 사람이 심적 변화로 4월 10일을 전후해 한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미국으로 전달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미국에는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올 경우 박해가 없을 것임을 강조하고, 당사자들에게는 자유 의사를 존중해 적당한 기회에 미국으로 갈 수 있다고 보증할 것을 대책으로 삼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미국행을 택했다.

이들의 납북과 탈출기는 수기인‘김정일 왕국’, 자서전인 ‘최은희의 고백’ 등으로 대중에도 알려졌다. 부부는 1999년에야 한국에 영구 귀국했다. 신상옥 감독은 2006년, 최은희 배우는 2018년 각각 별세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