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없는 ‘악플 바이러스’] <1> 혐오와 욕설 판치는 난장판 
 5년간 판결문 1401건 전수조사, 실형 44명 중 40명이 허위 비방 
 유죄 10건 중 8건 벌금형 ‘솜방망이’… 허위 성적 모욕 거의 실형 
사이버 공간에 넘쳐나고 있는 악성 댓글(악플)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나 마찬가지다. 그 폐해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뾰족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류효진 기자

악성 댓글(악플)은 바이러스다. 악플의 전염력은 매우 강해서 사이버 공간을 뛰어넘어 현실 세계까지 감염시킨다. 여론을 왜곡하고, 피해자에겐 치유 불가능한 상흔을 남기며, 심지어는 소중한 생명을 빼앗기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보다 더 심각한 고통을 주고 있다는 악플 피해자들의 절규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좀처럼 종식되지 않는 게 악플이라는 전염병이다. 독버섯처럼 번지는 악플의 폐해가 이처럼 심각한데도, 이를 퇴치할 ‘백신’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급기야 ‘악플 차단’을 위해 인공지능(AI)의 힘까지 빌려야 하는 처지다. 국내 포털업계 1, 2위인 네이버와 다음은 현재 자사 뉴스 서비스에 달린 욕설 댓글을 가리거나, ‘차별ㆍ혐오’ 댓글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데 AI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악플을 사이트 운영진 인력만으론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는 방증이다. 특히 4ㆍ15 총선을 앞두고는 포털 차원에서 ‘악플과의 전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정치적 이슈의 경우, 진영 논리에 기대어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나 막말을 퍼붓는 사례가 워낙 많다는 현실을 고려한 조치다.

한국일보는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범람하는 악플의 실태와 법적 책임 문제를 되짚어 보고자 최근 5년간 확정 판결이 난 악플 관련 형사사건 판결문 1,401건을 한 달간 정밀 분석해 봤다. ‘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서비스에서 ‘정보통신망’ ‘명예 훼손’ ‘모욕’ 등의 키워드로 검색된 2015년 1월~2019년 12월 선고 사건 가운데, 사이버 악성 게시글 또는 악성 댓글 관련 1ㆍ2심 판결문을 전수 조사했다. 명예훼손 사건 중에선 ‘허위사실 적시’로 문제가 된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 봤으며, ‘법률심’(사실관계나 양형을 다투지 않고 법리 오류만을 따져 하급심 판결을 확정 또는 파기하는 재판)인 대법원 판결문은 제외했다. 아울러 악플을 몰아내기 위한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고, 악플에 시달리며 고통을 겪었던 피해자들의 증언도 직접 들어 봤다.

1심과 2심 재판 받은 피고인의 선고 결과. 그래픽 김대훈 기자
 ◇허위비방, 성적모욕 결합 땐 대부분 실형 

분석 대상 판결문에 드러난 악성 게시글 및 악플을 유형별(중복 집계)로 살펴보면, ‘허위 비방’이 800건으로 최다를 기록했다. ‘인격 모욕’이 496건으로 두 번째로 많았고 △욕설 277건 △성적 모욕 219건 △조롱 80건 △기타(공포심 유발, 악플 유도 등) 4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죄질이 좋지 않아 실형이 선고된 44명 중에서도 40명은 ‘허위 비방’ 글을 올렸다. 법적 처벌 가능성 및 처벌 수위가 가장 높은 악플은 ‘비방할 목적으로 거짓 사실을 올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눈에 띄는 건 ‘성적 모욕’ 악플로 실형이 선고된 25명 가운데 23명의 글이 ‘허위 비방’ 유형과도 중첩돼 있다는 점이다. 허위 사실로 성적 모욕을 가한 악플 게시자는 거의 예외 없이 감옥살이를 했다는 얘기다. 결별한 옛 연인(여성)과 그 쌍둥이 자매를 성매매 여성처럼 묘사한 글을 9차례에 걸쳐 ‘세월호 희생자 사이버 추모관’에 올린 남성이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게 대표적 사례다(서울중앙지법, 2015년 2월 선고).

2018년 11월 수원지법이 판결했던 사건은 더욱 충격적이다. 피고인 A(남성)씨는 대중 가수를 꿈꾸던 한 여성의 사진을 음란한 이미지와 합성한 뒤, 이를 성적 비하 표현 및 욕설이 가득한 글과 함께 무려 81회나 SNS에 게시했다. 재판부는 “초범이고, 범행을 자백하며 반성하고 있다”면서도 A씨에게 ‘징역 2년’이라는 철퇴를 가했다. 판결문은 악플의 폐해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비뚤어진 욕망을 추구하고자 이런 범행을 하는 건 사이버공간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유희의 도구로 사용하는, 지극히 왜곡된 성문화를 퍼뜨리는 행위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정보는 회수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피해자에게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상흔을 남겼다.”

문구상 표현이 점잖았더라도 ‘악성 게시글’로 사회적 혼란과 불편을 초래한 행위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우리 사회가 몸살을 앓던 2015년 6월, B씨는 특정 병원장을 비방하려는 의도로 인터넷에 “지금 병원에 (메르스 환자) 한 분이 있어요”라는 내용의 허위 글을 썼다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40시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을 맡았던 창원지법 통영지원은 “피해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 불안감 등 피해를 줄 수 있는 범행으로,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징역형을 선고한 이유를 설명했다.

악플 주요 유형. 그래픽 김대훈 기자
 ◇유죄 판결 10건 중 8건은 벌금형 

온라인 악성 게시글 및 댓글 게시자에겐 십중팔구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나 형법상 모욕죄가 적용됐다. 이번 분석 대상 사건 10건 중 7건은 검찰이 벌금형으로 약식기소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2심 판결문(150건)을 뺀 1심 사건 1,251건 가운데 923건(73.8%)은 검찰이 약식명령을 청구했지만, 이에 불복한 피고인의 신청 또는 ‘사안이 중대하다’거나 ‘유죄로 단정할 수 없다’고 본 법원의 직권 판단으로 정식 재판이 이뤄졌다. 약식명령이란 검찰의 벌금형 청구에 대해 법원이 피고인 출석 없이 서류 심사만으로 선고하는 절차로, 통상 피의자의 범죄가 중하지 않을 때 행해진다. 다시 말하면, 검찰은 악플 사건을 신체형(징역형)보다는 재산형(벌금형)으로 가볍게 처벌하면 된다고 판단했던 경우가 대다수라는 뜻이다. 게다가 약식명령으로 종결된 사건의 판결문은 검색되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검찰의 약식기소 처리 비율은 훨씬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식재판을 거쳤더라도 벌금형 비율은 높았다. 판결문 1,401건에 등장하는 피고인 1,450명 가운데 절반을 훌쩍 넘는 845명(58.3%)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 공소기각 판결이 215명(14.8%)으로 뒤를 이었는데, 피해자가 가해자(피고인)와 합의를 통해 재판 도중 고소를 취하하거나(모욕죄 사건), 처벌 불원 의사(명예훼손 사건)를 내비친 경우다. 10명 중 1명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반면, 벌금형보다 무거운 처벌로 인식되는 징역형(집행유예 포함)은 148명(10.2%)에 그쳤다. 이 중에서도 실형은 3분의 1 미만인 44명뿐이었다. 법적으론 유죄지만 △범행이 매우 경미한 수준 △초범 △자백 및 반성, 피해자에 사과 △범행 동기ㆍ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유 존재 등의 조건을 두루 충족할 때 내려지는 선고유예도 89명이었다. 유죄 판결(벌금형, 징역형, 선고유예)을 받은 피고인(1,082명)만 기준으로 할 때, 벌금형 비율은 78.1%로 껑충 뛴다. 인터넷 악성 게시글 및 댓글의 적정 처벌 수위에 대한 법원의 인식도 검찰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처벌이 약할 뿐 아니라, 그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벌금 액수를 기준으로 보면 ‘10만원 이상~100만원 미만의 벌금’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299명, ‘100만원 이상~300만원 미만 벌금’은 393명이었다. 벌금형 전체 인원(845명)의 81.9%가 300만원에 못 미치는 벌금을 납부하는 것만으로 악플의 대가를 치른 셈이다. ‘300만원 이상~500만원 미만’과 ‘500만원 이상’은 각각 93명과 60명에 머물렀다. 정통망법상 명예훼손죄는 사실 적시의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허위 사실을 적시했을 땐 ‘7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고 규정돼 있지만, 최대 벌금 액수는 고작 800만원이었다. “범죄 예방 및 근절 효과를 거두기엔 처벌 강도가 턱없이 낮다” “검찰도 법원도 악플 피해에 둔감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1심 법원의 정식재판 개시 경위. 그래픽 김대훈 기자
 ◇처벌 강화가 해법?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도 

물론 벌금형이 많다고 해서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처벌 강화를 내세우면 전과자를 양산할 수 있는 데다, 결국엔 공론장 기능을 수행하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죄질이 나쁜 ‘악플러’에게 징역형이 선고되는 사례도 적지만은 않다. 예컨대 서울서부지법은 2015년 10월 경쟁업체의 뷔페 식당에 대해 “지인 돌잔치라 갔는데 음식 너무 별로다” “정말 비추” “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하다” 등의 허위 비방 글을 58차례나 인터넷에 게시한 C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바 있다.

처벌수위가 낮아 보이는 이면엔 현행법의 한계도 있다. 명예훼손죄와는 달리, 모욕죄의 법정 형량은 고작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정해져 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이전인 1995년 법이 개정된 탓에, 공연성과 전파 가능성이 무한대나 마찬가지인 온라인 게시물의 특성이 법 조항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실 적시만 없다면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표현을 가득 담은 ‘모욕적 악플’을 게시해도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2018년 1월 서울동부지법 판결이 그런 사례다. D씨는 헤어진 연인에 앙심을 품고 “저 진짜 저격 너무 하기 싫은데 한번만 할게요”라면서 피해자의 실명과 학교, 학번 등을 담은 인격모욕 게시글을 3차례에 걸쳐 인터넷에 올렸다. 재판부는 “인터넷 게시판 모욕 행위는 전파력이 매우 커 피해가 심각하고, 때로는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피고인도 이런 효과를 노리고 범행을 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D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더 중한 죄로 고소할 수 있었는데도 모욕죄로만 고소한 점을 참작해 불법에 상응하는 금액 범위 내에서 법정 최고금액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법이 허락만 했다면 ‘벌금 200만원’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아 마땅한 범죄였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인간성 파괴’라는 결과를 낳는 악플의 가장 무서운 속성 중 하나는 바로 ‘확대재생산’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선플(착한 댓글) 운동’을 펼치고 있는 윤상용 푸른시대교육연구소 대표는 “보통 악플은 혼자 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 시작하면 아무런 검증도 없이 수천건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며 “피해자는 이를 지켜 보면서 인격 자체가 소멸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익명성과 군중 심리가 악플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데이터분석 박서영 solu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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