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은 ‘성 착취’ 악의 연결 고리를 끊지 못해 발생한 예견된 참사였다. 악행은 끊이지 않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미약했고 제대로 된 인식의 전환, 제도의 개선도 이어지지 않았다. 사진은 ‘빨간 마후라’부터 ‘n번방’ 사태까지 이어진 사건을 발생 순서대로 정리해 연결한 모습.

참사는 징후 없이 닥치지 않는다. ‘n번방’이라는 참사도 그랬다. 텔레그램 이전에 손정우의 ‘웰컴투비디오’와 정준영의 ‘단톡방’이 있었고, 그 이전엔 양진호의 ‘웹하드 카르텔’이, 그보다 더 전엔 100만 명의 회원을 거느렸던 ‘소라넷’이 있었다. 뿌리를 찾아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대 여성 연예인들의 ‘성관계 비디오’ 유출 사건을 거쳐 1997년 ‘빨간 마후라’ 사건에 닿는다. 그래서 ‘n번방’은 ‘n번째’ 참사다. 알지 못하는 곳에서 얼마나 무수하게 반복됐는지 가늠할 수 없는, ‘n번’은 그야말로 미지의 숫자다.

디지털 성범죄는 21세기형 범죄가 아니다. 제때 ‘발견’되지 않았을 뿐 비디오 산업이 팽창하고 막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던 1990년대에도 디지털 성범죄는 존재했다. 당시엔 이것이 범죄가 아닌 ‘OOO 비디오’로 불렸을 뿐이다.

각각 사건들은 서로 연결돼 있다. 매번 ‘새롭다’고 여겨지지만 껍데기만 조금씩 진화했을 뿐 ‘성 착취’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사건들이 ‘계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파악해야 제대로 뿌리 뽑을 수 있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은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ᆞ김주희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와 함께 23년에 걸친 ‘성착취’ 오욕의 역사를 되짚었다.

1997년 7월 MBC 뉴스 ‘빨간 마후라 사건’ 보도 중 한 장면. 당시 보도는 10대들의 일탈 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을 뿐 성범죄 피해자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10대 성관계 촬영한 97년 ‘빨간 마후라 사건’, 피해자는 어떻게 지워졌나 

1997년 7월 11일 MBC 뉴스는 ‘10대가 직접 출연해서 만든 음란 비디오가 서울 시내 중고등학교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비디오엔 14세 여중생 A양과 17세 남고생 2명이 실제 성관계를 나누는 장면이 담겼는데, A양이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빨간 마후라’ 사건으로 알려졌다. 해당 비디오는 남학생들이 일방적으로 촬영하고 여학생의 동의 없이 유포했지만 잇따른 언론 보도 속에서 여중생은 단 한 번도 ‘피해자’로 호명되지 않았다.

1997년 당시 ‘빨간 마후라’ 사건을 보도한 언론의 헤드라인. ‘불법 촬영물’을 ‘음란물’이라고 표현했으며 피해자를 ‘포르노의 주인공’으로 일컬었다. 당시 피해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엔 촬영을 거부했으며, (가해자들이 촬영본을) 버린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한국성폭력상담소 면담을 통해 A양이 가출청소년이었으며 비디오 촬영 이전에 4명의 남성들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러나 남학생과 여학생 모두 똑같이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받았다. 음란한 영상을 ‘함께 제작했다’는 이유였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제대로 구분되지 않았다. “여성 청소년이 성적으로 착취당한 사건이 한낱 ‘10대들의 문란한 행위’ 정도로 축소된 거였죠. 다들 ‘10대의 믿을 수 없는 일탈적 행동을 어떻게 단속할 것인가’에만 열을 올렸어요.”(김주희, 이하 ‘김’)

당시 언론은 너도나도 피해자에 대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자극적으로 보도하기 바빴다. 기사의 요지는 대체로 ‘10대들이 너무 일찍 성(性)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의 검거현장에 동행했던 방송 카메라에 여학생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바람에 피해자의 일상은 완전히 파괴됐다. 이때 급물살을 타면서 제정된 ‘청소년보호법’은 오직 ‘청소년들이 음란물을 보는 행위 자체’만을 금지했다.

방송 보도 이후 피해자 A양이 등장하는 비디오는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뉴스로 알려지기 전엔 가해 남학생들이 다니는 인근 고교에서 알음알음 전파되던 수준이었는데 갑자기 전국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한 거죠. 아마 취재 과정에서 샜거나, 수사 기관에서 흘러나갔을 겁니다.”(권김) 청계천 불법 비디오 암시장에서 ‘빨간 마후라’ 비디오는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앞에서는 혀를 끌끌 차면서 뒤에선 이 비디오를 구하겠다고 모두가 혈안이 돼 있던 거죠. 영상을 보겠다고 달려든 ‘성인 남성’들은 끝내 가해자로 불려 나오지 않았습니다.” (권김) 이들은 ‘n번방에 입장한 관전자들’의 원형이었다.

심지어 한 지방 국립대학에서는 ‘검열에 저항하고 표현의 자유를 표방한다’는 명목으로 이 ‘빨간 마후라’ 비디오를 축제에서 공개 상영하기도 했다. “비디오에 등장하는 여학생을 ‘피해자’로 인식했다면, 그게 가능했을까요?”(권김) ‘빨간 마후라 비디오’를 기점으로 ‘불법 촬영’ 비디오는 본격적인 유행이 됐다. 이때부터 개인 간의 성관계 영상을 직접 촬영한 다른 비디오들이 용산 전자상가와 종로 세운 상가 일대에서 거래되기 시작한다.

2000년대 들어 많은 여성 연예인의 성관계 영상이 유출돼 ‘OOO’비디오로 불렸다. 이들은 모두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였지만, 사죄하며 그들 자신의 일터를 떠나야만 했다.
 ◇피해자의 이름을 따서 불린 2000년대 ‘OOO 비디오’ 

가정용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9년엔 여성 방송인 B씨가 자신의 전 연인과 성관계하는 장면이 동영상 파일로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X양 비디오’로 알려진 이 영상은 인터넷 가입인구를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이후에도 인기 가수 C씨, 탤런드 D씨 등 비슷한 이슈가 계속해서 터졌는데 그럴 때마다 인터넷 가입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어요. 사실상 초기 인터넷 시장은 ‘여성의 몸’이라는 물적 토대 위에서 급속도로 팽창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권김)

당시 B씨는 비디오를 입수한 가해자로부터 ‘당장 1억원을 보내지 않으면 비디오를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당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불법 촬영물’이라는 개념 이전에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graphy)’라는 단어조차 생기기 전이었다. 비디오는 피해자의 이름을 따서 ‘OOO 비디오’라 불렸다. ‘명명’ 자체가 2차 가해였던 셈이다.

언론의 선정적 보도행태는 ‘빨간 마후라’ 사건 이후 더 극심해졌다. 청계천이나 세운 상가 일대에 ‘실제 성관계 비디오’가 나도는 현상을 ‘신드롬’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연예 매체들은 앞다투어 선정적인 중계에 뛰어들었다. 급기야 피해자인 B씨의 실명을 1면에 보도하는 신문도 등장했다. B씨는 결국 연예계를 떠났다. 바로 이듬해인 2000년에는 가수 C씨가 그의 전 연인이었던 프로듀서와의 성관계 영상이 찍힌 비디오가 유출되면서 마찬가지로 가요계를 떠났다.

“그런데 배우 B씨의 전 남자친구는 이 ‘불법 촬영’ 영상으로 인지도를 얻어 모델로 데뷔까지 합니다. 남성은 영웅이 되고, 피해여성은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구도가 참 익숙하죠.” (김) 배우 B씨는 10년, 가수 C씨는 3년 동안의 공백기를 가진 다음에야 그들 자신의 일터로 돌아올 수 있었다.

90년대 후반, 불법비디오들은 개당 ‘3만원’에 거래되곤 했다.
 ◇2000년대에 다시 등장한 “빨간 마후라’ 사건의 피해자 

경찰이 미성년자 매춘행위에 대한 일제 기획 수사를 벌인 2000년 ‘빨간 마후라’사건의 피해자 A양이 서울 강남의 한 성매매업소에서 발견되면서 ‘그가 결국 성매매 여성이 됐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최영애(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소장은 “A양의 근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고 동정하는 언론 보도의 이면엔 ‘가십거리 찾기’식 선정주의가 엿보인다”며 “그를 돕는 게 아니라 또 한 번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공개 지적했지만 이러한 여성계의 비판은 거의 묵살됐다.

“피해자의 ‘잊혀질 권리’ 같은 건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거죠. 언론은 이를 ‘몸이 더럽혀진 여자의 처절한 말로’처럼 신파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명백히 여성 혐오적인 서사였죠.”(권김)

‘빨간 마후라’ 사건은 급기야 90년대 문화의 ‘상징’이 된다.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빨간 마후라 사건을 모티프로 차용해 논란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은 끈질기게 잊혀지지 않고 90년대의 시대적 정서를 상징하는 일종의 문화적 ‘코드(code)’로 소비됐다. 2005년 방송인 노홍철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97년 빨간 마후라 사건 당시 이 비디오를 직접 복제해서 유통하면서 쏠쏠하게 돈벌이를 했다”고 밝혀 논란이 됐으며 2006년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감독 이하)에서는 주인공인 ‘여교수’가 과거 빨간 마후라 비디오의 주인공이었다는 설정으로 각색되기도 했다. 사건으로부터 15년이 흐른 시점인 2012년 가수 싸이의 노래 ‘77학 개론’의 가사에서도 ‘빨간 마후라’ 사건이 90년대를 회상하는 의미로 언급된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남자들이 나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피해자의 삶은 무너져 내리는 거거든요. 미래를 설계할 가능성 자체를 박탈당하는 거예요. 이 ‘빨간 마후라’ 사건의 피해자 A양의 피해 서사가 현재 ‘n번방’ 사건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제때 ‘폭력’을 폭력이라 제대로 규정하지 못한 결과가 더 큰 해일이 되어 돌아왔다고도 볼 수 있겠죠.”(김)

‘불법촬영’ 비디오의 대유행 속에서 등장한 ‘소라넷’은 무려 17년간 건재했다.
 ◇수사기관 방치 속에 17년 건재했던 100만명의 ‘소라넷’ 

1999년 등장해 2016년 완전히 폐쇄되기까지 약 17년간 한국 인터넷 역사에 검은 한 획을 그은 ‘소라넷’은 ‘성매매 후기 사이트’로 첫발을 뗐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유흥업소 창업을 지원하는 대출상품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일명 ‘룸싸롱’이라고 불리는 공장식 성매매업소도 본격적으로 만들어지죠. 이때 등장한 게 바로 소라넷인데, 여기의 성매매 후기는 단순히 ‘어디를 다녀왔다’ 수준이 아니었어요. 업소 여성들을 일종의 ‘캐릭터’로 등장시켜 품평하고, 이들과 가졌던 성관계의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등 일종의 ‘야설’로 발전시킨 형태였죠”(김)

초창기엔 ‘성매매 후기 사이트’였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불법촬영물이 유포되는 장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며 소라넷은 ‘불법 촬영물’이 대규모로 업로드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게 된다.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고 몰래 찍은 성관계 영상을 이르는 ‘국산 야동’이라는 신조어도 여기서 등장했다. 초창기 피해자는 주로 성매매 업소 여성들이었지만 지인이나 여자친구 등 일반인도 그 대상이 됐다. 나중에는 실시간으로 성범죄를 모의하고 의식이 없는 여성을 성폭행하는 등의 ‘스너프 필름’(snuff film)도 공유됐다.

“소라넷은 ‘여성 혐오’ 정서를 가진 한국 남성을 온라인에서 대규모로 집단화 한 최초의 장이었습니다. 그들은 여기서 ‘여성을 정복한다’는 폭력의 서사를 공유했는데, 이 계보는 소라넷 폐쇄 이후 ‘일베’로 그대로 옮겨갑니다.”(권김) 소라넷의 회원 수는 10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라넷은 2006년도 국내에서 처음으로 유해사이트로 지정됐다. 총 70명에 달했다고 알려진 운영진 집단은 서버를 들고 해외를 떠돌며 하루에도 두 번씩 사이트 주소를 옮기며 소라넷을 지켰다. 수사 기관은 10년 동안 ‘서버가 해외에 있어 잡지 못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동안 범죄자들은 ‘서버를 해외에만 두면 우린 완전히 안전하구나. 여기까지 따라올 의지는 없구나’라는 걸 몸으로 학습한 거예요.” (권김)

2016년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진행된 소라넷 등 불법 음란 사이트 수사 결과 발표 모습. 뉴시스

실제로 3명의 공동운영자 중 처벌받은 이는 2016년 검거된 운영자 송모(47)씨 1명뿐. 소라넷은 성매매ᆞ불법도박 광고의 집결지였지만 범죄 수익 추징금은 0원이었다. 이곳에서 성범죄를 모의하고 불법 촬영물을 돌려본 100만 명의 회원들은 이번에도 ‘가해자’로 불려 나오지 않았다.

‘소라넷’은 2016년 폐쇄됐지만, 그 계보는 끊어지지 않고 ‘웹하드 카르텔’이 이었다.
 ◇’시늉에 그치는 처벌’로 성범죄자 조기 교육하는 ‘불법 촬영 공화국’ 

‘성 착취 산업’이 망한 적 없었던 것은 변함없이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라넷에서 몸집을 불린 ‘불법 촬영물 시장’은 소라넷이 폐쇄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의 성산업 규모가 8.7조원이거든요? 영화 산업보다 큽니다. 경제 활동이 가능한 남성 17세~64세 인구가 1년에 60만원씩 써야 8.7조원이 돼요. 이 산업 안에서 ‘돈을 쓰겠다’는 수요층이 탄탄하니 공급자는 모습만 바꿔가며 계속 등장하는 겁니다” (김)

소라넷의 뒤를 이어서는 ‘웹하드 카르텔’이 등장했다. 2018년 10월 웹하드 업계 매출 1위인 ‘위디스크’와 3위 ‘파일노리’를 동시에 운영하던 양진호 대표가 전직 직원들을 폭행한 혐의로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웹하드 업계는 주로 단순 ‘음란물’이라고 부를 수 없는 각종 불법 촬영물, 성범죄 영상을 조직적으로 유통해 돈을 벌었다. ‘소라넷’이 사라진 이후 갈 곳을 잃었던 콘텐츠가 고스란히 이곳으로 자릴 옮겼다.

2018년 11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경기 수원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압송되고 있다. 양씨는 국내 1위 웹하드 업체 실소유주로, 음란물 유통 금지 규정을 위반한 혐의, 불법 촬영 등 총 9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뉴스1

이들은 불법자료를 거르는 필터링 업체와 피해자에게 돈을 받고 영상을 삭제해주는 디지털 장의업체까지 함께 차려 ‘카르텔’ 구조를 구축하기도 했다. 영상을 걸러주거나 지워주는 척 돈을 받고 다시 유포하면서 또 돈을 버는 ‘3중 수익구조’를 갖춘 것이었다.

지난해 10월엔 미국, 영국 등 32개국이 공조 수사해 검거한 아동ᆞ청소년 성 착취물유포 사이트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가 한국인 손정우(24)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손씨는 초범이라는 이유로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가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법원은 ‘나이가 어리고, 갓 결혼한 가장’이라는 점을 참작했다. 미국에서는 법정최고형이 30년이다. 손정우는 다음 달 출소를 앞두고 있다.

그간 ‘시늉에만 그치는 처벌’은 성범죄로 돈을 버는 시장의 성장 토대가 됐다. ‘조심만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기 교육해 성범죄자들을 길러냈다. “수억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는데 고작 1년 3개월? ‘살고 나오지 뭐’가 되는 거예요. 사법부가 찍은 실패의 정점이죠. 손씨의 범죄를 통해 수많은 ‘n번방’을 만든 이들은 ‘아동 청소년 성 착취물에 대한 수요가 상당히 크구나’라는 걸 인식했을 겁니다.”(권김)

2019년 3월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 촬영 유포한 혐의로 구속된 가수 정준영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준영 거쳐 ’n번방’까지, 이젠 이 유구한 실패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때 

불법 촬영물을 촬영하고 유포한 자뿐 아니라 소지한 자도 처벌해달라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나왔지만 매번 유야무야 사라졌다. 2018년 유튜버 양예원의 스튜디오 불법 촬영 폭로 사건이나 2019년 배우 정준영의 ‘단체 카카오톡방’ 사건 때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지금껏 이곳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세상’이었다.

2019년 상반기 소위 ‘장학썬’ 사건(장자연 사건 재조사, 김학의 전 차관 별장 성접대, 버닝썬 사건을 일컬어 이름) 당시 관련자들은 모두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권김현영 활동가는 ‘사법부의 총체적 실패’라고 표현했다.

“’빨간 마후라’, 연예인 비디오 파문, 소라넷, 웹하드, 김학의, 장자연, 버닝썬까지… 제때 매듭짓지 않아 꼬인 결과가 이렇게 당도한 겁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그다음이 뭘까,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해요. 이번엔 반드시 마지막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김)

숱한 실패의 결과는 꾸준히 퇴적돼 ‘n번방’이라는 산을 이뤘다. ‘예견된 범죄’라는 씁쓸한 수식어가 등장했다. 2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가해자를 공개하고 엄벌하라’라며 뜻을 보탰다. 더 이상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수십년에 걸친 성착취 ‘악의 연대기’, 바로 지금 폭력의 사슬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영원히 실패할지도 모른다.

곳곳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n번방에 입장한 전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라’는 주장에 지지가 잇따랐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판사가 n번방 재판을 맡지 못하도록 하라’는 청원에도 40만이 넘는 시민의 뜻이 모였고 재판부는 교체됐다.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해요. 이제부턴 ‘설사 피해자가 되었다 한들, 미래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네가 했던 성적 일탈 행동들을 주변인들에게 알리겠다’는 말이 협박이 될 수 없어야 해요. 피해자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어요. 설령 알려진다 하더라도 ‘그게 뭐?’ 그 행동들이 네가 폭력을 당해도 되는 자격을 부여하지는 않는다고요.”(김)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문소연, 이동진 인턴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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