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소읍탐방]<58>함양 마천면 
함양 마천면 도마마을과 다랑이논은 맞은편 산자락의 금대암 가는 길에서 잘 보인다. 마천면의 산마을은 ‘사회적 거리두기’ 구조다. 대부분 마을이 엄천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마주 보며 서로에게 풍경이 된다. 함양=최흥수 기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세계로 확산된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는 생활의 지혜가 아닌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상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던가.

뭉쳐서 힘이 되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꽃나무도 군락을 이룰수록 화려하다. 매화 꽃잎 떨어지고 산수유 색깔 바래니 이제 벚꽃 차례인데, 올해는 화사한 꽃송이가 더 원망스럽다. “사월에 피는 꽃도 있고, 오월에 피는 꽃도 있다. 인생은 먼 길이다.” 함양 마천면의 지리산 산골마을 어느 카페에 걸린 글귀가 힘겨운 봄을 넘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위안을 건네는 듯하다. 그렇다. 꽃은 여름에도 피고, 내년에도 피어나리니.

 ◇무심한 듯 마주보는 지리산의 마을 

지리산은 한라산을 제외하면 남한에서 가장 높다. 산이 높은 만큼 품도 넓다. 천왕봉(1,915m)에서 이어진 산줄기가 전라남ㆍ북도와 경상남도 5개 시군(구례ㆍ남원ㆍ산청ㆍ하동ㆍ함양)에 걸쳐 있다. 지리산 서남쪽 능선이 비교적 완만한데 비해 동북쪽 함양 마천면은 상대적으로 산세가 험하다. 남원 운봉에서 산청으로 흐르는 엄천강(임천)을 사이에 두고 깊고 가파른 골짜기가 형성돼 있다.

그리고 그 강을 사이에 두고 마을과 마을이 마주 보고 있다. 서로가 그리운 풍경이 되는, 무심한 듯 한 발짝 떨어져 늘 지켜보는 마을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가 아니라도 자연스럽게 확보된 물리적 거리다. 싱그러운 대숲에 둘러싸인 마을 뒷산에는 제멋대로 자라난 산벚나무가 하늘거리고, 비탈과 강가에는 연둣빛이 곱다.

도마마을 앞의 계단식 논밭 축대. 가까이서 보면 웬만한 석성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금대암 가는 길에서 본 도마마을과 다랑이논.
금대암 가는 길 산중턱에 살구꽃이 곱게 피었다. 맞은편에 도마마을 다랑이논이 보인다.
금대암 가는 길에 보이는 지리산 풍경. 백무동과 한신계곡 방향이다.

남원 산내면에서 함양 마천면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자그마한 물레방아 공원이 반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안의현감으로 재직할 당시 물레방아를 제작ㆍ보급한 것을 계기로 함양은 물레방아의 고장임을 자랑한다.

돌지 않는 물레방아보다 눈길을 끄는 건 하천 건너편 도마마을의 다랑이논이다. 곡식이 누렇게 익는 가을날에 산 위에서 보는 모습이 농촌마을의 향수를 자아내는 곳이다.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되기 전이라 지금은 들판보다 돌로 쌓은 축대가 돋보인다. 산비탈의 크고 작은 돌로 쌓은 석축은 경사도에 비례해 높아진다. 아래에서 보면 거대한 석성이 층층이 연결된 모습이다. 맞물린 돌덩이 하나하나는 손바닥만한 농지를 한 뙈기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노동의 땀방울이다.

물레방아 공원 옆에 금대암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다.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시멘트 포장 도로를 따라 조금만 오르면 도마마을과 다랑이논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길섶에 차량 2대 정도 댈 공간이 있고 ‘다랑이논 포토 포인트’ 팻말이 세워져 있다. 바로 앞 비탈밭에는 연분홍 살구꽃이 곱게 피었는데, 길에도 마을에도 사람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가 목탁처럼 산중의 정적을 깨트린다.

마천면 금계마을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풍경. 엄천강 주변과 논밭에 초록빛이 오르고 있다.
금계마을에서 맞은편으로 보이는 의중마을 풍경. 대숲에 포근히 안겨 있는 듯하다.
마천면 의중마을의 대나무 숲. 명품 숯을 굽던 동네였다는데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의중마을의 ‘삼굿터’. 껍질을 벗기기 위해 닥나무를 찌던 시설로 지금은 방치돼 있다.

물레방아 공원에서 강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마천면 소재지와 금계마을로 이어진다. ‘황금색 깃털을 가진 새(金鷄)’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바뀌기 전 금계마을은 ‘노디목’이라 불렸다. ‘노디’는 징검다리의 사투리다. 강 건너 칠선계곡에 자리한 추성ㆍ의중ㆍ의탄ㆍ의평마을 사람들이 징검다리를 건너 왔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산골 주민의 발길로 닳았을 징검다리가 흔적 없이 사라진 자리에 지금은 의탄교와 지리산제1교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지리산둘레길 함양안내소에서 좁은 골목을 거슬러 마을 꼭대기에 닿으면 맞은편 의중마을과 엄천강 물줄기가 봄날의 동화처럼 눈부시다. 강물이 휘감아 도는 모퉁이의 논밭과 물가 버들가지에 연둣빛이 번진다.

금계마을 맞은편 의중마을은 지리산둘레길 금계~동강 구간의 첫 마을이다. 일대에서 생산하는 숯은 고려시대부터 지역 특산물이었다고 전해진다. 의중마을은 그중에서도 가운데 마을이라는 의미다. 이제 숯가마의 흔적은 찾을 길 없고, 한지 재료인 닥나무를 찌던 시설이 마을 어귀에 ‘삼굿터’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이마저도 1990년에 마지막으로 사용했다니 시절은 또 그렇게 변화하고 흘러가는 모양이다. 의중마을엔 600년 묵은 당산목인 느티나무와 대숲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조붓한 동네 길을 걸으면 오래된 마을 특유의 푸근함이 느껴진다.

금계마을에서 산등성이를 넘으면 창원마을이다. 창고가 있어서 ‘창말’이었다가 이웃 원정마을과 합쳐 창원마을이 됐다. 곳간이 있을 정도로 넉넉한 마을이라는 의미겠지만 농사지을 땅은 옹색하다. 마을 길을 걷는 것 자체가 등산과 다름없으니 집 짓는 것도 쉽지 않은 지형이다.

다랑이논처럼 층층이 구분된 골목마다 투박한 돌담이 정겹다. 그 담장 너머로 집집마다 호두나무와 감나무가 서너 그루씩 심겨져 있다. 알이 잘지만 달고 씨가 없는 고종시는 마을의 자랑이다. 창고가 있었다면 곡식보다는 곶감과 호두를 저장하는 곳간이었을 듯하다. 감 잎에 고운 단풍이 드는 가을이면 더욱 예쁠 것 같다.

마을 중턱에 ‘안녕’이라는 작은 카페가 있다. 코로나로 힘들고 지친 모든 이에게 안부를 묻는 것 같아 반갑다. 창원마을은 지리산둘레길 인월~금계 구간이 지나는 길목이다. 남원 산내면 상황마을에서 등구재(650m)를 넘어 첫 마을이니, ‘안녕’이라는 인사는 힘들게 산길을 넘어온 둘레길 여행자에게 잠시 쉬어가라고 건네는 인사다.

지리산둘레길 인월~금계 구간의 창원마을 골목과 주택은 대부분 돌담으로 둘러져 있다.
창원마을 어느 집 마당에 앵두 꽃이 앙증맞게 피었다. 굵은 기둥은 호두나무다.
창원마을 카페 ‘안녕’ 대문에 놓인 글귀. 꽃은 여름에도 피고 내년에도 필 것이다.
창원마을 중턱의 카페 ‘안녕’. 지리산둘레길 등구재를 넘어 온 여행객이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창원마을 카페 ‘안녕’의 딸기케이크. 메뉴 판에 이웃마을에서 공수한 딸기로 만들었다고 쓰여 있다.

카페 주인장 기보름씨는 이 마을 민박집 아들과 결혼한 후 직장 생활을 접고 내려와 터를 잡았다. 지리산에 대한 환상은 없었지만, 둘레길 걷기와 민박집은 꼭 맘에 들었다고 말했다.

봄볕이 따스하게 비치는 카페 내부에 글 쓰는 남편이 결혼기념일마다 아내에게 헌정한 시 여섯 편이 장식돼 있다. 지극히 사적인 고백이지만 누구라도 공감할 세월의 흐름이 읽힌다. ‘시간은 마침내 우리 것이 아니야, 얼마 전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난, 어느 우주선처럼, 우리가 쏘아 올린 시절도 이제, 서서히 잊혀지겠지.’ 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에 쓴 시의 일부다. ‘하늘도 예쁘고 길도 예쁜 날에 너는 오죽할까.’ 유리창에 쓴 문구에도 미소가 번진다. 가을날 아버지와 아들이 산에서 딴 야생 오미자로 만든 차와 이웃 마을 딸기밭에서 공수해 온 재료로 만든 딸기케이크가 카페의 주요 메뉴다.

 ◇엄천강 드라이브…용유담과 마적도사 전설 

마천면 소재지에서 엄천강과 나란히 이어지는 지방도는 한적하게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화려한 봄꽃 군락이 없어 수수한 편이지만, 억지로 다듬은 흔적이 적어 산자락마다 자연 그대로의 멋스러움이 흩뿌려져 있다.

금계마을에서 조금 내려오면 엄천강에서 절경으로 꼽히는 용유담이다. 물살이 꺾이고 유속이 느려지면서 형성된 길다란 물웅덩이다. 산과 마을 풍경이 잔잔하게 수면에 비치는데, 주변의 바위는 완전히 닳지 않아 제법 거칠다.

엄천강에서 절경으로 꼽히는 용유담. 지역에서는 이름난 피서지이기도 하다.
용유담과 모전마을. 엄천강 급류가 한 번 쉬어 가는 지점이다.
용유담 인근 산자락에 산벚나무가 한 그루가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

용유담 주변에는 마적도사 전설이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널려 있다. 도사가 종이에 도장을 찍어 나귀에 실어 보내면 나귀는 어디론가 가서 생필품을 싣고 온다. 도사가 다시 쇠막대기로 다리를 놓으면 짐을 가득 실은 나귀가 하천을 건너오곤 했다. 하루는 도사가 나귀를 보내 놓고 장기를 두는데, 때마침 용유담의 아홉 마리 용이 싸움을 시작했다. 그 소란에 도사는 나귀가 도착한 줄 몰랐고, 하천을 건너지 못한 나귀는 결국 지쳐서 죽고 말았다. 자신의 실수에 화가 난 도사는 장기판을 부수었고, 그 조각이 흩어져 나귀바위와 장기바위가 됐다는 얘기다.

전설의 흔적은 산중까지 퍼져 있다. 용유담 위쪽 산기슭에 마적사라는 사찰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절터에 정체 모를 석재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단군신화와 민속신앙이 혼재된 글귀가 새겨져 있다. 다 스러져 가는 민가 주변에 ‘도사 배나무’ ‘도사 우물’ ‘장기판 바위’ 팻말도 보인다. 마적도사 전설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무산된 듯하다.

용유담 위쪽 산중에 민가가 한 채 있고 주변에 마적도사 전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용유담 위쪽 산중의 옛 마적사 터에 ‘도사배나무’ ‘장기판 바위’ 등 전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옛 마적사 터 초입의 세진대. 벼랑 끝 바위에 멋들어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세진대 바위 위에 우뚝 선 소나무 한 그루. 아래서부터 굵은 가지를 뻗어 안정감 있고 늠름하다.

부질없는 욕망을 비웃듯 절터 초입에 400년 된 소나무 한 그루가 꼿꼿하게 서 있다. 수형이 멋들어진 건 물론이고, 벼랑에 걸린 널따란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더욱 늠름해 보인다. 몸과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는 곳이라는 뜻으로 바위에는 ‘세진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는 길은 용유담 하류 송전마을에서 연결된다. 차 한 대 겨우 다닐 정도로 좁고 가파른 시멘트 포장도로이니 운전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함양=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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