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언박싱 <2> “밥 한 끼 먹자”는 기성세대의 빈말… 우리의 거짓말은 “예뻐졌네”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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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언박싱 <2> “밥 한 끼 먹자”는 기성세대의 빈말… 우리의 거짓말은 “예뻐졌네” “#행복해요”

입력
2020.04.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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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은 만우절입니다. 1년 중 재미로나 장난으로나 거짓말을 주고받는 것이 용인되는 유일한 날이죠. ‘거짓말은 나쁘다’는 말을 부인할 순 없겠지만, 팍팍한 세상사, 하루 정도는 서로 가볍게 속고 속이며 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요. 남을 속이는 말이나 행위도 때로는 일상에서 작은 재미를 선사해주니까요. 물론 소방서나 경찰서에 장난전화 하는 짓은 절대 해선 안 되겠죠.

거짓말을 해부하기 전에 주목할 게 있습니다. 거짓말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데, 거짓말의 종류와 허용 가능한 범위에 대한 관념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기성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거짓말에 대해 갖는 생각도 당연히 다릅니다. 밀레니얼은 거짓말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소비해 왔을까요. 밀레니얼이 바라본 2020년 대한민국의 ‘거짓말 세태’에 대해 언박싱 해봅니다.

Figure 1[저작권 한국일보] 신동준 기자

◇기성세대의 일상적 거짓말 “밥 한끼 먹자”

숭례문 너굴맨(너굴) = 2주 전쯤이었나. 어떤 선배가 밥 사준다고 했는데 감감무소식이야. 잊어버린 것 같은데. 이게 정말 약속인지 그냥 한 말인지 모르겠어.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나.

기타 치는 프레디 머큐리(기프) = 당연히 있지. 사회생활 하다 보니 정말 자주 듣게 되는 말이야. 정말 밥 먹자는 소린지 판단하기 어렵더라고. 그래서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라고 했던 송강호 대사가 문득 떠올랐어. 그 대사처럼 밥 먹었는지 묻는 건 안부인사 같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엔 안부의 척도가 ‘밥’이라서 그랬다는 거잖아. 그런데 이제는 먹는 게 가장 중요한 시대는 아니니까, 그 말의 진정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어.

분노조절 잘해(분조잘) = 밀레니얼 세대에겐 밥 먹는 건 친목이나 안부보다는 혼자 해도 되는 행위쯤으로 인식돼 있잖아. ‘혼밥’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니까.

부어 먹는 깡소주(부어깡) = 맞아. 기성세대의 밥 먹자는 이야기는 인사치레 성격이 강한데, 요즘 세대는 휴대폰 꺼내서 바로 약속을 잡는 경우가 많지.  

연어는 차갑게(연어) = 아침 방송에서 외국인 패널들이 출연해서 말하잖아. 미국은 직설적인 표현을 많이 쓰다 보니 이런 오해가 없는데, 우리나라에선 말뿐만 아니라 문화와 맥락을 파악해야 하니까 거짓말인지 진심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고. 우리 말은 돌려서 말하는 건 기본이고 모호하고 함축적인 표현도 많잖아. 시대가 변했으니, 이제는 표현도 시원시원하게 바꿔야 할 것 같아.

 매우 매운 마라탕(매마) = 밥 먹자는 말은 결국 거짓말이라기보다는 마무리 인사로 굳어진 것 같아. 안부인사 표현방식이 바뀐 것 같다는 거지. 요즘 더 어린 친구들은 ‘페메해(페이스북 메시지 해)’를 안부 인사로 쓴다고 하더라.

분조잘 = 나도 그럴 때가 있어. 거리에서 우연히 친구 만나면 ‘카톡해’라면서 헤어지는데, 정작 그 친구랑 카톡을 해본 적은 별로 없거든. 이런 점에선 기성세대가 밥 한번 먹자고 말해놓고는 까먹었다고 해서 너무 섭섭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해시태그)행복스타그램, 밀레니얼의 일상적 거짓말

 부어깡 = 그렇다면 밀레니얼은 어떤 거짓말을 할까. 내가 보기엔 스스로를 과대포장 하는 게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령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부터 시작해서 스토리까지 말이야. 작은 화면 속에서 어떻게든 ‘나’를 돋보이게 표현하고 과시하고 싶어하잖아. 현실은 힘든데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져.

연어 = 명품을 사지도 않았는데 SNS에 올리려고 빌려서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잖아. 남들한테 보여주기 위해 삶을 꾸미고 있어.

매마 = SNS에서 카페가 흥한 이유도 ‘허세’ 때문인 것 같아. 매장에서 사진 찍으려고 몇 시간씩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잖아. 한편으론 SNS가 그런 환경을 조성한 것 같아. 누구든지 손쉽게 자신을 뽐낼 수 있고, 서로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연어 = 예전에 싸이월드나 버디버디 같은 메신저는 나만의 공간이란 느낌이 강했어. 지인들만 볼 수 있었으니까. 요즘 SNS는 모두에게 보여지는 공간이잖아. 해시태그(#)로 쉽게 찾아갈 수도 있고. 이런 변화가 거짓말과 과대포장을 부추기는 것 같아.

기프 = 인스타그램을 두고 너무 자괴감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가장 화려했던 순간을 올려놓은 것뿐인데, 방구석에서 휴대폰으로 웹서핑하는 모습과 어떻게 비교가 되겠어.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조차도 인스타그램을 볼 때마다 자괴감을 느껴.

분조잘 =맞아. SNS 때문에 주위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건 사실이야. 나는 아무도 팔로우 안 하는 비공개 계정을 만들었는데, 거기선 거짓말 안하고 좀더 솔직하게 속마음을 말할 수 있어.

너굴 = 인스타그램은 한편으론 사람을 본능에 충실하게 만드는 것 같아. 익명이라는 창 뒤에 숨어서 거짓말로 허세를 부릴 수 있으니까. 관심 받으려고 하는 건 인간에게 내재된 심리잖아.  

기프 = 열린 공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판단하는 척도로 ‘좋아요’ 수를 들기도 하잖아. SNS ‘인플루언서’도 이 맥락에서 나온 것 같아.

부어깡 = 인플루언서는 인기 얻으려고 해시태그도 엄청 달잖아. ‘#daily #선팔 #맞팔’ 이런 것들도 많이 봤어. 게시글 내용과 상관없이 해시태그를 첨부해. 영향력도 이젠 연예인 못지 않거든. 인플루언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도 하니까. 

연어 = 그래서 거짓말이 여기저기 튀어나오기 좋은 환경이 돼가고 있어. 인플루언서가 써보지도 않고 제품을 홍보하는 경우도 있고, 광고인지 아닌지 모르게 교묘하게 알리는 일도 있잖아.  

분조잘 = 그래. 대학생 때 인플루언서가 만들고 광고한 화장품을 사본 적이 있어. 또래이고 직접 사용하는 영상을 올리니까 신뢰감이 생겼어. 그런데 사진에서 보던 효과는 하나도 없었어. 몇 번 쓰지도 못하고 버렸다니까.

기프 = 더구나 새로운 플랫폼이다 보니 제대로 된 규제장치를 찾기도 힘들어. 신문이나 방송만큼 구체적이지도 않고. 사업자 등록을 안 해서 세금탈루 문제가 불거지기도 하지.

연어 = 규제가 생긴다고 해서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야. 인위적으로 영향력을 높이려고 가짜 팔로워를 만들고 유령 계정을 만들기도 하잖아. SNS는 거짓말이 판치는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글 같아.

Figure 2인스타그램을 통한 거짓 팔로워 거래.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공통의 거짓말 “공부 하나도 안 했어”

기프 = 세대와 관계없이 모두 공감하는 거짓말도 있어. “공부 하나도 안 했어”, “시험공부 안 했어” 이런 거 있잖아. 실제론 죽어라 공부했는데도 거짓말하는 거잖아. 부모님 시절엔 그런 말이 겸손의 미덕이라 그랬던 것 같아.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거짓말하는 이유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아. 학생들 사이에서도 계층 의식이 뚜렷해졌달까. 부모님 직업, 경제적 능력에 따라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교육의 폭이 달라지잖아. 학생들도 이걸 인식하고 있어서 주변 친구들이 혹시라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될까 봐 “공부 안 했어”, “교과서 위주로 했어”라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 같아.

부어깡 = 맞아. 수능 만점자가 언론 인터뷰에서 ‘저는 대치동에서 과외 여러 개 받았고 부모님이 부자라서 재정적 지원을 충분히 받았어요’라고 말하지는 않잖아.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분조잘 = 그런 거짓말은 경쟁구도를 밖으로 꺼내 보이는 걸 막는 장치 같아. 세상이 더 교묘해진 거지.

연어 = 인정하긴 싫지만, 직업이나 출신학교가 사회의 경쟁력인 돈으로 이어지고 있잖아. 이런 삭막한 세상에선 거짓말이 사회를 나누는 울타리 같아. 거짓말로 격차를 더 벌리면서 자기가 얻은 지위를 놓치지 않으려는 거지. 서글픈 일이야.

기프 = 옛날엔 개천에서 용 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실상 불가능하잖아. 설사 개천에서 용 난다고 해도 집안사정이 어려우면 대한민국 최고 대학을 가도 사회생활의 시작점이 다르다는 말도 나오잖아.

 부어깡 =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도 그랬잖아. 상류층 학생들과 일반 학생은 출발지점이 다를 수밖에 없어. 수억 원을 쏟아 부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같은 고등학교를 다닌다고 해서 출발점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계층적 차이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타나는 것 같아.

매마 = 고등학교 다닐 때 친한 친구끼리도 서로 경계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나. 아무리 친해도 ‘나 공부 하나도 못하고 졸려서 어제 10시에 잤어’라고 하더라. 분명히 전날 새벽까지 기숙사에 불이 켜져 있던 걸 봤는데도 말이야. 경쟁사회가 사람간의 관계마저 멀게 하는 것 같아.

기프 = 결국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다 보니 숨기는 것도 많아지는 것 같아.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건 기성세대의 책임도 큰 것 같아. 공부만이 살길이라며 명문대 입학에 매달리고, 거기에 모든 걸 쏟아 부었잖아. 우리도 그런 기준에 맞춰서 경쟁하고 있는 거고. 계층의 대물림은 더 심각해지고 있어.

지난해 12월 대전의 한 고등학생이 자신의 수능 성적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착한 거짓말 “예뻐졌다” 이제는 검은 거짓말 

기프 = 거짓말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어. 예전엔 ‘예뻐졌다’는 말을 들으면, 착한 거짓말로 간주해서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잖아. 그러나 이젠 가식적이라고 생각하잖아. 심지어 불쾌하다고까지 느끼잖아.

연어 = 솔직히 말하면 난 좀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해. 기분 좋을 수도 있잖아. 나도 잘 생겼다는 말 들으면 기분 좋거든. ‘예쁘다’, ‘목소리가 좋네’ 이런 말을 왜 비꼬아서 듣는지 모르겠어.

기프 = ‘예뻐졌다’, ‘잘생겼다’란 말을 들을 때 기분 나쁜 경우는 다른 건 깡그리 무시하고 그것만 얘기할 때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정치인’이란 제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 기분이 별로 안 좋았어. 각자의 정치철학과 능력이 다를 텐데 그런 건 관심 없고 외모만 칭찬하는 거잖아. 대한민국이 외모만 갖고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는 아니잖아.

부어깡 = 맞아. 최근에 여성 총리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몸매가 다 드러나는 빨간색 드레스를 입힌 국내 모 드라마의 스틸컷이 공개되기도 했어. 그것도 커뮤니티에서 지적을 받고 있더라고. 실제로 여성 장관들은 깔끔하고 편한 정장을 입는데 말이야. 의도적으로 외모만 부각하는 건 확실히 문제야.

매마 = 미디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가끔 이런 걸 느껴. 사람들이 내가 화장을 하는 날은 예쁘다고 하고, 안 하면 아무 말 안 할 때가 있어. 그러다 보니 자기 검열을 하게 돼. 물론 내가 이성적으로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좋지. 그런데 뜬금없이 윗사람이 나한테 ‘예쁘다’고 말하면 좀 당황스러워. 외적으로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대상도 아닌데, 그 사람이 날 외모로 칭찬한 거라서.

기프 = 맞아. 외적인 부분을 말하는 순간 본인을 다시 점검하게 돼. ‘못생겼다’는 말이든 ‘예쁘다’는 칭찬이든, 괜히 거울을 한 번 더 보게 되고.

너굴 = 공감해.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외모 칭찬을 하면 다소 부정적이란 생각이 들어. 그런데 정말 하급자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경우도 있거든. 부장이나 차장은 보통 중년이 많잖아. 뭐라도 칭찬하는 어투로 하급자에게 다가서려고 악의 없이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엔 외모 칭찬이 꼭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어. 그래도 다른 방식으로 다가서면 더욱 좋겠지.

분조잘 = ‘화이트 불편러’(정의로운 예민함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신조어)의 등장도 한몫 했다고 생각해. ‘예쁘다’는 칭찬은 엄밀히 말하면 외모 평가인데 그 자리에서 지적하긴 애매하잖아. 상대방이 평가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따지면 양쪽 다 불편해지는 거니까. 그런데 계속해서 그런 발언에 문제가 제기되면, 발언자는 잘못된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어.

기프 = 그러다 보니까 우리도 점점 외모 얘기는 안 하는 것 같아. 말할 때마다 스스로가 ‘꼰대’인지 점검하게 되니까 얼마나 불편하겠어. 가끔은 욕 안 먹는 ‘학습된 거짓말’만 하려고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어.

너굴 = 학교 선배가 ‘~하삼’ 이런 말을 요새도 하냐고 물어보더라고. 어떤 일을 대신 도와드렸는데 ‘수고했삼’ 말하는 거야. 그 선배는 과거에 그런 말을 쓴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한다는 명목으로 스스로를 검열한 거야. 익숙하지 않은 말을 듣다 보니 어색했어. 그 선배도 원치 않게 거짓말을 하게 된 거고.  

연어 = 세상이 빨리 변하다 보니 ‘꼰대’가 스스로를 ‘꼰대’라고 인식하는 주기도 빨라진 것 같아. 써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을 하려고 자신의 언어 습관까지 속이니까.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는 모습이 나빠 보이지는 않지만, 거짓말을 훈련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해.

너굴 = ‘꼰대’는 이미 부정적 의미로 자리 잡았잖아. 기성세대 입장에선 ‘나는 꼰대가 아니야’라고 강조하고 싶기 때문에 젊은 사람 대할 때 가면을 쓰는 게 아닐까. 약간 오버하면서 말이야.

부어깡 = 맞아. ‘내가 꼰대 같았나’ 하면서 끊임없이 반문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 본심과 다르게 요즘 세대가 쓰는 말을 어색하게 사용하면서 말이야. 평소엔 그런 말을 전혀 안 할 것 같은 사람인데.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거짓말이 생겨나고, 거짓말을 학습해야 한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걱정돼. 우리도 곧 ‘꼰대’가 될 테니까.

정리=임수빈 인턴기자

참여=강보인, 김예슬, 이주현, 이혜인, 이태웅 인턴기자

※ 이슈와 화젯거리를 이야기할 때 기성세대는 자주 핏대를 세웁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워낙 크다 보니 밀레니얼 세대는 의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견 표출의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밀레니얼의 시각을 담아 한국 사회를 ‘언박싱’ 해보겠습니다. 밀레니얼의 솔직한 체감지수를 느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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