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전 코로나19 관련 통계를 확인하는 것이 어느덧 일과가 됐다. 그중 지난 28일 발표된 통계가 유독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날 완치(격리 해제) 4,811명, 치료 중(격리 중) 4,523명을 기록해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처음으로 완치자 수가 치료 중인 환자 수를 넘어섰다. 당국은 “축하할 만한 자그마한 성과”라고 밝혔다. 또 다른 통계는 대구 의료진이 121명 감염됐고, 그중 위중과 중증 환자가 각각 1명이라는 것이었다. 대구 이외 의료진 감염은 집계조차 하지 않는다. ‘완치율 50% 달성’은 이들 의료진의 희생 위에서 이뤄진 눈물겹도록 값진 성과다.
□ 흑사병이 창궐하던 17세기 초 유럽에서도 최전선은 의료진이 맡았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돌팔이’ 수준이지만 환자를 진맥하고, 시신을 격리해 감염 확산을 줄였다. 이들은 긴 외투와 가죽장갑 구두를 착용해 환자와 직접 접촉을 최소화했고, 챙 넓은 모자와 얼굴에 새 부리 모양의 마스크를 썼다. 부리 끝에는 허브를 넣었다. 흑사병이 냄새를 통해 전파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런 복장을 한 의료진과 마주친 환자는 대부분 사망했다. 그래서 지금도 유럽에서 이 복장은 저승사자를 상징한다.
□ 오늘날 코로나19 의료진의 ‘레벨 D 방역복’은 공포가 아니라 안도감을 준다. 방역복을 입고 병동으로 향하는 의료진이 카메라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올리는 사진, 마스크와 고글에 눌려 생긴 상처에 반창고를 붙인 채 활짝 웃는 사진은 ‘방역 선진국, 한국’의 이미지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코로나19와의 전쟁이 두 달을 넘어서면서 의료진의 체력도 서서히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의료진의 76%가 감염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오랜 기간 이를 이겨 내며 사투를 벌이고 있어 심리적 상처도 가볍지 않을 것이다.
□ 언제까지 이들의 영웅적 노력에만 의지해야 할까. 당장 지친 이들이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업무 체계를 손봐야 한다. 방역 시스템도 더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2002년 사스 이후 전 세계 감염병 확산은 4, 5년을 주기로 반복되고 있는데, 환경 파괴로 향후 그 주기가 더 단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예산 탓에 미뤄왔던 역학조사관과 음압병상을 더 늘려야 한다. 10%에도 못 미치는 공공의료부문을 확충해야 한다. 구체적 방안은 이미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만든 백서로 정리돼 있다. 이제는 실천할 때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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