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주지사 “전쟁선언” 반발하자 국내 여행 자제 촉구로 후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책을 두고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연방정부와 주(州)정부는 물론, 주정부끼리 갈등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설익은 정책 남발로 대통령이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 환자의 절반 가량이 집중된 뉴욕주 일대에 ‘강제 격리’를 시행할 뜻을 밝혔다가 곧바로 철회했다. 그는 이날 낮 뉴욕주와 뉴저지ㆍ코네티컷주 일부 지역에 대해 2주간 강제 격리를 고려한다면서 “곧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는 트윗과 뉴욕으로 떠나는 미 해군 병원선 출항식에서도 같은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CNN방송 인터뷰를 통해 “주정부에 대한 전쟁선언”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여기에 금융시장 패닉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트럼프는 7시간도 안 돼 뒤 트윗을 통해 “격리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후퇴했다. 결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이날 밤 3개주 주민을 대상으로 ‘14일 동안 국내 여행 자제’를 촉구하는 경보를 발표하는 선에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트럼프의 성급한 발표는 주정부간 갈등만 부채질한 꼴이 됐다.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뉴욕주 격리 아이디어는 트럼프가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불만을 들은 뒤 나왔다”고 전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에게 “뉴욕 시민들이 플로리다로 가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플로리다ㆍ텍사스ㆍ메릴랜드주 등은 뉴욕에서 오는 주민에게 14일간 의무적 자가 격리방침을 밝혀 뉴욕주의 거센 반발을 샀다. 특히 로드아일랜드주는 주방위군까지 동원해 고속도로에서 뉴욕 번호판을 단 차량을 세워 연락처를 수집하는 등 강력한 단속 정책에 착수했다. 이에 쿠오모 주지사는 “멍청한 짓”으로 맹비난하며 “단속 조치를 취소하지 않으면 로드아일랜드주를 고소하겠다”고 선언해 주정부간 신경전도 가열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민간기업에 필수 물품 생산을 강제할 수 있는 국방물자생산법(DPA) 발동을 두고서도 미적대는 모습을 보여 논란을 자초했다. 그는 18일 자신을 “전시 대통령”이라고 부르며 6ㆍ25전쟁 당시 제정된 DPA를 발동하겠다는 의지를 표했으나 기업 자율에 맡겼다. 그는 27일에서야 DPA에 근거해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에 산소호흡기를 생산하라는 긴급 명령을 내렸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한 입장도 오락가락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16일 보름짜리 코로나19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당시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열흘도 안돼 “부활절(4월 12일) 전까지 경제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며 돌연 방침을 바꿨다. 그러나 미국이 전세계 최대 발병국이 된 상황에서 ‘부활절 시한’은 시기상조라는 여론은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일부 참모들이 성급한 기대만 불어넣었다가 이를 지키지 못하면 시장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며 임의적 시한을 버리도록 트럼프를 설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2만명을 돌파한 12만1,285명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도 2,043명을 기록해 2,000명을 넘어섰다. 감염자는 전날 1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하루 만에 12만명을 가볍게 넘었고, 사망자는 이틀 만에 두 배로 치솟을 만큼 확산세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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