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다크웹 사이트 폐쇄되자 암호화 메시징 앱 대안으로 
 텔레그램 종단간 암호화 기술은 FBI 추적수사도 못 풀어내 
 해외서비스 차단 법적 근거도 없어 범죄 차단 걸림돌로 
게티이미지뱅크

‘n번방’ 사태는 우리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해외 곳곳에서 텔레그램은 온갖 범죄의 온상이 됐다. 자유 수호자를 자처하는 텔레그램의 익명성과 보안성이 방패막이 돼 그 뒤로 범죄자들이 몰려 가 숨는 형국이다. 각국 정부도 텔레그램 안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파헤치려 하지만, 암호화 시스템을 기술적으로 풀 수가 없어 진땀을 빼고 있다. 불법 콘텐츠 차단, 이용자 계정 해지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려 해도 해외 서비스 특성상 국내법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속수무책이다.

29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방대한 인터넷 세계에서 감시망을 피하려는 이들의 은닉 수단이 ‘다크웹’에서 텔레그램과 같은 암호화 메시징 소프트웨어(앱)로 바뀌고 있다. 다크웹은 특수 프로그램을 사용해야만 접근이 가능해 일반적인 검색으론 찾을 수 없는 인터넷 영역을 말한다. 이곳에서 마약, 총기류, 아동 등장 음란물 등이 거래되자 미국 사법부는 강도 높은 단속을 벌였다. 그 결과 주요 다크웹 사이트들이 줄줄이 폐쇄되면서 보안성을 갖춘 암호화 메시징 앱이 비밀스러운 대안 공간이 됐다는 분석이다.

최근에도 범죄자들의 사이버 은거지로 텔레그램이 이용되는 사례가 포착되고 있다. 일본에서 체포된 마약 소지자는 텔레그램으로 마약 구매자들과 연락하던 것이 드러났고, 중국 최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출된 5억5,800만건의 개인정보가 텔레그램에서 팔려나가고 있었다. 아동 음란물이나 여성 불법 촬영물이 거래되던 사례도 인도, 싱가포르 등에서 발생했다.

해외 서비스 불법 콘텐츠 조치 현황. 송정근 기자

텔레그램이 범죄자들에게 특히 ‘각광받은’ 이유는 텍스트 입력부터 서버를 거쳐 수신자에게 도착하는 모든 과정이 가려져 있는 ‘종단간 암호화’ 기술과 텔레그램의 철저한 ‘비밀주의’ 덕분이다. 2018년 제프 세션스 당시 미국 법무부 장관은 “2017년 FBI가 수사 권한을 가지고 암호화 메시징 앱을 풀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7,700대 이상의 기기에서 콘텐츠에 접근할 수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용자 정보나 대화 내용을 철저히 수사하려면 서버를 뒤져야 하는데, 텔레그램은 ‘검열 받지 않을 자유’를 외치며 본사를 수시로 옮겨 다니고 서버 위치도 함구한다. 이번 n번방 수사가 주로 음란물 구매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이용한 암호화폐 거래소 등 제2의 ‘연결고리’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배경이다.

콘텐츠 차단 등을 강제하는 법적 근거가 없는 점도 온라인상 범죄 차단의 걸림돌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성을 확인하면 접속 차단, 이용자 계정 해지나 정지 등의 시정요구를 따라야 하지만 텔레그램 등 해외 서비스는 그럴 의무가 없다. 결국 범죄 추적은 해당 기업의 협조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2016년부터 올해 2월 말까지 텔레그램을 비롯한 해외 서비스에서 방심위가 피해자 신고, 모니터링 등으로 불법 콘텐츠를 적발한 건수는 8만5,818건에 달하지만, 이 중 방심위 협조 요청에 응해 자발적으로 삭제한 건수는 2만7,159건(31.6%)에 그친다.

방심위가 추가로 할 수 있는 조치는 KT 등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에 텔레그램 내 불법 콘텐츠로 연결되는 인터넷주소(URL)를 차단하라는 시정요구를 내리는 것이지만, 이마저도 사실상 효과가 없다. 국내 한 ISP 업체 측은 “네이버 도메인에서 뉴스, 쇼핑 등 세부 메뉴마다 다 URL이 다른데, 텔레그램은 세부 URL을 확인할 수 없도록 보안 조치를 취해뒀기 때문에 n번방 같은 악의적인 공간을 구분해내는 게 불가능하다”며 “텔레그램 관련 URL을 모두 차단해버리면 범죄와 상관 없는 내용도 닫혀버리기 때문에 조치를 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IT 대기업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불법 단속을 위해 모니터링, 인력, 기술 등을 꾸준히 투자하고 있는데, 이는 국내법을 따르기 위해서”라며 “해외 서비스는 그러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강점으로 부각돼 이용자를 끌어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은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법이나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게 심각성을 키운 요인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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