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조원 규모 역대급 보증ㆍ대출, 소상공인 등 한꺼번에 몰리며 지체 
 상담 대기 한달ㆍ서류심사 10여일... “先대출 後심사 등 특단 대책을” 
25일 오전 대구시 북구 칠성동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대구 북부센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소상공인 대출 상담을 받기 위해 1천여명의 소상공인이 길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월 2,000만원이던 매출이 반토막 났다. 임대료는 고사하고 공과금,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려워져 지난달 20일 서울신용보증재단에 대출 상담을 신청했지만 벌써 한 달 넘게 기다렸다. 26일 가까스로 상담 차례를 맞은 이씨는 “대출 받는 게 마스크 구하기보다 더 어렵다”고 토로했다.

생사 기로에 선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위해 정부가 58조원 규모의 역대급 보증ㆍ대출 프로그램을 제시했음에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긴 대기 줄에 서서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는 절규가 높다. 폭증하는 수요에 제 때 대처하지 못해 맞았던 ‘마스크 대란’을 교훈 삼아, 코로나 보증ㆍ대출에도 특단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폭주하는 신청에 상담에만 한달 대기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9일과 24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각각 29조원씩의 기업자금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12조를 들여 연 1.5%의 저금리 대출을 긴급경영자금으로 지원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당장 죽게 생겼는데 돈이 나오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여전히 줄을 잇고 있다. 대출이 늦어지는 것은 자금난에 처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저리 보증부 대출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대출 상담과 집행 과정의 ‘병목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보증부 대출은 신용이 부족해 시중은행 대출이 어려운 차주가 지역신용보증재단(지역신보)이나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보증서를 발급 받아 은행에서 대출 받는 구조다.

기관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통상 ‘상담→서류신청→현장실사→보증심사→보증서 발급→은행 대출’의 절차를 거친다. 종전에는 모든 절차가 1,2주 안에 끝났지만 신청이 폭주하면서 상담을 받는데만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있다. 서울신용보증재단 마포지점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신청이 평소의 4배인 하루 2,000건(서울 지점 기준)씩 몰리고 있다”며 “상담까지 길게는 한 달이 걸리고 상담 후 서류심사에도 영업일수로 최대 10일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상담 신청을 할 경우 한 두 달 뒤 보증서를 받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생소한 보증 신청도 대출이 늦어지는 요인이다. 제출 서류가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기본적인 ‘재무정보’와 ‘기업개요서’는 보증 신청인이 직접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소상공인이나 소규모 기업은 이런 서류 작성부터 어려움을 겪어 재작성을 요구 받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또 길게는 며칠씩 소요된다.

정부도 현장의 난맥상을 알고 있다. 대출이 늦다는 불만이 커지면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시중은행에 일부 업무를 위탁했다. 주요 은행 역시 지역 신보 등에 직원을 파견해 상담과 서류 접수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소상공인뿐 아니라 중소기업까지 지원하는 신용보증기금은 현장실사나 보증심사에 평시 대비 상당부분 완화된 기준을 적용 중이다. 이 같은 노력으로 최근에는 현장실사부터 보증서 발급까지 기간이 10일 안팎으로 줄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여전히 폭주하는 신청을 신속히 처리하긴 역부족이다. 소상공인 보증부 대출 신청 건수만 약 21만건이지만 이 중 심사가 완료돼 보증서가 발급된 건수는 전체의 10% 수준에 그치고 있다.

 ◇“마스크 버금가는 파격대책 필요” 

정부는 내달 쯤에야 대출 지연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전날 “기업은행이 4월 초쯤 보증심사를 이전 받아 진행할 것”이라며 “신용보증재단중앙회에 따르면 4월 중순쯤 (병목현상이) 해소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은행이 보증심사를 대신 해도 여전히 병목현상의 근본 원인은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높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증심사를 아예 전 시중은행에 이관하는 등 파격적인 개선이 없으면 어떤 대책도 효과가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마스크 대란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한 것처럼, 코로나 보증ㆍ대출에도 전례 없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가령 사정이 시급한 자영업자에게는 은행권이 기존 금리로 먼저 대출을 하고, 사후 이들의 대출 신청이 타당했는지 판단해 보증서를 발급하고 저금리를 적용하는 ‘선대출 후심사’ 방식이 거론된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일단 은행이 시장 금리로 대출을 집행한 뒤 사후에 서류 증빙 등 심사를 통해 자격이 된다면 저리의 정책자금으로 바꿔주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향후 부실 발생시 금융기관 면책을 공언한 만큼, 금융권도 적극 대출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은행들은 보증과 상관없이 특례 대출을 하고, 그간 보험 대출만 했던 우체국 역시 적극 여신업무에 나서는 방식 등 다양한 채널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이혜인 인턴기자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