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 영입 수락, 이번엔 ‘黃의 남자’로
선거마다 러브콜… 이후 갈등ㆍ사퇴 반복
박근혜의 남자였다가 문재인의 남자로, 이젠 황교안의 남자가 된 정치인이 있습니다. 바로 26일 미래통합당의 4ㆍ15 총선 선거를 진두지휘 할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80)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죠.
이리 저리 옮기는 ‘철새’를 반기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최근 4년마다 당을 바꾸어 온 그의 정치적 이력은 가히 기념비적인 수준입니다. 이로써 김 전 대표는 또 다시 선거에서의 구원투수 역할을 맡게 됐는데요. 정치권을 떠나있다가도 선거 때면 다시 여의도에 나타나는 그의 이름은 과연 이번 21대 총선에서도 승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까요.
전ㆍ현직 대통령 기반 닦은 ‘선거왕’
정계의 원로, 김 전 대표가 해결사로 떠오른 건 총선을 앞두고 있던 2011년이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끌던 한나리당에 합류, 멘토로 활약하며 총선에 이어 대선 승리를 일궈냈죠. 1987년 개헌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의 입안을 주도했던 김 전 대표는 관련 공약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의 당선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4년 후인 2016년에는 당시 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고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겸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됐어요.
지난 20대 총선서 약세라는 예상을 뒤엎고 거둔 민주당의 승리에도 김 전 대표의 역할은 적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은 2015년 재보궐 선거 참패, 국민의당 분당, 호남 지지율 폭락 등을 겪으며 새누리당에 지지율에서 크게 뒤졌죠. 그러자 문 대통령은 중도ㆍ보수 색채의 김 전 대표를 삼고초려 끝에 모셔왔고, 전권을 줬어요. 총선 결과, 원내 1당의 자리를 꿰찬 것은 새누리당이 아닌 민주당이었습니다.
정작 본인 선거에선 이긴 적 없어
킹 메이커라는 이력을 빼고도 김 전 대표는 독특한 정치인입니다. 독립 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의 손자인 김 전 대표는 서강대 교수 시절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 수립에 관여했고, 전두환 정부에선 국회의원으로, 노태우 정부에서는 보건사회부 장관 및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았어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에는 새천년민주당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한 때 그를 ‘총리 후보’로 고려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선거 사령탑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직접 출마한 선거에서는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는 것도 이목을 끕니다. 비례대표로만 5선을 지낸 김 전 대표가 딱 한번 선거에 나선 적이 있는데요.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였죠. 얄궂게도 당시 김 전 대표를 떨어뜨린 상대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였습니다. 이후 2017년 4월에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가 1주일 만에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도 용을 그리고 떠날까
선거가 끝나면 김종인의 이름은 곧 잊히고 말았습니다. 2012년엔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 등을 두고 갈등을 빚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 멀어졌고, 2016년에는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결국 1년 2개월만에 탈당했죠. 이 때문일까요. 김 전 대표는 이달 20일 공개한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나는 국민 앞에 두 번 사과해야 한다”며 “하나는 박근혜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과거 김 전 대표를 영입했던 이들이 그리했듯 황교안 통합당 대표 역시 직접 나서 그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황 대표는 올해 2월부터 김 전 대표를 모시고 싶어했으나, 선대위에서 역할 등을 놓고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없던 일이 됐습니다. 결국 이날 오전 황 대표가 서울 구기동의 김 전 대표 자택을 찾아 합류를 요청한 끝에 김 전 대표는 ‘통합당 호’에 몸을 싣게 됐는데요.
황 대표는 그에게 “힘을 합하면 반드시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고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 거기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해달라”고 호소했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선거에 나선 김 전 대표가 ‘용’을 그릴지, 아니면 ‘이무기’에 그치게 될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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